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의무화되는 인권 실사… ‘인권 경영’ 시대가 온다

서창록 휴먼아시아 대표 crsoh@korea.ac.kr 2024. 5. 2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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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시행 EU 공급망실사지침
EU 수출 기업 ‘과징금 폭탄’ 주의보
국내 대표 기업, 핵심 지표 평가 결과
12개 중 8개, 달성률 50% 미만
‘유럽연합(EU)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이 올해 4월 EU 의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인권 경영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CSDDD에 따르면 앞으로 유럽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기업의 공급망 내에서 인권과 환경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는지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실사(due diligence)를 시행해야 한다. EU 회원국들에서 법제화를 거쳐 2027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한국의 경우 EU 역외 기업에 해당돼 EU 내 순 매출액이 4억5000만 유로(약 6600억 원)를 초과하면 공급망 실사 의무 대상에 포함된다. 이 지침을 어길 경우 전 세계 매출액의 최소 5% 이상을 과징금으로 무는 등 ‘과징금 폭탄’을 맞을 가능성이 있어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인권 경영이 이제 기업의 윤리적 의무로서뿐만 아니라 국제 통상 이슈가 될 정도로 사업 운영의 필수 요건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CSDDD는 기업의 전체 공급망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강제노동 등 인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각종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마련된 법이다. 이를 관리하기 위한 실사 프로세스를 갖출 것을 기업에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국 기업들도 인권 실사 수준에 대한 면밀한 점검을 서둘러야 한다.

이에 최근 세계벤치마킹연합(WBA)의 협력 파트너 기관인 비정부기구(NGO) 휴먼아시아가 매출액과 자산, 업종을 고려한 국내 대표 기업 12개사(민간 기업 10곳, 공기업 2곳)를 대상으로 인권 실사 수준을 평가했다. 글로벌 기준인 ‘기업인권벤치마크(CHRB) 핵심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 지표’를 토대로 실시한 평가로, 매년 결과를 분석해 한국 기업들의 실사 이행 현황을 진단하고 효과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할 예정이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4년 5월 1호(392호)에 실린 결과를 요약해 소개한다.

● 대다수 기업, 인권 구제 절차 미비

이번 평가에 적용된 ‘CHRB 핵심 UNGP 지표’는 △거버넌스 및 정책 약속 △인권 존중의 내재화 및 인권 실사 △구제 및 고충처리 장치 등 3개 영역의 총 12개 세부 지표로 구성됐다. 세부 지표당 점수는 최고 2점으로 24점이 만점이다. 평가 대상 12개사 중 총점 기준 상위 4개사는 삼성전자(18.5점), 한국가스공사(15점), SK하이닉스(12.5점), SK에너지(12.5점)로 나타났다.

반면 평가 대상 기업 12개사 중 8개사는 24점 만점 기준 12점 이하를 기록하며 지표 달성률이 50%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수 기업이 아직 인권 실사를 비롯한 인권 경영 체계 구축과 정책 마련에 미흡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조사 대상 기업들은 3개 평가 영역 중 ‘인권 존중 내재화와 인권 실사’ 영역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평가 대상 12개사 중 11개사가 이 영역에서는 12점 만점 기준 5점대 이하의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평가 대상 기업 중 절반 정도가 인권영향평가를 도입했고, 이를 통해 인권 위험 및 영향을 식별했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조치와 효과 추적, 더 나아가 인권 영향에 대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 절차가 상당히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제와 고충처리 장치’ 영역에서는 다수의 기업이 구제 절차를 정확하게 명시하지 않거나 합의된 구제책이 잘 적용되는지 모니터링하는 절차 등을 정확히 알리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보완도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 국제기구 평가 대상 기업, 점수 높아

국내 기업의 인권 현황은 글로벌 동종 업종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일까? 이번 평가 대상 중 정보통신기술(ICT) 업종에 속한 기업 중에서 삼성전자는 2022년 CHRB 평가 결과를 토대로 한 ICT 업종 ‘CHRB 핵심 UNGP 지표’ 총점 기준으로 봤을 때, 상위 10개사 평균인 12.8점보다 상위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는 상위 10개사와 상위 20개사의 총점 평균인 12.8점과 10.55점 사이에 있었다. 이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기준으로도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지난 수년간 WBA가 진행한 CHRB 평가 대상 기업으로 선정돼 국제 가이드라인에 기반한 인권 경영 평가를 받으면서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한 진단이 내부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CHRB 평가 이후 인권 경영 보고서 발간,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해당 절차에 대한 공시 강화, 인권원칙 제정, 인권 경영 가이드라인의 제정 등을 통해 절차적인 보완 활동을 벌였다. 반면 WBA가 진행하는 국제 모니터링 대상에 속하지 않았던 한 전자기업은 국제 평균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 기업과 또 다른 증권사 한 곳은 ‘인권 존중의 내재화 및 인권 실사’ 영역에서 0점을 받을 정도로 대비가 부실했다.

이번 평가 대상 기업들은 매출 규모 면에서 한국 경제와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의 경우 인권 존중의 내재화 및 인권 실사 준비가 더욱 미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인권 경영의 핵심 프로세스인 인권 실사 및 인권 정책을 내재화하려는 국내 기업들은 산업별, 기업별 특성을 감안해 이해관계자 참여 기반의 실사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서창록 휴먼아시아 대표 crsoh@korea.ac.kr
김민우 휴먼아시아 아시아 기업과 인권센터장 gsiskim@korea.ac.kr
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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