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본사 앞 쌍용건설 시위... 치솟는 공사비에 대기업들도 싸운다

이준우 기자 2024. 5. 2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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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옥 등 공사비 증액 ‘진흙탕 분쟁’
일러스트=양진경

쌍용건설은 조만간 서울 광화문 KT 본사에서 집회를 열기 위해 건설본부 소속 50여 명으로 구성된 시위대를 편성하고 있다. KT 판교 신사옥 건설에 추가로 들어간 공사비 171억원을 요구하는 집회다. 쌍용건설은 작년 10월 말에도 KT 판교 신사옥 앞에서 같은 집회를 벌였는데, 지난 10일 KT가 서울중앙지법에 “쌍용건설에 더 지급할 공사비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내자 2차 집회 준비에 들어갔다. 대기업 사옥 앞에서 다른 대기업 직원들이 시위를 벌이는 보기 드문 광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쌍용건설은 지난 2020년 KT로부터 경기도 판교에 신사옥을 짓는 사업을 수주해 작년 4월 공사를 마쳤다. 쌍용건설은 2022년부터 “착공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시멘트값 파동 등으로 공사비가 급증했다”며 추가 공사비 171억원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KT는 처음 계약 때 “공사 기간 중 물가 변동이 발생해도 계약금액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특약’을 넣었다는 점을 들어 공사비 증액을 거부했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KT가 최근까지도 ‘증액을 검토 중’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뒤통수를 쳤다”고 말했다. 반면 KT는 “사태의 가장 확실한 조기 종결책으로서 법적 판단을 받아보려는 것”이란 입장이다.

2~3년 사이 무섭게 오른 공사비를 둘러싼 분쟁이 대기업 간 법정 공방으로 전선(戰線)이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주택시장에서 재건축·재개발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증액을 놓고 감정싸움을 벌이거나 심할 경우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이 많았다. 이런 현상이 최근에는 오피스 빌딩 건설이나 공공(公共) 발주 공사에서도 발생하면서 공사비 증액을 둘러싸고 “건물 지어봐야 손해다. 더 달라”는 건설사와 “애초 계약대로밖에 지급할 수 없다. 더 못 준다”는 발주처 간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픽=양진경

◇대기업으로 확대한 ‘공사비 갈등’

현대건설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주상복합 신축 사업에서 공사비 140억원 증액을 놓고 발주처인 롯데쇼핑과 줄다리기 중이다. 현대건설은 롯데쇼핑과 2019년 9월 지하 6층~지상 39층 규모의 아파트 315가구, 영화관, 판매시설 등을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총공사비로 1380억원을 주고받기로 합의했다. 이후 현대건설은 “계약 체결 이후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공사비가 치솟았고, 공사비 증액분 중 일부를 청구할 수 있다는 전문가 자문을 받았다”며 롯데쇼핑에 지난해부터 공문을 4차례 보내며 140억원을 추가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롯데쇼핑이 이에 응하지 않자 현대건설은 지난 1월 국토교통부 건설분쟁조정위에 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DL건설도 경기도 안양 물류센터 재건축 사업에서 추가된 공사비 400억원 지급 때문에 LF그룹과 갈등 중이다. 양측이 2020년 9월 당시 체결한 도급금액은 1190억원으로, DL건설은 지난해 11월 준공을 모두 마쳤다. DL건설은 “공정과정에서 오염토가 발견돼 공사 기간이 6개월이나 지연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공사비 증액을 요청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DL건설은 지난해 12월 LF그룹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업계 “차라리 수주 안 하는 게 낫다”

공사비 갈등은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 현장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50위권 중견 건설사 대보건설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세종시 행복도시 공동캠퍼스’ 공사 현장에서 약 300억원의 추가 공사비가 발생하면서 LH와 갈등을 빚었고, 지난해 10월과 지난 3월 두 차례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코로나 팬데믹, 노조 파업, 시멘트·레미콘 수급 차질 등 악조건이 이어졌다”며 “건설비 증가에 따른 모든 피해를 시공사만 감당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건설기술연구원이 발표하는 건설공사비 지수는 최근 3년간 20% 넘게 올랐다.

건설업계에선 ‘비용 증가로 수익을 못 낼 바에 차라리 공사 수주를 하지 않겠다’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건설 수주액은 34조221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47조5574억원)보다 28% 감소했다. 공사 종류별로 보면 주로 기업에서 발주하는 공장·창고(-55.9%), 사무실·점포(-56.4%) 수주액이 큰 폭으로 줄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증액에 따른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계약 단계부터 물가변동 등에 따른 추가 공사비 산출과 증액 근거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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