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심 요구하는 엔화 약세 ‘터닝포인트’ [매일 돈이 보이는 습관 M+]

2024. 5. 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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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이 혼조세다. 4월 13일과 18일 이스라엘과 이란이 그간 레드 라인(red line)으로 여겼던 본토 공격을 주고 받으며 안전자산 달러화의 프리미엄을 높였고, 이 와중에 4월 16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찍기도 했다. 중동 긴장이 소강 국면으로 전환된 4월 19일 이후에도 달러화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 연준이 과연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생겼고, 더욱이 엔화의 급진적 약세가 더해지자 덩달아 원화까지 약세를 보이며 달러·원 환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갔다. 5월이 되자 비로소 달러·원 환율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단지 며칠간에 그칠지, 조금 더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달러·원 환율까지 좌지우지한 엔화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입장이 다르다. 최근 엔화 움직임에 따른 외환당국 개입의 전말과 BOJ의 입장을 정리했다.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회의(FOMC)가 있었던 4월 마지막 주, 달러·원 환율은 수시로 1,380원을 넘나들며 1,400원을 가시권에 두었다. 5월 2일 새벽에 결과가 나온 FOMC 직전 일주일 동안에는 엔화의 급진적 약세가 화두였는데, 그 여파가 달러·원 환율을 높은 수준에서 지탱했다.

특히 달러·엔 환율이 1990년 6월 이래 처음으로 155엔을 상회하는 가운데 열린 4월 26일 일본중앙은행(Bank of Japan, BOJ)의 금융정책회의에 관심이 컸다. 3월 19일 금리 인상 이후 열린 첫 회의였고 엔화 약세가 심화되고 있었기에, 뭔가 나올지 모른다는 심리가 있었다. 마침 일본 재무성의 외환당국이 ‘필요시 외환시장에 개입하겠다’는 경고를 수시로 발신하고 있었다.

BOJ가 엔화 약세에 무반응한 배경
하지만 엔화 약세에 반응해 BOJ가 뭔가 액션을 취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리라는 예측은 결과적으로 빗나갔다. 해당 회의에서 BOJ는 추락하는 엔화를 구제할 만한 조치나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환율 관리와 외환정책은 기본적으로 일본 재무성 소관이지 중앙은행인 BOJ 소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BOJ가 엔화 약세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했더라도, 낼 수 있는 메시지는 향후 금리 인상 의지를 강조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BOJ가 정책을 동결하며 완화정책을 고수한 결정은 BOJ의 지상 과제가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이고 현재 시점에는 엔화 약세가 인플레이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평가했음을 의미한다. 엔화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것은 BOJ에게 우선적 고려사항이 아니다.

일본 외환 개입의 전말
이렇듯 BOJ가 엔화 약세에 무심한 듯 정책을 동결하자 이에 실망한 시장은 급발진했다. 달러·엔 환율이 4월 26일 BOJ 회의 직후 156엔을 상향 돌파한 뒤 뉴욕 장에서 158엔을 넘어섰고, 주말을 지나 29일 아시아 장이 열리자 또 다시 급발진해,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30분경 160엔을 순간적으로 넘어서며 시장을 경악하게 했고 이후 살짝 내려와 159엔 대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자 2시간 여 지난 오후 1시경 일본 당국이 대대적인 반격을 가했다. 수차례 경고에 그치던 외환 개입을 단행한 것이다. 엔화가치 방어를 위한 대규모의 엔화 매수-달러화 매도 개입으로 당일 오후 4시 30분경에는 달러·엔 환율이 154.5엔까지 급히 내렸다. 당국 개입의 충격으로 그때서야 비로소 달러·엔 환율이 급진적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생명력 질긴 잡초처럼 다시 슬금슬금 올라와 5월2일 새벽 3시 미국 연준의 FOMC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158엔까지 달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FOMC가 도왔다. 희미해져만 가던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를 파월 연준 의장이 되살리자 달러화가 모든 통화에 하락하며 달러·엔 환율도 157엔까지 내려갔다. FOMC에서 관건은 최근까지 향후 금리 인하를 기본 케이스로 간주했던 파월 의장이 예상보다 높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반응해 금리 인상 옵션을 추가하느냐에 있었는데, 이를 일축한 것이다. 연준이 금리 인하 계획을 접고 다시 금리 인상을 재개하기 위한 문턱은 상당히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FOMC 이전 158엔에 육박한 달러·엔 환율은 FOMC 결과에 고작 157엔까지 내렸는데, 이는 일본 외환 당국에게 성이 차지 않았다. FOMC 성명서가 나온 뒤 불과 2시간 뒤, 일본 당국이 다시 행동에 나섰다. 전형적으로 외환시장 유동성이 가장 적은 시간대는 외환시장의 주요 거래 거점이 뉴욕 장에서 아시아 장으로 넘어가는 즈음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에 개입하면 환율 움직임을 증폭시켜 개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바로 그 시간대인 한국시각 새벽 5시 10분경 기습적 개입에 나선 이유다.

개입 직전 157.5엔 수준이던 달러·엔 환율은 이 충격에 불과 30분간 153.2엔까지 수직 낙하했다. 이후 다시 156엔 대까지 몇 시간 동안 회복 흐름이 나오기도 했지만 하루 전날 FOMC의 여진이 이어지며 외환시장 전반에서 달러화가 맥을 못 추고 흘러내리자 달러·엔 환율도 5월 3일 중 흘러내리며 한때 153엔을 하회했다.

엔화 약세는 이제 끝났을까
그러나 엔화 약세는 아직 끝났다고 볼 수 없다. 엔화 가치를 34년만의 최저치로, 달러·엔 환율을 34년만의 최고치로 끌어 올린 주역은 투기 세력이 아니다. 달러·엔 환율은 전통적으로 미-일간 금리차와 관계가 깊다. 그리고 이 특성은 엔·원 환율에도 작동한다. 엔화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엔·원 환율의 상승은 미국 금리가 내리거나 일본 금리가 올라야 가능하다. 여기서 금리는 기준금리 격차도 생각할 수 있지만, 엔화는 실질적으로 5년이나 10년물 금리차에 특히 민감하다. 따라서 미국채 5년물, 10년물 금리가 내리거나 일본 국채 금리가 올라야 한다.
하지만 미국 금리 상승세를 토끼 점프에 비유한다면 일본 금리 상승세는 거북이 점프에 비유할 수 있다. 연초 0.60% 수준이던 일본 10년물 국채 금리는 BOJ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5월 3일 현재 0.90%로 단 0.30%(=30bp) 상승했다. 그나마 YCC 정책에 갇혀 2022년 12월 중순까지 0.25% 상단에 막힌 데서 많이 오른 것이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연내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에 0.70%(=70bp) 넘게 오른 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기준금리 인상 과정을 봐도 그렇다. 미국은 단 한 번의 회의에 0.75%(=75bp)를 인상한 것이 여러 차례다. 하지만 일본은 향후 3년간 인상을 단행해도 고작 0.70%라는 것이 현재 시장 가격에 내재된 시장 기대의 컨센서스다. 일본의 인플레이션 환경은 겨우 디플레이션을 벗어난 정도에 그쳐, 금리 인상 여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그 기저에 있다.

따라서 엔·원 환율이 오르려면 일본의 금리 상승을 기대하기 보다는 미국 금리의 하락을 기대해야 하는데, 과연 미국 금리가 많이 하락할 수 있을까. 올해 들어 시장은 미국 금리 인하 기대치를 꾸준히 축소해 왔다. 지난주 FOMC 직전에는 시장 가격에 내재된 향후 3년 후 기준금리 전망 컨센서스가 4%를 상회했으니 향후 3년간 전체 인하 폭이 1.5%p에 못 미친다고 예상하는 것이다.

원화 대비 엔화의 추가 하락을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향후 엔화의 상승은 답답할 정도로 느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금융시장에 상당한 충격을 가하는 이벤트가 생겨야 미국채 금리가 순간적으로 내리면서 엔화가 상승할 수 있는데, 이러한 시장의 전형적 위험회피 반응은 단기에 그치는 경향이 있고 그러한 충격은 언제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외환 개입의 효과는 속도 조절에 불과하다. 일본 외환 당국도 절대적인 환율 레벨이 아니라 속도에 민감하다. 달러·엔 환율 160엔을 절대 내줄 수 없기 때문에 160엔 돌파와 함께 개입한 것이 아니라, 최근 달러 대비 엔화 가치의 하락 속도를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엔화 가치를 움직이는 핵심 변수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이기에 미-일간 금리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더 하락할 수 있다. 만약 미-일간 금리차가 더 확대된다면 엔-원 환율도 저점을 다시 위협할 수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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