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재건’ 나선 첫목회, 찻잔 넘어가는 태풍 될까?

주하은 기자 2024. 5. 2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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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는 당선자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주목받는 낙선자들이 있다. 국민의힘 낙선자가 주축이 된 첫목회는 ‘보수 재건’을 주장한다. 첫 번째 목표는 전당대회 룰 변경이다.
국민의힘 소장파 그룹 ‘첫목회’ 회원인 류제화(세종갑)·김효은(경기 오산)·이재영(서울 강동을) 조직위원장(왼쪽부터). ⓒ시사IN 신선영

총선 이후는 당선자의 시간이다. 임기가 남은 현역 국회의원마저 총선에서 낙선하면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받는 원외 낙선자도 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도권 험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고배를 든 30·40대 국민의힘 후보들이다. 이들은 ‘첫목회(매달 첫 번째 목요일 모임)’라는 이름을 내걸고 보수 재건을 주장하고 있다. 4월17일 9명으로 시작해 5월8일 기준 22명까지 덩치를 키웠다. 제22대 초선의원 3명(김재섭 서울 도봉갑 당선자, 김소희·박준태 비례 당선자)도 합류했다.

처음부터 소장파로서 세력화를 꾀하며 만들어진 모임은 아니었다. 시작은 평소 친분이 있던 몇몇 낙선자가 모여 서로를 위로하려 만난 자리였다. 그러나 낙선자들이 모인 만큼 자연스레 지난 총선을 복기하게 됐다. 당을 바꾸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위기감’을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다양한 인사가 참여하며 처음 내세웠던 ‘30·40대 수도권 낙선자’라는 정체성은 옅어졌지만, 위기감이 이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주고 있다.

류제화 국민의힘 세종갑 조직위원장은 “다시는 심판당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세종갑 지역구에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나오지 않았기에 정권심판론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류 위원장은 내심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심판론이 너무 강하면 민심이 심판의 ‘주체’가 될 사람을 결국 찾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 당이 잘못한 게 많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 싶다.”

국민의힘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당연히’ 패배할 만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첫목회는 총선 전략이 핵심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정권 심판에 대응하는 ‘이조 심판론(이재명·조국 심판론)’을 내세운 것은 표면적 문제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은 이미 오랜 기간 뿌리부터 흔들려왔다. 선거전략의 실패는 국민의힘이라는 ‘뿌리 없는 나무’를 쓰러트린 바람일 뿐이다.

첫목회 간사를 맡은 이재영 국민의힘 강동을 조직위원장은 “국민의힘은 심지어 오래된 보수주의 이념마저도 잊어버렸다”라고 평가했다. 정당의 뿌리는 이념일 수밖에 없는데, 국민의힘은 이념을 발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잃어왔다는 진단이다. 이념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결국 ‘비호감 정당’이라는 인상이다. “이념 공백 상황에서 국민 눈에 비치는 것이 무엇이겠나. 권위주의 ‘꼰대’ 정당. 그게 국민의힘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다”라고 이 위원장은 말했다.

이재영 위원장이 보기에 채 상병 사망 이후 일련의 사건들은 국민의힘 이념 공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보수 이념에 따르면 안보는 보수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해병대원이 죽음을 당했는데 보수 정부와 여당은 회피하고 도망가는 듯한 모습만 보였다. 보수의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기라도 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잘못된 일이었다.”

총선 참패에 대한 첫목회의 비판은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문제였나, 윤석열 대통령이 문제였나’ 하는 질문을 비껴간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진짜 문제는 국민의힘 자체다. 지난 제20대와 제21대 총선에서도 패배했지만 개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접근방식은 오히려 당의 문제점을 축약해 보여준다. 집단의 역량은 실종되고, 개인 또는 계파만이 남아 있는 현주소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4월2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선자 총회. ⓒ국회사진취재단

원외 모임 한계 극복할 수 있을까

그동안 보수의 이념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가 국민의힘 내부에서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수 정체성에 대한 토론은 자주 ‘내부 총질’로 비화됐다. 예컨대 ‘따뜻한 보수’의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유승민계로 분류돼 다른 계파의 공격을 받는 식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면 찍어내며 당내 많은 자산을 잃어왔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말을 못하고 눈치 보는 사람만 남은 형국이다”라고 김효은 국민의힘 오산시 조직위원장은 말했다.

당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며 주목받고 있지만, 첫목회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지를 놓고 의견이 갈린다. 한쪽에선 원외 조직위원장들이 중심이 된 모임이 원내 또는 중앙당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제21대 총선 이후에도 비슷한 실패 사례가 있었다. 천하람 현 개혁신당 당선자,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김재섭 현 국민의힘 당선자 등 원외 인사들이 모여서 ‘청년비상대책위원회(청년비대위)’를 꾸리고 보수 개혁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청년비대위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흐지부지되고, 보수 개혁이라는 목표도 실종됐다.

청년비대위와 첫목회에 모두 참여한 김재섭 당선자는 두 모임이 처한 상황 자체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한다. 청년비대위와 달리 첫목회는 공천을 받아 직접 선거를 뛰어본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제22대 국회에서 조력해줄 당선자들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청년비대위와의 비교는 적절치 않다. 오히려 (1999년 출범한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첫목회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등 보수정당 중진 정치인들을 배출해낸 미래연대에 필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이재영 위원장은 원외 낙선자들이 중심이 됐기에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첫목회에 대한 높은 관심은, 반대로 첫목회만 한 소장파가 국민의힘에 없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한다. “국민의힘이 가진 지향점이 무엇이냐, 이 간단한 질문을 원내에서 제대로 답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첫목회에게 공간이 열렸다. 우리의 목표는 첫목회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첫목회의 목표가 달성될 때, 첫목회가 설 자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이 위원장은 말했다.

첫목회가 이번에는 당 체질 개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첫목회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황우여)에 제시한 ‘전당대회 룰 변경(민심 대 당심 5:5)’ ‘집단지도체제 전환’이 채택될 수 있을지가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관리형’으로 시작한 비상대책위원회가 유의미한 개혁을 달성하는 데 첫목회가 앞장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영 위원장은 “전당대회 룰 변경은 전망이 밝아 보인다. 집단지도체제 전환에 대해선 황우여 위원장이 장단점을 잘 따져서 결정을 내릴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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