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록] 수주 경쟁 몸사린 시공사들… 길음5구역도 유찰

정영희 기자 2024. 5. 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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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입찰 계획 철회 이유는
[편집자주] '정비록'은 '도시정비사업 기록'의 줄임말입니다. 재개발·재건축 사업은 해당 조합과 지역 주민들은 물론 건설업계에도 중요한 이슈입니다. 도시정비계획은 신규 분양을 위한 사업 투자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의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 낡은 집을 새집으로 바꿔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겠습니다.

길음뉴타운 마지막 주자인 길음5재정비촉진구역이 이달 시공사 선정에 나선다. 사진은 길음5구역 내 주택가 모습./사진=정영희 머니S 기자
한남뉴타운에 이어 길음뉴타운이 재개발을 통해 천지개벽을 꾀하고 있다. 언덕배기에 위치한 노후주택들이 신축 아파트로 탈바꿈하는 새 지도를 그리는 모습이다. 길음뉴타운 중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주자로 나선 길음5구역이 이달 시공사 선정에 나선다. 높은 사업성을 기대 다수의 대형 건설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올 상반기 강북 재개발 사업지의 요충지로 떠올랐다.


산전수전 겪은 길음뉴타운 마지막 주자


우이신설선 정릉역에서 내려 10여분을 걷다 보면 가파른 언덕 사이 오래된 단독주택과 저층 빌라들이 눈에 띈다. 한눈에 봐도 30년은 훌쩍 넘은듯한 미용실과 세탁소 등이 낡은 간판을 달고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군데군데 놓인 전신주에선 마구잡이로 이어진 전선이 위험천만해 보이고 주택가 뒤로 개발을 완료한 고층 아파트가 대조된 모습을 보였다.

길음5구역은 서울 성북구 정릉동 175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다. 연면적은 3만6333.9㎡다. 해당 구역의 개발 논의는 2002년부터 나왔다. 당시 뉴타운 사업지에 포함됐지만 노후·불량 주택이 밀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존치구역으로 지정됐다. 이후 2007년 주민 발의로 재개발을 추진해 2010년 길음5재정비촉진구역으로 선정됐다.

사업에 물꼬가 트인듯했던 길음5구역은 다시 주택시장 침체로 난관에 봉착했다. 서울시가 직권해제를 시도해 재개발이 고꾸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2016년 주민들이 추진위원회를 재구성해 2019년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2022년 말 서울시는 도시재정비위원회를 열어 최고 30층 808가구 규모의 공동주택 건립을 승인했다.
길음5구역은 2022년 서울시 도시재정비위원회를 통해 당초 571가구에서 808가구 규모로의 재개발을 확정했다./사진=정영희 머니S 기자
당초 571가구로 조성될 예정이던 길음5구역은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건축물 연면적 비율) 상향 조정으로 가구 수가 늘었다. 조합원 물량은 약 300가구, 일반분양 물량은 360가구다. 공공주택 148가구는 분양 가구와 차별하지 않는 '혼합 배치'로 추진된다.

주민들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길음5구역이 착공하면 길음뉴타운의 마지막 퍼즐을 완성하게 된다. 일대 부동산 가치도 크게 뛸 수 있다.

길음1구역을 재개발한 '길음 롯데캐슬 클라시아'는 2019년 375가구를 일반분양해 1만2241명이 청약을 신청, 평균 경쟁률 32.64 대 1을 기록했다.


포스코이앤씨-현대건설 수주 경쟁 물건너가


길음5구역은 3.3㎡당 798만원 수준의 공사비로 시공사 선정에 도전했으나 1차 입찰에서 포스코이앤씨만 손을 들며 유찰됐다. 앞서 서울 여의도 한양아파트 수주에서 맞붙었던 포스코이앤씨와 현대건설이 이곳에서 재대결을 펼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지난 3월29일 열린 현장설명회에는 두 회사를 비롯해 총 10개 건설업체가 참여한 바 있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경쟁 입찰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 2회까지 유찰돼 3회째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업계에선 공사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 시공사들이 수주 경쟁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수의계약을 거치면 경쟁 과정에 사용되는 제반 비용이 절감될 뿐 아니라 사업 속도가 빨라진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여의도 한양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포스코이앤씨는 상대적으로 낮은 3.3㎡당 798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지만 현대건설은 일반분양 수익으로 소유주당 3억6000만원의 환급을 내세웠다. 조합원들은 동일 평형 입주 시 분담금이 발생하지 않고 환급받을 수 있다는 현대건설의 조건을 더 선호했다.

길음5구역 전경./사진=정영희 머니S 기자
포스코이앤씨는 지난 4월29일 하이엔드 브랜드 '오티에르'를 필두로 노량진1구역 재개발을 수주했다. 총 공사비 1조927억원의 대형 사업으로 올해 건설업계에서 가장 먼저 정비사업 수주 3조원을 달성했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길음5구역 입찰에 최선을 다해 참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당초 입찰 참여 의사를 드러냈으나 철회했다. 지난달 조합원 사이에서 현대건설 직원이 일부 조합원에게 개별 홍보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입찰에 참여하지 못할뻔한 위기까지 넘겼음에도 결국 입찰 의향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서울시 공공지원 정비사업 시공자 선정기준에 따라 시공사의 개별 홍보 활동은 금지된다. 개별 홍보 행위나 사은품 제공 등이 1회 이상 적발되면 입찰 참가가 제한될 수 있다.

조합은 건설업체 간 복수 입찰과 경쟁 구도가 협상에 더욱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이 같은 사전 홍보 활동을 문제삼지 않았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다각도의 검토 끝에 이번 입찰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길음5구역 조합은 오는 21일쯤 시공사 선정 입찰 재공고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2차 현장 설명회는 이달 말로 예정돼 있다.
길음5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 사무실 모습./사진=정영희 머니S 기자


갑을 바뀐 정비사업… 콧대 높아진 시공사


업계에선 최근 수주전에 대해 예측할 수가 없다는 전망이다. 국내 주택경기 침체와 수익성 저하로 건설업체들의 선별 수주가 이어지며 정비사업에서 발을 빼는 시공사들이 많아졌다. 서울 강남 등 핵심 입지의 사업지들도 시공사를 찾지 못해 유찰되는 실정이다.

지난달 강남 도곡 개포한신아파트는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응찰자가 없어 유찰 사태를 맞았다. 3.3㎡당 920만원의 공사비를 제안했음에도 일반분양 물량이 85가구로 적어 사업성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용산 산호아파트 재건축 조합도 시공사 선정에 실패했다. 3.3㎡당 830만원의 공사비에도 입찰사가 없었다.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에서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으면 2회까지 유찰 후 3회째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입찰 공고를 냈던 송파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조합은 두 번의 유찰과 마지막 입찰에서 단독 입찰한 현대건설과 수의계약을 맺었다. 송파구 잠실우성4차도 두 차례 입찰에 DL이앤씨만 입찰 확약서를 제출해 유찰됐다. 이달 DL이앤씨는 입찰 확약서를 세 번째로 제출할 것으로 전망됐다.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비사업 입찰에 내부 심의 기준이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태희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고금리 여파로 일반분양 성공 가능성이 줄고 공사비마저 급등하면서 시공사들의 보수적인 수주 활동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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