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없는 진보 신문" "망할 것 같다" 한겨레 구성원들 성토와 고민

노지민 기자 2024. 5. 19. 16:4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언론노조 한겨레지부, '1년 한겨레 보도 평가'…차별화·독자 관계 '낙제', 출입처 시스템 개선 요구도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2024년 5월17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노보 갈무리

“진보가 없는 진보 신문이다.”
“조중동 프레임을 뒤좇는 또 하나의 기득권 신문이 돼가고 있다.”
“이러다 망할 것 같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

한겨레 노동조합이 시행한 내부 설문조사에서 심각한 위기의식이 드러났다. 응답자의 88.5%(92명)가 최근 1년간 '한겨레 보도의 위상·영향력이 나빠졌다'고 답한 반면 '좋아졌다'고 답한 이들은 한 명도 없다. 한겨레 보도에 대한 구성원 점수는 5점 만점에 2.3점,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46점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진보언론실천위원회가 지난달 24~28일 한겨레 조합원 104명이 응답한 <최근 1년 한겨레 보도 평가 설문조사 결과>를 이달 17일 노보로 공개했다. 지난 2일 박현 뉴스룸국장 총선 보도 설명·토론회를 앞두고 진행한 이번 설문에 미디어본부 73명, 경영직군 31명이 참여했다. 연차별로는 10년차 이하 32명, 11~20년차 32명, 21년차 이상 40명 등이다.

최근 1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한겨레 기사를 물은 주관식 질문에 응답자 47.1%(49명)가 '없다'고 했고, 27.8%(29명)가 '기타', 6.7%(7명)가 '무응답'으로 집계됐다. 복수의 응답자가 선택한 기사는 '한화 RSU 경영권 승계 악용' 7.7%(8명), 세월호 기획 기사 4.8%(5명), 어느 홈리스의 죽음 2.9%(3명) 등이다.

한겨레가 보도의 차별화, 독자와의 관계 면에서 낙제라는 인식도 나타났다. 다른 언론사와 한겨레 보도의 차별점에 대해서는 응답자 76.9%(80명)가 '별 차이 없었다', 8.6%(9명)가 '모르겠다'고 답했다. '독자 반응에 대한 공유·토론이 부족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71.2%(74명)에 달했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는 △이슈 선정과 이슈 파이팅 부족(38.2%) △현안 대응 부족(22.2%) △현상에 치우친 보도(18.7%) △부적절한 인사(15.6%) 등이 지적됐다. 한겨레보다 나은 보도를 하는 진보 언론은 MBC(38.5%), '뉴스타파'(25.0%) 순으로 나타났다.

▲2024년 5월17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노보 갈무리

구성원 간 소통 절박 “사내 메일 보내면 역적이 돼”

한겨레가 보도 영향력을 높이고 차별화에 성공하기 위한 방향을 주관식으로 묻자 '권력감시와 정치' 39.7%(46명), '민생 등 경제' 20.7%(24명), '기후 젠더 불평등 등 진보 의제' 15.5%(18명) 등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다만 10년차 이하 그룹은 '권력감시와 정치'(37.5%)와 함께 '진보 의제'(31.3%)도 높은 비율로 선택한 반면, 21년차 이하 그룹에선 '진보 의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아쉽다는 응답자가 한 명도 없었다. 노조는 이를 “막연하게 '진보적 가치를 구현하자'는 총론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서는 구성원 간 폭넓은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대목”이라고 해석했다.

'구성원 간의 충분한 소통'이 절박하다는 진단도 나왔다. 한 조합원은 노보를 통해 “2019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선배 그룹은 '후배들이 한겨레를 망쳤다'고 하고, 후배 그룹은 '선배들 얼굴도 못 보겠다'고 한다. 그 여파로 석진환 사태가 있었지만 성명서 하나 못 나왔다”며 “에브리원 메일(한겨레 구성원 전체에게 발송되는 메일)을 보내면 역적이 된다. 내부 토론회를 하면 타사가 곡해해서 보도할까 걱정부터 한다”고 했다. '석진환 사태'는 2019년 석진환 전 한겨레 신문총괄과 '대장동 사건' 핵심 인물인 김만배씨간 돈거래가 드러난 일을 말한다.

또 다른 조합원은 “조직 안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주장하는 해결법도 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한겨레에 제일 필요한 건 그것을 아프게 까발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2024년 5월17일 발행된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 노보 갈무리

출입처 시스템 개선 필요성 촉구 “답은 우리 안에 있다”

이른바 '석진환 사태'를 계기로 대두됐던 '출입처 시스템 개선' 요구가 여전히 높은 점도 눈에 띈다. 한겨레에 필요한 것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104명 중 47명(45.1%)이 '출입처 시스템 개선' 항목을, 36명(34.6%)이 '보직 간부 등에 대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조는 해당 사건 이후 출마한 최우성 사장이 서로 다른 부서에서 1~2명 기자가 동시에 여러 출입처를 담당하는 '교차 출입제'를 제안하고, 박현 뉴스룸국장이 이를 고민해보겠다고 답했지만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경제산업부 정책팀 기자가 국회에 출입 등록해 현장 취재를 하는 방식을 시도했지만 지속되지 않았다고 한다. 박현 국장은 2일 토론회에서 “매일 쏟아지는 뉴스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출입처는 유지해야 한다. 일간지로서는 가장 중요한 경쟁력 확보 방안”이라고 했다.

노조는 “출입처 시스템 문제의 답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창간 당시 한겨레는 대부분의 출입처에서 등록이 거부됐고,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겐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기자들은 개의치 않았다”며 “출입처 바깥 삶의 현장을 어떤 언론사보다 강조했던 한겨레를 향해 이젠 안팎에서 출입처를 벗어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했다.

▲ 서울 마포구 한겨레 사옥 사진. 사진=미디어오늘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노보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출입처 시스템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일례로 한 부서에서 한 명을 정해 출입처 바깥으로 돌려보는 내부 실험을 하고,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파악해 보완 방안을 찾아가면서 다른 부서로 늘려가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만약 한다면 한국에선 정말 획기적인 시도”라고 독려했다.

박 교수는 또한 “지금 같이 정형화된 틀 안에서 기사를 쓰는 것보다 더 욕심내야 한다. 중요한 지표는 조회수(PV)가 아니다. 열독률(DRI)이 더 중요하다”며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유발해낼 수 있도록 어떻게 구도를 잡고 문체를 설정할지에 관한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Copyright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