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호의 경제산책] 전국민 지원금

파이낸셜뉴스 2024. 5. 19. 1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규지출 재정 여력 없고
현금 살포 물가불안 야기
후세대에 빚 청구서 안돼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지원하자는 안이 야당으로부터 제기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제안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하고 있는 바 필자 역시 다음과 같은 이유들로 해서 이 제안에 반대한다.

첫째, 세계적인 인플레와 공급망 교란으로부터 야기된 경제의 어려움을 모든 국민이 겪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재산과 소득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까지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들을 돕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것을 정책목표로 하여 구현하는 데 이 방안이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난에서 누차 강조했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부작용은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이 정책에 수반되는 부작용은 무엇인가. 우선 대규모 현금 지급은 물가불안을 야기한다. 1인당 25만원을 지급한다면 총액이 10조원 넘는 규모이니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작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전술한 바와 같이 물가상승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어려움에 처한 국민을 돕기 위한 정책이 그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의 재정형편으로 볼 때 이러한 대규모 신규 지출을 위한 재정 여력이 없다. 이미 우리나라의 국채규모는 1000조원을 넘고 따라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50%를 넘었다. 재정여력이 없으므로 이 정책을 추진하려면 다시 한 번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국채에 의한 재원조달은 우선 민간투자의 위축, 즉 구축효과를 야기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입증되어 있다. 이러한 구축효과에 의한 경제체질 약화는 궁극적으로는 경기후퇴를 초래하게 된다. 현재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경제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전 국민에 대한 현금지원은 이와 같이 이른바 거시경제적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정책인 것이다.

둘째, 세대 간 부담의 불공평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나라의 빚이라는 것은 사인 간 채무나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것이므로 이는 결국 후세대의 부담이 되는 것인데 현세대가 쓴 비용의 청구서를 후손에게 내미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혹자는 후세대의 부담이라 하지만 빚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와 아울러 그 원리금 상환을 받는 '채권자' 역시 우리 후손이니 세대 간 부담이전의 문제가 그리 크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국채 소유자 중에 외국인(기관)이 많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외국인의 국채 소유 비중이 많을수록 미래세대의 국가채무에 대한 순부담이 커질 것이고, 미래의 국부유출 가능성까지 있다. 더구나 채권을 가진 사람과 세금을 내서 상환하는 사람 간의 불평등 문제도 야기한다.

요약하자면 어려운 경제상황을 겪어야 하는 국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좋은 취지와는 달리 이 정책 실행의 결과는 정반대일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경제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현금지출로 어려움을 풀고자 한다면 앞으로 이러한 어려움을 또 겪게 될 경우 같은 방식으로 풀어 나가려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해질 것이다. 이는 우리 경제의 앞날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실 이 정책은 지난번 총선 때 선거공약으로 제안된 것임은 잘 알려져 있다. 전술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제안을 했다는 것은 득표를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의심을 부를 수밖에 없다. 또 국회에서 다수당의 힘으로 행정조치를 강제하려 한다면 이는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제들을 고려할 때 어려움을 겪는 국민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 진심이라면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꼭 필요한 계층에 지원을 집중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그 방식도 현금지원 방식보다는 현존하는 지원프로그램을 적절히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여유가 있는 계층은 고통을 좀 더 분담하고 여유가 없는 계층을 도와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정도이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