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돌려차기 ‘그놈’… 82년생 동갑내기 두 女검사가 응징했다

김윤덕 기자 2024. 5. 20.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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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서울중앙지검 김세희·이자영 검사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에게 감사 편지를 받은 김세희(오른쪽), 이자영 검사. 한 기수 선후배이지만 82년생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부산지검에서 성범죄 수사로 여러 차례 공조해오다 올초 나란히 서울중앙지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검찰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격무에 시달리다 사직하는 후배들이 늘어 안타깝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는 “검사님들이 아니었다면 외로운 싸움을 진즉에 포기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세희·이자영이 그 ‘검사님’들이다. 82년생 동갑내기인 두 검사는 피의자가 특수강간살인미수로 20년형을 선고받는 데 수사·공판 검사로 공조하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올 초 부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검찰을 권력이라 비판하지만, 법과 양심에 따라 민생 범죄를 수사하는 검사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 한 번도 보지 못한 사건

-돌려차기 피해 사건을 어떻게 맡게 됐나?

김세희(이하 김): “구속 수사 사건은 차장님이 배당해주시는데,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범죄 피해자 지원 협조 요청 공문이 함께 접수돼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송치된 범죄 사실 기록에 (사건 영상이 담긴) CD가 첨부돼 있었는데, 먼저 본 실무관님과 계장님이 비명을 질러서 달려가 보니 정말 끔찍했다. 스피커를 끈 상태였는데도 ‘퍽퍽’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엘리베이터 앞에 무방비로 서 있던 피해자를 뒤에서 연방 가격하더라.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사건이었다.”

-피의자 조사 영상이 화제가 됐다. 범죄 사실을 조목조목 명시하며 ‘나 말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호통치더라.

김: “중대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강압 수사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어 녹화를 해둔 것이다. 언론에 유출될 줄은 몰랐다(웃음). 내가 제일 경계하는 것이 피의자가 그 자리에 없는 피해자에 대해 모욕적 언사를 하며 2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 째려봤다’ 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에 화가 났다. 피해자는 두개내출혈에 오른쪽 발목을 영구히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는데도 말이다.”

-죄명도 중상해에서 성폭행 살인미수로 변경했다.

김: “피의자가 급소인 머리를 총 6번 가격하는데, 5번째 가격했을 때 머리를 감싸고 있던 피해자의 손이 늘어진다. 그걸 확인하고도 한번 더 가격하는 걸 보고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1심에서 성폭행은 적용되지 않았다.

김: “범죄 기록을 처음 검토했을 때 119 구조 당시 바지 지퍼가 내려가 있는 등 성폭력 정황 증거들이 현출돼 있었다. 기절한 피해자를 들쳐 업고 7분 동안 사라진 것도 의심스러웠다. 성폭력 범죄에선 피해자 진술과 피의자 DNA가 결정적 증거인데 피해자는 해리성 기억 장애까지 얻어 범행 당시 상황을 진술할 수 없었다. 그래서 속옷 감정을 국과수에 의뢰했던 건데 그때는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2022년 5월22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서면 오피스텔 1층 복도에서 발생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과 관련해 가해 남성 A씨가 피해자를 발로 차고 있다./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 제공

◇ 소년범 관대한 처벌이 ‘괴물’ 키워

-성폭력 증거가 나오지 않았는데 1심에서 20년을 구형했다.

이자영(이하 이): “김세희 검사님의 수사 기록과 의견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성폭력 정황도 매우 커서 중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한 사건이었다. 피고인이 계속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살인 미수로 변경된 것에 대한 억울함만 토로하는 모습에 화가 났다.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

-1심에선 결국 12년이 선고됐다. 피해자 김진주(가명)씨는 재판부가 피의자의 인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주장했다.

이: “그날 바로 항소장을 썼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고, 과거 군사정권 때 억울한 피고인들이 많았던 탓에 우리 사법 체계가 피의자 인권에 집중해 온 건 맞다. 다행히 돌려차기 사건이 피해자 중심의 사법 체계로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동훈 당시 법무 장관이 피해자 지원 원스톱 솔루션 센터를 지시한 것도 그 일환이다.”

-피고인의 반성문도 감형에 영향을 미친다던데.

이: “돌려차기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피의자의 반성문에 진정성이 있다고 여겼을지는 의문이다.”

김: “반성보다는 합의가 더 문제다. 2차 가해가 합의 과정에서 많이 이뤄지는데도 재판부가 합의를 중요한 양형 요소로 보는 건 재고해야 한다. 고(故) 이예림 공군 중사 사건처럼 가해자가 계속 전화해 ‘난 오늘도 죽음을 생각했어’라며 2차 가해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보복 협박도 문제다. 1심 후 김진주씨는 ‘12년 뒤에 나는 죽습니다’라고 호소했다.

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보호 관찰,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청구할 수 있는 범죄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

이: “가해자가 피해자 주변으로 오면 알람이 울리는 양방향 스마트워치가 올 1월 개발됐다. 하반기엔 앱으로도 나온다.”

-김진주씨는 소년보호처분·반성·합의 등 소년범에 관대한 처벌을 해온 우리 사법 체계가 돌려차기 가해자 같은 괴물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김: “강력 범죄는 소년 보호 사건으로 무분별 송치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 옛날에는 그냥 자전거 훔치던 청소년들이었는데 지금은 또래 친구들을 성매매시키는 범죄자로 진화하고 있다.”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이: “어리니까 기회를 줘야 한다는 건데, 소년원에서 범죄 기술을 배우며 더 나쁜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많다. 처음부터 엄벌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씨 옷에서 피의자 DNA가 검출되면서 2심에서 20년이 선고됐다.

김: “이원석 검찰총장님 지시로 대검 유전자 감식실에서 정밀 검사가 진행됐다. 피해자의 청바지를 121포인트 찍어서 검사했는데 청바지 안쪽에서 DNA가 나왔다. 피의자는 7분 동안 ‘일어나, 일어나’ 하면서 뺨만 때렸다고 주장하는데 청바지 안쪽에서 DNA가 나왔다는 건 바지를 내리는 행위가 있었음을 추단하게 했다. 그대로 묻힐 뻔한 진실이 밝혀져 기뻤다.”

김세희 당시 부산지검 검사가 돌려차기 사건 피의자 이모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라고 호통치는 장면. /JTBC 캡처

◇ 성관계 영상, 촬영하지 마라

-피해자가 두 검사에게 감사 편지를 썼더라. ‘수십 건의 사건을 처리하느라 바쁜 검사들은 피해자들에겐 관심 없다는 편견을 깨줬다’고 썼더라.

이: “공판을 준비하면서 피해자와 전화를 자주 했는데 그때마다 고맙다고 하시더라. 수사기관으로서 당연한 일을 한 건데도. ‘피해자답지 않다’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려는 노력과 용기에 감동받았다.”

김: “성범죄 수사 검사에게는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발언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인적 사항 노출 등이 두려워 회피한다. 김진주씨는 그렇지 않았다.”

-둘 다 성범죄 수사 경력이 많다.

김: “검사 경력의 반 이상이 성범죄 수사였다. 그동안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양형이 매우 높아진 것이다.”

이: “성폭력 선고형은 살인에 버금갈 정도로 높아졌다. 제가 초임 때 친구 아버지한테 가스라이팅 당하며 성폭행 당한 초등학생 사건이 있었다. ‘널 사랑한다’고 쓴 편지를 엄마가 발견해 형을 높이기 위한 증거로 제출했는데 그로 인해 오히려 무죄가 난 사건이다. 10년 전만 해도 사법부의 인식이 그랬다.”

-요즘은 스토킹, 데이트 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김: “싫으면 싫다는 의사를 적극 개진해야 하고, 남성들도 그게 튕기는 게 아니라 정말 싫은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속담이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인데, 아직도 이런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리고 제발 동영상 촬영은 안 했으면 좋겠다. 동의하에 촬영했다 해도 헤어진 뒤 영상이 문제가 되면 결백을 입증하기 매우 어렵다.”

이: “단지 성(性)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잘못 배운 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재판까지 온다면 얼마나 불행한가.”

김: “그래서 대학생들에게 충고한다. 다퉜을 때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 연락 안하기. ‘왜? 왜? 왜?’ 하고 문자를 보내면 스토킹 증거가 된다. 성관계도 싫다고 하면 안 하기. 촬영은 더더욱 안 하기.”

-이별을 선언한 여자 친구를 살해한 의대생 등 강력 사건도 있었다.

김: “세대가 변해도 이런 사건이 계속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남녀가 서로 독립된 인격이란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사랑한다고 해서 누가 누구를 지켜주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이: “한번 옳다고 믿으면 물러서지 않는 확증 편향이 문제다. 사랑, 성(性)에 대한 잘못된 편견이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수사한 김세희, 이자영 검사를 만났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두 검사는 "캐비닛에 다 들어가지 못 할 만큼 사건 자료와 수사 기록이 넘쳐난다"며 웃었다. /김지호 기자

◇ 백설공주는 준강제추행?

-정치 검찰, 검찰 독재라고 한다.

이: “검찰도 그냥 회사다. 민생 범죄가 대부분인데 극소수 권력형 범죄만 부각돼 아쉽다.”

김: “영화나 드라마에 그려지는 검사 이미지가 문제다. 판사 친구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는 ‘너, 총 있지?’ 하더라(웃음). 수사 보안상 우리가 공개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것이 상상의 여지를 주고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대통령, 장관이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더 욕을 먹는다.

김: “우리에게 그분들은 전직 검사들일 뿐이다(웃음).”

-검찰엔 정치적으로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캐비닛’이 있다던데.

이: “그런 캐비닛은 보거나 들어본 적 없다. 그냥 캐비닛은 많다. 검사가 보고 처리해야 할 사건이 워낙 많아 캐비닛이 부족할 정도다(웃음).”

-검수완박의 영향을 현장에서 실감하나.

이: “경찰이 수사하고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한번 더 점검하면서 보완 수사하는 제도가 70년 동안 구축돼 왔는데 갑자기 검수완박이 되면서 눈앞에 보이는 범죄를 바로 수사하지 못하는 폐해가 속출하고 있다. 수사엔 딱 적절한 시기, 골든타임이 있어서 진술과 증거를 신속히 확보해야 하는데, 민생 범죄에도 수사권 조정이 필요한지 굉장히 의문이다.”

김: “경찰, 검찰, 사건 관계자들도 헷갈려하는 복잡해진 절차로 하나의 사건이 대여섯 개 사건 번호를 달고 등장한다. 시간이 한없이 지연되니 국민만 고통받는다.”

-사직(辭職)하는 젊은 검사들이 많다더라.

이: “격무에 시달리는데다, 검찰에 대한 내·외부 비판이 커지니 그 중간에서 고민하다 그만두는 검사들이 늘고 있다. 안타깝다.”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도 어려울 텐데.

이: “시댁, 친정의 도움을 다 받고 있다. 남편이 아이들 학교나 유치원에 데려다 주는 등 육아와 집안일을 많이 하고 있다.”

김: “부산 친정 부모님이 7세 딸을 키워주신다. 그분들이 학부모다(웃음).”

-왜 검사가 됐나?

이: “억울한 사람 만들지 않으려고, 피해 입은 사람들 구제하려고.”

김: “검사냐, 변호사냐 고민하는데 남동생이 지나가는 말로 ‘주체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어?’ 하더라(웃음).”

-직업병이 있을까.

김: “딸에게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읽어주다가 ‘이거 준강제추행이야. 자고 있을 때 뽀뽀하면 안 돼’라고 했다. ‘라푼젤’을 읽을 땐 ‘이건 주거 침입!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선 안 돼’라고 가르쳐주고. 한번은 유치원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더라. 수업 시간에 ‘다른 사람 물건 가져가면 어떻게 되지?’ 하고 물었더니, 우리 딸이 ‘6년 동안 나라에 끌려간다’고 하더란다, 하하!”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가명)씨가 검찰청 홈페이지에 올린 감사의 글에 이원석 검찰총장이 보낸 자필 편지와 책. /뉴스1

☞김세희·이자영 검사

김세희: 1982년 부산 출생. 김해여고, 이화여대 법대를 졸업했다. 2007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울산지검, 대구지검, 부산지검을 거쳐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서 일하고 있다.

이자영: 1982년 부산 출생. 부산 혜화여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2008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서울 남부지검, 부산지검을 거쳐 현재 서울 중앙지검 공판2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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