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비 독주 끝내자” 글로벌 빅파마들, 비만신약 ‘왕좌의 게임’

김명지 기자 2024. 5. 20.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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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슈·암젠, 빠르게 움직이는 후발주자들
위고비 뛰어넘는 체중 감량 효과
생산 공장 확보, 추가 건강 효용 입증이 과제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1)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2), 비만 치료제를 사용해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고 밝힌 유명인들(3). 왼쪽부터 킴 카다시안, 일론 머스크, 오프라 윈프리./노보 노디스크·일라이 릴리·인스타그램·블룸버그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증시에서 스위스 제약사인 로슈가 단연 화제였다. 로슈가 이날 비만 신약 후보 물질 CT-388의 임상 1상 시험 결과를 공개하자 주가가 3.6% 급등하면서 시가총액이 60억달러(약 8조 1300억원)나 늘었다.

CT-388은 덴마크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와 같은 방식의 비만 신약이다. 한 주에 한 번씩 주사를 맞은 환자들은 24주 만에 체중이 평균 18.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는 100%가 24주 차에 체중의 5% 이상을 감량했고, 45%는 체중이 20% 이상 줄었다.

로슈가 공개한 임상 결과는 위고비와 젭바운드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위고비와 젭바운드는 투약 52주 차에 체중 15~21%를 줄였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더 놀란 것은 로슈의 개발 속도였다. 이번 임상 1상 시험 발표는 로슈가 CT-388를 발굴한 미국 카못 테라퓨틱스를 인수한 지 5개월 만에 나왔다. “로슈가 27억달러(약 3조 6000억원)로 카못을 사서, 단숨에 시총 60억달러를 밀어 올렸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왔다.

◇노보 노디스크, 릴리 이어 로슈, 암젠 부상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이 비만 신약 최강자인 노보노디스크를 따라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로슈의 CT-388을 비롯해 위고비를 위협하는 새로운 비만 신약 후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제약사 암젠은 지난 4일 비만 신약 ‘마리타이드(MariTide)’의 임상 2상 시험 중간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암젠은 환자 8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1상 시험에서 마리타이드 투약 12주 차(3개월)에 체중이 평균 14.5%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암젠 주가 역시 임상 결과를 발표한 날 바로 급등했다. 애널리스트들은 마리타이드 임상 결과가 공개되자 “위고비와 젭바운드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가 비만 신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트크로이츠의 로슈 건물 창문을 청소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뒤로 필라투스 산의 봉우리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노보노디스크의 아성은 지난해 릴리가 젭바운드를 출시하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보노디스크의 올해 1분기 매출액은 653억 덴마크 크로네(94억달러)로 전 분기 659억 덴마크 크로네보다 약간 줄었다. 반대로 릴리의 1분기 매출은 지난해 대비 28% 급증했다.

글로벌 시장 분석 회사인 글로벌데이터(GlobalData)는 릴리의 마운자로가 노보노디스크의 오젬픽(당뇨약)을 제치고 오는 2029년까지 매출 340억달러를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노보노디스크의 위고비, 릴리의 젭바운드는 모두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을 모방한 약물이다. GLP-1 호르몬은 혈당 수치를 낮추고 식욕을 조절하도록 돕는다고 알려졌다.

애널리스트들은 작년까지 GLP-1 계열 약물의 시대였다면, 올해부터는 GLP-1에 또 다른 호르몬 수용체들을 결합한 형태의 복합 신약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할 것으로 봤다. 릴리의 젭바운드, 로슈의 CT-388, 암젠의 마리타이드 모두 GLP-1 호르몬과 함께 ‘인슐린 분비 촉진 폴리펩타이드(GIP)’ 호르몬에도 작용한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몸속 혈당이 일시적으로 오르는데, GLP-1과 GIP 모두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 혈당을 낮추고 식욕을 조절한다. 세부적인 작동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위고비가 GLP-1에만 작용한다면, CT-388과 젭바운드는 GLP-1과 GIP를 모두 활성화한다. 반면 마리타이드는 GLP-1 호르몬을 활성화하지만, GIP 호르몬은 차단한다.

주사 횟수도 다르다. 위고비와 젭바운드가 일주일에 한 번 맞는 주사제라면, 마리타이드는 한 달에 한 번 맞는 주사제로 개발됐다. 또 마리타이드는 투약을 중단한 후에도 체중 감량 효과가 5개월가량 유지된다고 암젠은 밝혔다. GLP-1 기반 비만 신약은 투약 중단과 동시에 빠르게 체중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였는데, 암젠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스꺼움과 같은 부작용은 극복해야 할 문제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GIP 수용체가 활성화하면 GLP-1 수용체가 활성화되면서 생기는 메스꺼움과 같은 부작용을 줄여준다. 반면 마리타이드는 GIP 활성화를 막기 때문에 부작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실제로 마리타이드를 투약한 환자 8명은 모두 메스꺼움을 경험했고, 절반인 4명은 부작용으로 투약을 중단했다. 마리타이드의 임상 2상 시험 결과는 오는 12월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제조 시설과 먹는 약, 효능 확대가 관건

암젠이 개발하는 비만 신약 후보물질 마리타이드는 위고비와 비교해 훨씬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 오크스에 있는 암젠 본사에 암젠 간판이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로슈와 암젠과 같은 후발 주자들이 효과 좋은 ‘체중감량’ 신약을 빠르게 개발해 낸다고 해도 릴리와 노보노디스크를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단백질 의약품 제조 공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자체 인슐린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노보노디스크와 릴리조차도 생산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 비만 신약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지난해 11월 제조 시설 확충에 450억 덴마크 크로네(8조 8785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GLP-1 비만 신약이 주사제에서 먹는 알약으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릴리는 먹는 GLP-1 비만 신약인 ‘오르포글리프론’에 대한 임상 3상 시험을 하고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먹는 비만 신약을 개발하는 캐나다 인버사고와 덴마크 엠바크 바이오텍을 인수했다. 먹는 약은 주사제보다 제조나 유통이 더 쉬워 시장에서 기대가 크다.

노보노디스크와 릴리가 비만 신약을 다른 질환 치료제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두 회사는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심혈관 합병증, 수면무호흡증 등 만성질환 치료에도 쓰일 수 있도록 약의 효용성을 확대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TD코웬의 마이클 네델코비치 애널리스트는 최근 미국 의료전문지인 스탯과 인터뷰에서 “앞으로 후발 주자들은 자체 개발한 비만 신약이 단순히 체중 감량을 넘어 환자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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