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우리가 K-반도체 주역"… 최첨단 기술로 엔비디아 넘는다

최상현 2024. 5. 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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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반도체 밸류체인 현장을 가다
리벨리온, 전력 소모 줄인 '아톰'·아티크론, 고성능 반도체 구현
가온칩스, 설계받아 공정 최적화·하나마이크론, 패키징 기술 개발
정규동 가온칩스 대표가 반도체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오진석 리벨리온 CTO가 17일 경기도 분당구 사옥에서 데이터센터향 AI 반도체 아톰과 엔비디아 A100 GPU를 비교 시연하고 있다. [최상현 기자]

"소리가 시끄럽죠? 사실 대부분 엔비디아 GPU에서 나는 소리입니다. 저희 아톰은 전력량이 적어 발열도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AI 추론 알고리즘에서 성능은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구현했습니다."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 사옥에서 만난 오진석 리벨리온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데이터센터향 AI 반도체 '아톰(ATOM)'과 엔비디아 A100 GPU를 이용한 AI 이미지 생성을 시현하며 이같이 말했다. 입력하는 키워드에 따라 실시간으로 반도체가 구동하며 이미지를 만들어냈고, 화면 한편에서는 그에 소모되는 전력량을 출력했다. 반복되는 출력 명령에 본체에 부착된 팬(fan)은 세차게 돌아갔다. 팬이 달리지 않은 쪽이 아톰, 달린 쪽이 엔비디아 A100이었다.

리벨리온은 최근 가장 주목받는 AI 반도체 스타트업이다. 하드웨어 반도체 뿐만 아니라 컴파일러 등 AI 서비스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 전반을 설계한다. 올해 초 시리즈B 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마치며 누적 2800억원 규모 투자금을 유치했다. 오 CTO는 "데이터센터가 폭증하며 막대한 전력 수요도 함께 문제가 되고 있다"며 "전력 소모량이 3분의 1에 불과한 아톰에 대한 글로벌 수요자들의 관심이 뜨겁다"고 했다. 이같은 기술을 발판 삼아 엔비디아에 버금가는 팹리스(Fabless)가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리벨리온이 넥스트 엔비디아를 꿈꾼다면, 넥스트 리벨리온을 꿈꾸는 스타트업들도 있다. 이날 찾은 분당 제2판교 시스템반도체 설계지원센터(ICS)에서는 차세대 AI 반도체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10여개가 치열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정한울 아티크론 대표는 "아주 작은 반도체로 사진·영상 화질을 높이는 AI 알고리즘을 구동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시연했다. 장비에 픽셀이 뭉개진 저화질 사진을 입력하자, AI가 실시간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 고화질 사진으로 탈바꿈시켰다.

정 대표는 "원래는 고성능 GPU가 필요한 작업인데 가로세로 0.67mm의 작은 칩으로 저전력 환경에서 구현했다"며 "AI가 화질을 보정해주는 만큼 데이터 전송에 드는 비용이 절감돼 사업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AI 반도체 팹리스는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업종이다. 높은 임금의 반도체 인재를 불확실한 스타트업으로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이 따를 뿐만 아니라, 반도체 시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는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백억원의 비용이 든다. 시제품을 3~4회 이상 만들면서 오류를 수정하고 기술력을 고도화해야 비로소 양산에 들어갈 최소 자격을 갖춘다.

아티크론의 경우에는 국내 반도체 파운드리에 시제품 제작을 위탁하는데 10억원 내외의 비용이 들었다. 이 중 70%는 ICS 지원을 받았다. 유병두 ICS 팹리스지원실장은 "센터 지원 사업의 핵심은 팹리스 스타트업의 시제품 제작 비용을 지원해 자금조달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 특성상 짧은 기간에 설계와 시제품 제작, 패키징 테스트를 마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받는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설계를 마치고 제품성을 검증받았다고 해서 바로 양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팹리스가 만든 설계도를 넘겨받아 공정을 최적화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이같은 일을 도맡는 회사로 인공지능과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지난해 635억원 매출을 낸 가온칩스가 있다.

정규동 가온칩스 대표는 "반도체 기술이 2~3나노까지 가면서 설계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40~50명이 1년 정도 투입돼야 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가온칩스는 삼성전자 공식 디자인솔루션 파트너로, ARM과도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 대표는 "올해 1분기 기준 인공지능 프로젝트 매출이 전체의 54%에 달한다"며 "평균 50% 성장을 이뤄내면서 AI 반도체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디자인 솔루션까지 완료한 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TSMC와 같은 파운드리에서 생산된다. 파운드리에서는 웨이퍼 형태로 반도체를 찍어내는데, 이를 우리가 흔히 접하는 형태로 가공하는 공정을 '조립검사(OSAT)'라고 한다.

충남 아산시에 소재한 하나마이크론은 20년 넘게 반도체 후공정에 몰두해 온 회사다. 박진호 하나마이크론 상무는 "칩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형태도 다양화되면서 패키징에도 점점 도전적인 기술과제들이 주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과거에는 다이아몬드 날로 웨이퍼에서 칩을 잘라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레이저 커터를 사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나마이크론은 최근 고대역폭메모리(HBM) 등의 칩을 수평으로 연결하는 패키징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이날 만난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차세대 수출 동력으로 꼽히는 AI 반도체 육성을 위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시스템 반도체 기술 수준은 미국의 81.6%에 그쳤고, 중국(80.5%)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ICS 관계자는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경쟁력 확보를 위해 총 527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며 "ICS에서 초기 팹리스를 열심히 길러내고 있지만, 연간 예산이 80~90억원 정도"라고 귀띔했다.

또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나 중국은 자국 칩을 일정 퍼센트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출하를 불허하는 강력한 육성책을 쓰고 있다"며 "아직 기술력이 궤도에 오르지 못한 국내 시스템 반도체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이같은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했다.

반도체 패권 전쟁이 공급망 위기로도 비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하나마이크론 관계자는 "비용 절감과 유지보수 안정화 등을 위해 국산 설비를 사용하고 싶지만, 아직 이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국내 기업이 많지는 않다"며 "하나마이크론에서도 장비 국산화율이 30~40%에 그치고, 특히 다이 어태치 장비 200기의 경우에도 전량 일제"라고 했다.

글·사진=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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