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차이나’에서도 중국과 경합…韓 국가 브랜드 높여야”

허인회 기자 2024. 5.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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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전 세계 어디서나 中과 경쟁하는 상황” 
“한국형 플랫폼 비즈니스도 모색할 시점”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對)중국 무역수지가 한중 수교 31년 만에 첫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과의 교역이 협력 관계에서 경쟁 구도로 바뀌었다. 특히 중간재 시장에서 중국의 자급률이 높아지면서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과거처럼 이익을 볼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을 예견한 우리 기업들은 '넥스트 차이나'로 아세안과 인도, 중동 등을 점찍고 투자를 이어갔다. 덕분에 수출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현지 정책 리스크에 중국의 추격까지 더해져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시사저널과 만난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한국 기업이 생산거점으로서 '넥스트 차이나'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산업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시장 확대를 위해선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내세워 승부를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기업의 협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시사저널 박정훈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대중국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전망은 어떤가.

"올해 우리나라를 둘러싼 무역환경은 기술(Tech), 금리(Interest rate), 정책(Policy) 등 'T·I·P'에 따른 불확실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테크 산업의 수요에 의한 반도체 경기 회복 여부, 기준금리 인하 시점, 각국의 대선 정국에서의 정책 변화 등이 변수인 셈이다. 특히 글로벌 IT 경기 위축으로 인한 반도체 수출 감소가 지난해 대중국 무역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중국 내수 회복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나면 대중국 무역수지는 개선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반도체에 가려져 있었을 뿐 대중 교역의 활력이 떨어진 지 4~5년 됐다."

중장기적으로는 과거의 일방적인 흑자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한국의 중간재를 수입해 완제품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방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의 경영 전략 변화와 더불어 미·중 패권 경쟁에 따라 글로벌 공급망에서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역할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전 세계 생산기지이던 중국에서 이익을 보던 우리의 역할도 감소하게 됐다. 이와 함께 중국이 중간재 자급률을 높이면서 한국 제품이 가격이나 품질에서 비교 우위에 서지 못하게 됐다. 반면 핵심 원료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며 수입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반도체를 제외한 비IT 품목의 무역수지가 개선되지 않으면 전처럼 대중국 무역수지 흑자를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우리 기업들은 2010년을 전후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을 '넥스트 차이나'로 점찍고 진출을 선택했다. 그동안의 성과는.

"이른바 '넥스트 차이나'를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자원과 대체 생산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산업 기반, 풍부한 소비시장 등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곳이 아세안과 인도였다. 투자와 시장 확대를 이어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아세안과 인도에 대한 수출은 2011~23년 각각 연평균 5.7%, 3.5% 증가했다. 이는 전체 수출 증가율 2.4%를 크게 상회한 수치다. 투자 규모도 같은 기간에 아세안과 인도 각각 849억 달러와 74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990~2010년 20년 동안의 투자 규모와 비교해 3~4배 늘어난 수준이다. 초기에 이들 지역을 제3국 진출을 위한 제조거점으로 주로 활용했으나, 최근엔 식품·플랜트·방산 등 다양한 산업에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넥스트 차이나' 전략을 상대적으로 잘 펼치고 있는 기업을 꼽는다면.

"인프라, 소비재, 방산 등 분야에서 성공적으로 진출한 기업이 다수 있다. 대우건설은 베트남 하노이에 한국형 신도시 '스타레이크 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가스엔텍은 지난 3월 인도네시아에서 약 4300억원 규모의 해양플랜트 사업을 수주하기도 했다. 아울러 K팝과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한국 식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신안천사김(김), 삼양F&B(라면, 소스), 동원F&B(김, 참치) 등 식품기업들이 K푸드 열풍을 이끌고 있다. 유럽·미국 대비 합리적인 가격을 내세운 방산 분야에선 한국항공우주와 LIG넥스원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 전투기·보안설비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따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확대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면.

"중국과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세안 지역 국내총생산 상위국인 인도와 인도네시아에서의 한·중 수출 경합도가 날로 상승하는 양상이다. 구체적으로 인도 수입시장에서 9개 품목이, 인도네시아 시장에선 8개 품목의 수출 경합이 심화하고 있다. '중국 내 경쟁'에서 '중국 밖 경쟁'으로 운동장이 옮겨진 셈이다. 이제 우리는 전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비친화적인 기업환경도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산업기지 측면에서 성숙 단계에 접어든 베트남에 진출한 기업인들 사이에선 최근 '베트남 리스크'라는 말이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으로의 송금이 여의치 않다거나 타 국가에 비해 인력·자본·설비 이동에 제한이 있는 등 기업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서다. 사회주의국가이기에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기업이 인도네시아나 캄보디아 등으로 이전을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공들이고 있는 인도 역시 만만치 않다. 2020년부터 자유무역협정(FTA) 원산지 검증을 강화해 추가 서류와 은행 보증을 요구하는 등 비관세 장벽을 높이고 있어서다. 참고로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 등 인도의 수입규제는 세계 2위 수준이다. 규제나 행정상 어려움 등 정책 리스크는 기업 입장에서 항상 안고 있는 문제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

한국 기업 유치에 적극적인 중동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최근 중동에선 사우디의 '네옴시티' 등 신도시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지만 동시에 자금난으로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기회인 건 분명하다. 한국은 1·2기 신도시, 행정수도 건설 등으로 도시 건설 노하우가 있다. 최근엔 지능형 IT 시스템을 도입한 스마트시티 관련 역량도 있다. 건설과 같은 하드파워에 IT라는 소프트파워를 접목해 인프라 조성 이후 운영권 확보까지 노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이 쌓인다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국형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할 수도 있다."

'넥스트 차이나'는 지금까지보다는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은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나.

"기업이나 정부가 이익 창출이나 자원 확보만 염두에 두고 이들 지역을 공략해선 안 된다. 과거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해 '이코노믹 애니멀(economic animal)'이라 불린 일본처럼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질 수 있어서다.

무역의 기본 원칙은 호혜주의다. 해당 국가에서 이익을 내도 세금도 많이 내고 고용 창출에도 기여하며 그 나라 국민들과 함께한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공급하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민관이 비전을 공유하고 유기적으로 협력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으로 '넥스트 차이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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