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 목숨 건 이별… 친밀한 남성이 죽인 여성, 지난해에만 138명

허시언 기자 2024. 5.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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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친밀한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138명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도 3년새 55.7% 늘어
보복 우려 크지만 피의자 구속 수사율 2%대 불과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최근 이별을 통보했다는 이유로 연인에게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됐다는 뉴스가 많이 들려오고 있어요. ‘교제폭력’ 사건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데요.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특성상 지속적,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재범률 또한 높은 편이에요. 교제폭력·살인 사건이 잇따르며 ‘안전 이별’이 화두로 떠올랐지만, 관련 범죄에 대한 정부의 제대로 된 실태 파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죠.

지난 8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20대 남성이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서울 강남 고층건물 옥상에서 여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여자친구가 이별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격분한 피의자가 흉기를 이용해 피해자를 여러 차례 공격했죠. 이번 사건은 피의자가 수능 만점자 출신의 유명 대학 의대생이라는 특이점 때문에 그의 신상 정보가 온라인상에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검찰은 ‘도망 염려’를 이유로 영장을 발부해 피의자를 구속 송치했습니다.

지난 3월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기 화성에서 이별 통보를 하러 찾아온 여자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까지 공격해 전치 10주의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한 것. 검찰은 사건의 중대성 등을 감안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사건의 피의자 김레아(26)의 신상과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교제살인에 대한 정부의 공식 통계는 없지만,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분석한 결과 배우자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최소 13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습니다. 가해자들이 밝힌 범행 동기로는 피해 여성이 ‘이혼이나 결별을 요구하거나 가해자와 재결합을 거부해서’가 가장 많았다고 하죠.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피해자 수는 449명까지 늘어나는데, 19시간마다 한 명의 여성이 남성에게 헤어짐을 요구했다는 이유 등으로 살인 혹은 살인미수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교제폭력 사건 역시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20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3년 사이 55.7% 늘었습니다. 폭행, 상해, 감금, 협박, 성폭행 등 범행 유형도 다양하고 살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검거된 피의자 수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루 평균 38.2건의 교제폭력이 발생한 셈입니다. 교제폭력 신고 건수도 같은 기간 4만9925건에서 7만7150건으로 급증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교제폭력과 관련해 구속수사를 받은 인원은 310명. 전체 검거 피의자의 2% 수준에 불과합니다.

교제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범죄인만큼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이나 직장, 가족 등 신상정보를 알고 있어 보복 우려가 매우 큽니다. 살인 등 강력 범죄로 이어질 위험도 높죠.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조치인 구속 수사율이 턱없이 낮습니다.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 경찰이 적극적으로 ‘이 사람은 처벌해야 돼’ ‘구속해야 해’라고 나오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습니다.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교제살인 사건의 경우에도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전 11차례나 남성을 신고했지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 매번 처벌불원으로 종결됐죠.” 순천향대 오윤성(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교제폭력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잘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교제폭력은 현행 스토킹처벌법이나 가정폭력처벌법의 대상이 아니어서 이들 법이 규정하고 있는 접근금지, 가해자·피해자 분리 등 긴급조치가 불가능합니다. 또 일반 폭행 사건과 같이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돼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국회에서는 교제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의 법률 제·개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되거나 폐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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