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때 사람 없어 옆 부대서 '품앗이'…조기전역 급증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2024. 5. 20.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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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는 있는데 사람이 없다…軍 떠나는 '3040'①]
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군사력 순위가 세계 5위로 평가되고 K-방산은 세계 4대 강국 도약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사람이 없다면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단지 초저출생에 따른 병력 부족을 지적하는 게 아니다. 군은 미래 변화에 맞춰 이미 과학기술군 전환에 나섰고 여기에는 숙련된 베테랑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소령‧대위‧상사 같은 30‧40대 중견간부들의 조기전역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 보니 핵심 장비를 운용할 인력이 부족해 훈련을 제대로 못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불편한 현실은 수년째 지속돼왔지만 병사나 초급간부 처우 개선 등에 묻혀 외면 당했다. 중견간부는 일종의 '낀 세대'로서 군의 변화에 따른 부담과 책무를 짊어져왔다. 이들이 정년은 물론 연금까지 포기하고 군문을 나서는 이유는 실망과 회의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군 수뇌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단기적 미봉책으론 부족하고 특단의 방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군의 핵심 전력이자 허리 격인 중견간부들의 현실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고양=황진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훈련 때 사람 없어 옆 부대서 '품앗이'…조기전역 급증
② 부사관은 더 심각…"봉급도 연금도 희망 안 보여"
③ "나는 이래서 정든 군을 떠났다" K-상사 이야기
(끝)

"장비는 정말 좋죠. 근데 장비가 좋아봤자 운용할 사람이 없는데 무슨 소용입니까?"

강원도 소재 기계화보병사단 출신 김형래(35) 예비역 상사는 2022년 전반기 기동훈련 때를 떠올리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에 따르면 소속 중대는 최신예 K-21 장갑차로 무장하고 있지만 정작 인력이 부족해 옆 중대에서 포수나 조종수를 빌려오는 일종의 '품앗이'를 했다.

부대 특성상 보병과 합동작전을 해야 함에도 이 역시 인력 부족으로 '하차전투'(보병 전개)를 포기하거나 보병 간부가 장갑차 임무까지 맡는 경우도 있었다.

그는 "올해 사단 내 다른 부대는 (옆 부대) 지원은 안 받는 대신, 하차전투를 해야 할 보병 간부들을 다 동원했는데도 사람이 모자라서 장비(장갑차) 3대를 빼고 훈련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전쟁이 나면 장비 몇 대는 그냥 버리고 시작해야 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부사관 100명 필요한데 86명 충원…전방, 전투병과는 더 열악

육군 제공

저출생에 따른 병력자원 감소는 예견된 미래다. 그러나 전방부대에서마저 벌써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는 것은 군내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CBS노컷뉴스가 입수한 육군본부의 '부사관종합발전계획 4.0' 초안을 보면 지난해 말 기준 부사관 보직률은 85.9%였다. 편제상 100명이 필요하다면 86명만 채운 셈이다.

그나마 후방지역은 96%인 반면 전방은 81%에 불과했고, 비전투 병과보다 포병이나 방공 같은 전투 병과의 보직률이 더 낮았다.

이런 현상은 초급간부 지원은 줄어드는 반면 중견간부의 전역은 급증하고 있어서다.

국방부가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장기복무 간부의 최근 5년간 전역 현황'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육군의 경우 장기복무 신청한 대위 가운데 희망전역은 2019년 200여명 → 지난해 290여명, 5년차 전역은 같은 기간 70여명 → 129여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상사는 희망전역이 같은 기간 50여명 → 100여명, 명예전역은 180여명 → 380여명, 중사는 희망전역이 410여명 → 920여명으로 급증했다.

육군 제공


원사는 희망전역이 330여명 → 440여명으로 늘었지만 명예전역은 100여명 → 70여명으로 줄었다.  준사관인 준위는 희망전역이 140여명 → 130여명으로 줄어든 반면 명예전역은 40여명 → 70여명으로 늘었다.

희망전역이나 명예전역 모두 정년 이전에 본인의 선택으로 조기 전역하는 것이다. 다만 명예전역은 복무연한 등 일정 요건을 갖춰야 한다.

해군 원사도 같은 기간 희망전역이 57명 → 164명, 상사는 45명 → 129명, 중사는 127명 → 221명이었다. 준위도 희망전역이 18명 → 46명 증가했다.

공군은 원사 중 희망전역이 같은 기간 50여명 → 100여명, 상사 60여명 → 170여명, 중사 100여명 → 140여명, 준위는 70여명 → 100여명이었다.

반면 육군 대위와 중령을 제외한 각군 영관‧위관급 가운데 희망전역은 큰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줄었다. 이는 본인이 희망하면 전역할 수 있는 부사관과 달리 장교는 군의 승인을 얻어야 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육군 대위 조기전역 5년새 50% 증가…해군 상사는 3배 가까이 ↑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년 국군장병 취업박람회'를 찾은 장병들이 취업 상담을 받고 있다. 고양=황진환 기자

군 중견간부들의 조기 전역은 최근 몇 년 새 두드러진 현상이다. 이들은 군의 핵심 전력이자 허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초급간부 충원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다.

미래 전장 환경과 저출생 충격에 대응해 첨단 과학기술군을 지향하는 가운데 애써 키워놓은 베테랑들의 이탈은 단지 숫자로 환산하기 힘든 손실이다.

중견간부는 초급간부의 미래 모습이라는 점에서 '선배'들의 중도 이탈은 군 전체의 사기와도 직결된다.  

군 수뇌부는 최근 뒤늦게나마 경각심을 갖고 초급간부에 이어 중견간부 근무 여건 개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일 '지휘관 임무 전념 여건 보장을 위한 대토론회'를 주재하고 "선(先) 양병(良兵)이 있어야 후(後) 용병(用兵)이 있다"고 하는 등 중견간부 기 살리기에 나섰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도 지난달 지휘서신에서 인력 획득(확보)을 강조하며 "특히 중‧장기 복무 간부들의 고충에 귀 기울이고, 보다 존중받을 수 있도록 문화를 개선하여 보람과 긍지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에 대해 엄효식(예비역 육군 대령)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채 상병 사건을 보면, 결국 중령 2명을 (피의자로) 잡아넣는 걸로 끝나는데 마치 (위아래로 끼어있는) 중견간부들의 처지를 보는 것 같다"면서 말 뿐이 아닌 실질적 대책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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