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넣긴 싫어요”… 최대주주 참여 안하는 유상증자에 주가 급락 속출

김남희 기자 2024. 5. 2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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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서울 한국거래소에서 샤페론의 코스닥시장 상장 기념식이 열렸다. 왼쪽 두 번째가 성승용 샤페론 대표이사. /뉴스1

코스닥 상장 바이오 기업 샤페론 이 최대주주인 대표이사가 참여하지 않는 유상증자 결정을 발표한 이후 주가가 반토막 났다. 회사 운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을 추가 발행하겠다면서도 자기 돈은 넣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코스닥시장에서 유상 증자를 앞둔 기업 중 최대주주가 청약에 아예 참여하지 않거나 극히 일부분만 참여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주가엔 당연히 악재로 작용한다.

샤페론은 지난달 12일 350억 원 규모 유상 증자 결정을 발표했다. 아토피 치료제 개발 등 운영 자금으로 조달금 전액을 쓰겠다고 밝혔다. 이번 유상 증자로 조달하려는 자금은 2022년 10월 기업공개 당시 모은 공모금(137억 원)의 두 배가 넘고, 현재 시가총액에도 육박한다.

샤페론 유상 증자는 ‘일반 공모’ 방식으로 이뤄진다. 기존 주주에게 새로 발행할 주식을 우선적으로 살 권리를 주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청약을 받는 방식이다. 신주 발행 예정 가격(2655원)은 상장 당시 공모가(5000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상장 전 공모주에 투자했거나 상장 후 주식을 산 기존 주주는 신주인수권도 없는 상황에서 주가가 더 떨어질 게 뻔하다며 반발한다.

더군다나 최대주주인 성승용 샤페론 대표는 이번 유상 증자 청약에 참여하지 않기로 해 소액 주주들의 원성이 거세다. 샤페론은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인 성 대표가 2008년 설립한 회사다. 예정된 규모대로 유상 증자가 진행될 경우, 성 대표 지분율은 현 19.90%에서12.66%로 낮아진다. 소액 주주들은 성 대표가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유상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 배경에 의문을 표한다. 성 대표 지분은 상장 규정에 따라 올해 10월 19일까지 보호예수(의무 보유)가 설정돼 있는데, 이 기간이 지나면 성 대표 등 경영진이 지분을 매각해 경영권이 바뀔 가능성도 있지 않겠느냐며 소액주주들은 우려한다.

샤페론이 계획한 만큼의 자금을 끌어모으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상 증자 발표 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다음 달 4일 확정되는 신주 발행가는 예정가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17일 샤페론 주가는 1655원으로 마감하며, 지난달 11일(3435원) 대비 52% 하락했다. 영업 적자가 계속되는 상황이라 새로운 주주를 확보하기도 쉽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청약이 이뤄지지 않아 실권주가 발생하더라도 모집 주선인인 한국투자증권은 이를 인수하지 않는다.

반도체 설계 자산(IP) 기업 퀄리타스반도체 도 대주주는 참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는 유상 증자를 발표해 일반 주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퀄리타스반도체는 이달 7일 595억 원 규모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의 유상 증자 결정을 공시했다. 지난해 10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지 6개월 만의 유상 증자인 데다, 최대주주인 김두호 대표(지분 26.5%)는 자신에게 배정된 신주 중 5%만 청약하겠다고 밝혀 시늉만 한다는 평이 나왔다. 퀄리타스반도체 주가는 유상 증자 발표 후 17일(종가 2만1850원)까지 총 29% 떨어졌다.회사 측이 제시한 신주 발행 예정 가격(2만3000원)보다 현재 주가가 낮은 상태다.

에코앤드림이 2024년 2월 20일 새만금 국가산업단지에서 전구체 2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에코앤드림

최대주주가 유상 증자에 참여는 하되, 기존 보유 주식을 팔아 청약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사례도 잇따른다. 최대주주 보유 주식이 매각 물량으로 대거 쏟아져 나올 경우, 이 역시 주가엔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어 투자자 주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차전지 소재 기업 에코앤드림 은 지난달 30일 1200억 원 규모 유상 증자를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조달 예정 금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400억 원은 채무 상환에 쓰인다. 에코앤드림 최대주주인 김민용 대표(지분 17.80%)는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의 이번 유상 증자에서 본인 배정분의 20% 이내로 청약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청약에 쓸 돈을 기존 보유 주식 일부를 팔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데 매각 예정 주식 수가 유상 증자 때 새로 살 주식(약 12만 주)보다 많다. 김 대표는 신주 배정 기준일인 다음 달 5일부터 신주인수권증서 상장 거래일 사이에 보유 주식 중 19만3000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방식으로 매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청약에 필요한 자금이 모자랄 경우 청약 참여율을 낮출 수도 있다고 한다. 17일까지 에코앤드림 주가는 지난달 말 대비 22% 넘게 내렸다.

바이오 기업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의 최대주주인 이정규 대표도 보유 주식을 매각한 돈으로 유상 증자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는 지난달 24일 263억 원 규모의 ‘주주 배정 후 실권주 일반 공모’ 방식 유상 증자를 결정했다. 조달한 자금 대부분은 운영 자금으로 쓰인다.

현재 이 대표 지분율은 특수 관계인을 포함해 13.31%로 경영권 지분치고는 높지 않은 편이다. 이 대표는 유상 증자 배정 주식 수의 절반 수준(약 89만3375주)으로 청약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보유 주식 104만3671주를 팔아서 청약 자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블록딜로 매매된 주식이 다시 매도 물량으로 나올 경우 주가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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