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흘 만에 접은 해외직구 KC 의무화, 졸속행정 책임 물어야
정부가 19일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고 국가인증통합마크(KC 인증)가 없으면 해외 직접구매를 원천 금지하려던 방침을 사흘 만에 사실상 철회했다. 해외직구 상품의 안전성에 대해 규제를 마련하려다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반발이 커지자 접은 것이다. 국민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섣불리 발표하고 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키다 백지화시킨 졸속행정이 도대체 몇번째인가.
정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에서 유아차를 비롯한 어린이 제품, 안전사고 우려가 큰 전기·생활용품과 생활화학제품 등 80여품목에는 KC 인증이 있어야 세관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최근 중국 쇼핑 플랫폼인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을 통한 해외직구가 급증하고, 인체에 해롭거나 위험한 제품 반입도 덩달아 늘어나자 해외직구 제품도 안전 관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인터넷 카페 등을 중심으로 ‘해외직구 완전 봉쇄’라는 혼란이 커졌다. 주말 사이 정치권까지 논란에 가세하자 부랴부랴 휴일 브리핑을 열어 “안전성 확보 방안으로 KC 인증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라며 발을 뺐다.
윤석열 정부의 오락가락 행정은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과학기술 분야 카르텔을 잡겠다며 연구·개발(R&D) 예산을 33년 만에 삭감시키더니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R&D 예산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이 냉·온탕으로 극과 극을 달려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야 신뢰성을 얻을 수 있겠나.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만 5세로 낮추는 학제 개편이나 ‘외국어고 폐지’도 발표한 지 일주일도 못 가서 정책 방향이 뒤집혔다. 주 52시간 근로제 역시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자’며 바쁠 때는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노동시간을 늘리려다 노동자들의 반발에 백지화됐다.
대통령의 말 한미디에 정책 근간도 곧잘 바뀌었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5개월 전 윤 대통령이 지시한 ‘킬러 문항’ 배제 지침은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트려 사교육비를 증가시켰고, ‘준킬러’ 논쟁으로 이어지다 역대급 불수능으로 끝났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도 공감하는 여론이 높지만, 부실한 정책 추진으로 의·정 대치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정부 정책은 그 목표가 시급하고 합리적 타당성을 갖췄더라도 실효적인 세부 대책과 민주적 합의하에 이뤄져야 한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첨예한 정책일수록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은 우왕좌왕하는 졸속행정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리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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