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음식... 제한 속의 다양함

경기일보 2024. 5.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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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연구대 총무

안부를 묻는 연락을 받다 보면 남극에서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고 사는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남극에서도 조리대원이 해주는 맛있는 양질의 음식을 먹으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매년 1년 치를 보급받다 보니 다양한 음식을 해 먹을 수는 있으나 ‘제한 속의 다양함’이라 표현할 수 있다.

남극에 식자재를 보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서울에서 1만2천740㎞나 떨어져 있고 고립된 무언의 대륙에 적게는 18명, 많게는 80명이 넘은 인원이 먹을 1년 치 식자재를 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총무인 필자에게 주어진 주요 임무 중 하나는 장보고를 거쳐 가는 모든 인원이 먹을 수 있는 식자재, 간식, 음료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무려 1천500여 항목 중 800여가지 농산물, 육류, 어류, 가공식품, 간식을 선택했고 금액으로는 2억5천만원, 부피로는 20피트 컨테이너 6개 분량이었다.

이 식자재들은 광양항에서 매해 10월 아라온호에 실려 적도를 건너 12월에 기지에 도착한다. 여기서 제한이 생기는데, 건식자재와 일부 냉장 보관이 가능한 식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신선식품은 냉동된 상태로 기지에 보급된다. 기지에서도 다음 보급까지 장기간 보관을 위해 계속 냉동 상태로 두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구매한 일부 과일과 채소가 소진되는 4월 말부터는 신선식품을 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장보고기지 특성상 동계 기간에는 해가 뜨지 않고 외부 활동이 제한되는 극야 기간이 3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맛난 음식은 생활의 활력소다. 솜씨 좋은 조리대원 덕분에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맛나게 조리된 음식을 매 끼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신선한 채소와 과일, 특히 생선회 같은 신선도가 중요한 음식은 기회가 없어 남극에서의 식생활은 결국 ‘제한 속의 다양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중요하지만 사실 잘 고려되지 않는 식생활을 위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환경에 대한 영향이다. 남극에 음식을 가져가기 위해 배출하는 탄소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남극에서는 발생하는 음식쓰레기는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음식물 쓰레기는 건조기에서 말려 ‘재’로 만들어 한국으로 가져온다.

마냥 매 끼 즐거운 식사를 위해 환경에 부담을 줄 수는 없으므로 ‘남극의 식단’ 개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주 시대 진입을 위해서라도 가져가기 위해 발생하는 탄소(에너지)를 줄이고, 조리 과정을 줄이고, 배출물을 최소화하면서, 그럼에도 장기간 고립된 대원들에게 맛과 영양분을 고루 제공할 수 있는 식단 개발과 테스트가 남극에서 선행될 필요가 있다.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겠으나 우리가 왜 남극에 기지를 운영하고 있는지, 또 남극을 통해 확장할 미래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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