‘대만의 메르켈’ 차이잉원 총통 퇴임... “세계가 대만을 제대로 보게 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5. 20. 12:2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3월 28일 타이베이에서 열린 미 상공회의소 주최 행사에 참석해 연설 도중 활짝 웃고 있다. 차이 총통은 5월 20일 퇴임했다./로이터 연합뉴스

“내가 집권한 8년 동안 세계는 대만을 제대로 보게 됐다.”

20일 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에게 자리를 물려준 ‘대만의 메르켈’ 차이잉원(蔡英文·67) 전 총통은 전날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퇴임 소감을 밝혔다. 그는 “대만은 세계의 중대 변화에 관여하기 시작했다”면서 “민주, 자유, 평화를 수호할 때 국제 사회에서 굳건히 설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날 퇴임한 차이잉원에 대해 대만 매체들은 ‘지지율 과반(58%)을 기록하며 퇴임하는 최초의 대만 총통’ ‘국제 무대에서 대만 위상을 바꾼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다. 집권 초기만 해도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 ‘소수민족 출신 지도자’ 등 그의 배경에 집중됐던 시선이 집권기(2016~2024년) 대만 경제·외교 성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차이잉원은 2016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의 주리룬 후보를 꺾고 대만 역사상 첫 여성 총통에 올랐다. 2020년 연임에 성공해 8년 동안 대만을 이끌었다.

차이잉원의 임기 내 최대 성과는 2018년 이후 급격히 치열해진 미·중 경쟁 속에서 미국과 적극 협력하며 국제 사회에서 대만의 위상을 높인 것이다. 그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 등 대만 반도체 군단을 지렛대 삼아 미국과 밀착했다. 이로써 도널드 트럼프·조 바이든 행정부에 걸쳐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했고, 미 의회에서 ‘대만 지지’가 초당적 합의가 이뤄지는 사안으로 굳어지게 했다. 미국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동안, 대만은 민주 진영의 ‘센터’에 서게 된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웬티 성 연구원은 “차이잉원은 대만을 세계 지도에 올린 인물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 사태와 우크라이나전 등 위기 속에서 오히려 대만의 경제 규모를 키운 것도 주요 성과다. 작년 4월 공개된 대만 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대만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만2811달러(약 4390만원)를 기록해 18년 만에 한국 1인당 GDP(3만2237달러)를 추월했다. 10년간 대만의 수출 증가율은 평균 4.6%로 세계 수치(3.0%)보다 월등히 높았다.

중국에 대해서는 두 번의 임기 동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여 전임 마잉주 총통의 친중 기조를 완전히 뒤집었다. ‘대만 독립’ 성향의 그는 중국이 양안(중국과 대만) 정치 기초라고 주장하는 ‘92 공식’ 수용을 거부했고, “대만은 이미 독립된 국가”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무력 통일’에 대비해 국방력 또한 크게 강화했다. 군 의무 복무 기간을 4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했고, 대만 최초의 국산 잠수함 등 무기 개발과 미국 무기 도입에 박차를 가했다. 차이잉원은 “대만의 군사력은 8년 전보다 훨씬 강화됐다”며 “우리가 군사력에 투자한 금액은 사상 최대”라고 했다. 그의 이러한 ‘친미반중(親美反中)’ 정책 기조는 라이칭더가 계승하게 됐다.

차이잉원은 ‘소수민족·여성·미혼녀’ 핸디캡을 안고 있는 소수자라서 집권 초기에는 대만 내에서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그는 푸젠성 객가(客家·중국 한족의 일파로 대만 내 소수민족) 출신의 아버지와 원주민 파이완(排灣)족 출신의 친할머니의 혈통이다. 부동산·건설·호텔 사업가인 아버지는 다섯 명의 첩을 두고 있었는데 차이잉원은 그중 장진펑의 딸로 태어났다. 11명의 이복 형제자매 가운데 막내다. 결혼도 안 했다. 화장을 잘 하지 않고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다녀 총통에 오르기 전에는 스밍더 전 민진당 주석으로부터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면전에서 받았다.

정계에도 우연히 발을 들였다. 대만 최고 명문대인 대만 국립대 법대, 미국 코넬대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 법학박사 학위를 딴 뒤 교수 생활을 했지만, 2000년 국민당 소속으로 정계에 진출해 대륙위원회 주임을 맡게 됐다. 2004년엔 현재 소속된 민진당으로 옮겨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2006년에는 부총리가 됐고 2008년엔 최초의 여성 당 주석이 됐다. 2012년에 총통 후보로 출마해 6%포인트 차이로 마잉주 총통에게 석패했지만, 4년 뒤에는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다만 차이잉원의 미국 일변도 정책으로 인해 양안 대화가 단절되고 대만해협의 위기가 고조됐다는 지적도 있다. 중국에 완전히 등을 돌리면서 대만의 동맹국은 12국으로 줄었다. 차이잉원의 탈원전 정책도 비난의 대상이다. 2016년 5월 총통 취임 직후 2025년까지 원자로 6기 모두를 폐기하는 ‘비핵가원(非核家園)’ 계획을 추진했지만, 2018~2022년 사이 세 차례의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하며 전력수급 불안이 이어지고 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