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부여도 사먹을 만한 반찬 만들어요” 연 매출 250억 달성한 민요한 ‘도시곳간’ 대표

조지윤 기자 2024. 5. 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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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 편집 숍 ‘도시곳간’은 하나에 3000원도 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하는 반찬들로 연 매출 250억 원을 일으켰다. 군대를 막 전역한 청년이 차린 16평짜리 반찬 가게는 어떻게 30만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최근 워킹 맘들 사이에서 ‘반찬 걱정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로 부상한 도시곳간 성공 스토리를 들었다. 

새벽부터 출근해 하루 종일 일하는데 왜 일 매출은 50만 원도 채 안 나올까. 민요한 씨는 시장 한편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미국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다니며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그가 먹기에도 맛은 분명히 좋았다. 2018년 군 입대를 위해 한국에 들어온 그는 입대 직전까지도 반찬이 안 팔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복무 중에도 외출을 나올 때마다 식품 및 농업 박람회에 다니며 '나라면 반찬 가게에서 무엇을 사고 싶을까’에 골몰했다. 그 과정에서 청년 농부들을 중심으로 지역 소농들을 알게 됐고 로컬푸드를 접했다. 신선한 농작물로 반찬을 조리하고, 해당 지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로컬푸드 제품을 판매하면 경쟁력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전역하자마자 2019년 6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반찬 편집 숍 '도시곳간’ 1호점을 오픈한 이유다.

도시 소비자들과 시골의 생산자를 만나게 하겠다는 거창한 취지 이전에 작은 욕심도 있었다. 유학 자금을 벌어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공부를 끝마치고 파인 다이닝을 차리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그런데 약 53㎡(16평)짜리 반찬 가게의 성장세가 파죽지세였다. 일 매출 70만 원에서 시작해 문을 연 지 반년 만에 급기야 일 매출 900만 원을 달성했다. 소문을 듣고 한강 건너편에서도 고객이 찾아오기 시작하자 민요한 도시곳간 대표는 사업 확장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듬해 6월 지하철 뚝섬유원지역(현 자양역) 2호점을 시작으로 가맹 사업을 본격화해 올 4월 기준 전국 60개 매장을 운영하게 된 배경이다. 매출액도 가파르게 성장해 2020년 연 매출 9억 원에서 지난해 250억 원을 기록했다. 사업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9월에는 CJ인베스트먼트, JB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31억 원 규모의 시리즈 A(초기 단계 투자)도 유치했다.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한 적은 있어도, 오이무침 한번 제대로 무쳐본 적 없었다는 1997년생 MZ 대표. 그는 어떻게 반찬으로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민 대표는 "매일같이 식탁에 오르내리는 반찬이야말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라고 말한다.

매일 다른 반찬으로 다양하게 구성

도시곳간은 모던하고 트렌디한 분위기로 공간을 꾸며 기존 반찬가게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처음 반찬 가게를 연다고 했을 때 주변 시선이 따가웠다고요.
파인 다이닝을 열 수도 있는데 왜 반찬 가게냐며 아쉬워하는 이야기가 많았죠. 저도 창업하고 1년 6개월 동안은 주변에 거의 알리지 않았어요. 어릴 때, 부모님께서 반찬 가게 하는 게 부끄러워 일부러 길을 돌아갔던 기억도 있어서 제가 직접 반찬 가게를 차릴 거란 생각도 못 했고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유학 자금만 모으고 부모님께 가게를 넘겨드리려고 했었죠.

반찬은 프랜차이즈화가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전국적으로, 지역별로 사람들 입맛이 모두 다릅니다. 경상도에서 서울식 김치를 팔면 고객들이 맛없다고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하나의 브랜드가 똑같은 반찬을 만들어서 전국에서 인기를 얻기가 어렵죠. 가맹점 확장 초기부터 크게 서울·경기·인천권, 경상권, 전라권 3개 권역으로 구분하고 각 지역에서 나는 재료들과 조리 방식을 반영해 반찬을 다 따로 만들었습니다. 간도 다르게 하고요. 특히 김치나 젓갈류는 지역별로 선호가 많이 다르거든요.

도시곳간은 상권별로도 판매하는 상품에 차별화를 둔다. 학원가에 위치한 매장에서는 학생들이 간편하게 사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나 도시락으로 싸기 좋은 반찬을 판매한다. 젊은 직장인들이 거주하는 동네에서는 다이어트를 위한 샐러드나 간단히 조리해 먹기 좋은 일품요리 위주로 진열하는 식이다.

고객들이 반찬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고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공장에서 만들어요, 주방에서 만들어요?"입니다. 대형마트나 온라인 몰에서 안 사고 굳이 반찬 가게에 와서 사는 이유는 사장님이 직접 만든 신선한 반찬을 먹고 싶기 때문이죠. 완제품이 아닌, 매장에서 직접 무치고 볶아낼 수 있도록 재료만 따로 담아서 출고하는 이유입니다. 대신 돈가스 하나를 썰 때도 굵기는 1.5cm로 통일한다거나 참깨를 뿌리는 순서까지 정해둘 만큼 제조 과정을 규격화했습니다. 가장 맛있게 조리할 수 있고, 가장 맛있어 보일 수 있게요.

좋은 반찬은 무엇인가요.
반찬은 대중적인 입맛을 사로잡아야 해요. 고객들이 반찬 가게에 올 때, 로제파스타를 기대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멸치볶음, 오징어젓갈, 달걀말이 등 기본적인 구색이 갖춰져 있는지를 살피죠. 초반에는 '맛있는’ 반찬에 집착해 다른 데서는 안 파는 메뉴들을 개발하려고 노력했는데 매일 재고가 남아서 버렸어요. 결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반찬은 제일 기본적인 것들이었죠.

기존 반찬 가게와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주부들은 보통 반찬을 구매할 때 한 가게에서 모든 걸 사지 않아요. 대부분 반찬 가게는 소규모로 운영되다 보니 한 매장에서 판매하는 반찬 가짓수가 한정돼 있고, 잘 만드는 반찬도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면서 주력 메뉴를 따로따로 구매하는 이유죠. 그래서 매장에서 최대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기로 했습니다. 반찬 제조에는 한계가 있으니 매일 판매하는 반찬 종류를 다르게 했죠. 고객 입장에서 매일 다른 반찬을 살 수 있으니까 자주 방문할 유인이 생깁니다. 실제로 고객 평균 방문 빈도가 주 2.8회로 잦은 편이고요.

반찬말고 다른 것도 파나요.
매장 내에서 반찬과 함께 살 만한 제품들도 같이 판매해요. 참기름, 고추장 등 반찬에 곁들이는 식품부터 누룽지, 약과 등 전통 간식 위주로요. 다만 마트에서 흔히 보는 기성품은 아니고 지역에서 만든 제품들로만 준비합니다. 가게 인근에 떡집이 없으면 떡도 팔고, 과일 가게가 없으면 과일도 팔죠. 심지어 전통주나 그릇, 펫 푸드 등 반찬을 구매하는 고객이 관심 가질 만한 제품군을 다양하게 준비해요. 이때, 판매하는 제품들도 한 달에 한 번은 모두 바꾸는데요. 고객들이 '굳이’ 오프라인 가게로 올 이유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올 때마다 다른 가게라는 느낌을 내려고 해요.

반찬 가게에서 반찬 외의 것들도 잘 팔렸나요.
사람들이 카페에서는 케이크나 빵을 사 먹는데 베이커리에서는 커피를 잘 안 사요. 마찬가지로 과일 가게에서 굳이 반찬을 사진 않지만 반찬 가게에서 과일을 팔면 하나씩 사요. 다른 간식거리도 마찬가지고요. 간식을 먹을 때는 반찬을 같이 안 먹지만, 식사하고 나면 간식을 먹으니까요. 대신 반찬보다 많이 비싼 제품은 잘 안 팔려요. 3000원짜리 반찬을 사러 왔는데 3만 원짜리 고추장을 사고 싶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뻥튀기 하나를 팔더라도 반찬보다는 100원이라도 저렴하게 팔려고 해요. 가격을 책정하기 전에 늘 '너라면 이 돈 주고 살 거야?’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K-반찬으로 미국 진출 목표

20대 미혼 남성입니다. 어떻게 주부들의 니즈를 파악했나요.
창업 초기에 1년 동안은 혼자서 매장을 운영했어요. 반찬 만드는 것부터 홍보, 마케팅, 고객 응대까지 직접 다 하면서 가게를 방문하는 손님들을 유심히 분석했어요. 주로 어떤 분들이 어느 시간대에 우리 매장을 찾는지 꼼꼼히 살폈죠. 관찰만 한 게 아니고 회원 데이터를 통해 방문 주기, 방문 요일, 평균 구매 단가, 최빈 구매 반찬 등 모든 정보를 분석했어요. 그러면서 도시곳간이 타기팅할 구체적인 고객 페르소나를 만들었죠. 27평(약 89㎡) 아파트에 살면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37세의 워킹 맘이 저희 메인 고객이에요.

되게 구체적이네요.
뾰족하게 타깃 고객을 좁히면 고객 패턴도 구체화할 수 있어요. 퇴근하면서 약국도 들르고, 반찬 가게도 들르고, 마트도 갔다가 집에 가는 워킹 맘의 모습이 그려졌죠. 이분들은 길을 걷다가 우연히 반찬 가게가 보여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미리 계획하고 와요. 무엇을 얼마나 살지도 미리 정해놓죠. 이 또한 고객 데이터를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데요. 객단가가 2만1000원인데 보통 반찬 4가지에 제육볶음 같은 메인 요리 하나, 간식 하나 정도 사면 나오는 값입니다. 이를 통해 반찬과 요리, 간식 생산량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죠. 금요일에는 외식하느라 반찬을 잘 안 사니까 휴무를 한다거나 월요일엔 매출이 제일 높으니까 반찬 수를 더 늘리는 식으로요.

로스율도 낮겠네요.
사실상 로스가 없어요. 매장에서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반찬을 만드는데 오전에 팔린 정도를 보고 오후 생산량을 정하거든요. 남은 제품들은 다음 날 오전에 30% 할인해서 판매하는데, 고객들이 오히려 좋아하더라고요. 그럼 퇴근길에 도시곳간에서 사는 반찬들은 항상 오늘 만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으니까요. 애초에 매장별로 메뉴가 매일 바뀌다 보니 전날 만든 제품을 그대로 팔 수도 없고요.

도시곳간이 다루는 반찬, 메인 요리, 각종 제품을 포함한 상품 종류는 총 700여 가지다. 인터뷰 직전까지도 민 대표는 직접 메뉴 개발 현장에 있다가 왔을 정도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그는 "반찬 가게가 좋은 점은 제철 채소에 따라서 사시사철 가리지 않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라며 "다양한 반찬과 요리들을 매번 새로 선보일 수 있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유학 경험이 도시곳간 운영에도 도움이 되나요.
학교에서 배운 것은 거의 도움이 안 됐어요. 학교다 보니 기본적인 칼질부터 알려줬는데 이미 한국에서 요리를 배우고 자격증도 취득했기에 큰 감흥이 없었죠. 대신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관찰한 게 도움이 됐습니다. 아마존 마켓, 판다 익스프레스 등 오프라인 식음료 가게부터 이탈리아인이 운영하는 치즈 숍이나 델리 숍 등을 통해 식품을 다양하게 판매하는 방식을 볼 수 있었죠.

지금도 레스토랑을 차리고 싶은가요.
그럼요, 반찬 기반의 한식당을 열고 싶어요. 올해 도시곳간을 코리안 델리 브랜드로 확장해 미국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반찬은 밥과 함께 김에 싸면 김밥이 되고, 소분하면 도시락이 되는 등 활용성이 큽니다. 서구권으로도 충분히 확장 가능한 이유죠. 한 나라에서 외국의 식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우선 프리미엄급부터 차츰 들어와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일식도 처음에는 고급 초밥 가게로 이미지 메이킹된 다음에 덮밥집, 라멘집으로 서서히 대중화한 것처럼요. 한식도 해외, 특히 미국에서는 10년 전부터 파인 다이닝급 레스토랑들이 확산했어요.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한식 문화도 확산할 수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도시곳간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반찬 가게를 넘어서 '신선’에 관한 모든 것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이 되고 싶어요. 여기 오면 적어도 먹는 것에 관해서는 다 해결할 수 있게요. 그렇게 손님들이 언제나 오갈 수 있는, 동네에 늘 있는 편안한 가게를 꿈꿔요.

#도시곳간 #반찬가게 #여성동아

사진 김도균 사진제공 도시곳간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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