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에이트 쇼' 잘못도, 작품도 봐줘야 하나요 [정지은의 리뷰+]

정지은 기자 2024. 5.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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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 리뷰
'비상선언' 한재림 감독의 기시감 가득한 신작
'잘못은 잘못'이고 '작품은 작품'이라는 오만
연기력은 인정···인상 깊은 '코코더' 박정민
'더 에이트 쇼' 스틸 /사진= 넷플릭스
[서울경제]

"'너는 망하지만 나는 흥하겠지'

불행은 항상 나만은 다를 거라는 착각에서 시작된다."

음주운전을 한 김새론이 복귀와 점점 멀어지고 트롯 가수 김호중의 음주운전 사건이 연일 보도되고 있는 이 시기에 같은 음주운전자 배성우가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로 복귀했다. 차가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끼지 못한 배성우, 음주운전 이슈가 터진 후에도 '미디어 복귀'라는 핸들을 쥐여준 한재림 감독.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대중의 비판을 받고 있는 '더 에이트 쇼', 과연 봐야 하는 걸까.

배우 배성우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에이트 쇼(The 8 Show)’ 제작발표회에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김규빈 기자 2024.05.10

◇모순덩어리 '더 에이트 쇼'..."작품은 작품" = 배성우는 음주운전 이후 첫 공식 석상이었던 '더 에이트 쇼' 제작발표회에 나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반면 류준열은 자신에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 "작품을 위한 자리니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작품을 위한 자리"에서 자발적으로 나서 사과를 한 배성우의 행동과 정면으로 모순되는 발언이다.

여기에 한 감독은 음주운전 이슈가 터지고 난 이후에도 배성우를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개인적으로 친한 형", "옆에서 사죄하는 모습을 봤다"고 그를 비호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수많은 제작진들을 리스크에 빠뜨린 이유가 '인맥'이었다는 말이다.

류준열의 논리라면 '음주운전'이든 '그린워싱' 논란이든 모두가 "작품을 위한 자리"니 '하하 호호' 거리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작품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야 하고, 한 감독의 논리라면 자신이 옆에서 배우가 충분히 힘들어하는 것을 봤으니 이젠 복귀해도 된다는 것이다. 진정 이것을 '더 에이트 쇼' 감독과 배우가 지닌 예의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더 에이트 쇼' 스틸 /사진= 넷플릭스

◇'제2의 오징어 게임'이라고? '글쎄' = 그렇다면 작품 자체는 어떠한가. 네이버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원작으로 한 '더 에이트 쇼'는 돈에 절박한 8명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갇혀 시간을 상대로 돈을 버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진수(류준열)는 평범하게 섞여 사는 인생을 추구해왔던 인물이지만 어느 날 지인에게 혹해 투자한 돈을 결국 사기로 날린다.

사채업자들에게 쫓기고 결국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릴 결심을 한 그는 갑자기 정체 모를 입금 문자와 함께 게임에 참가하겠냐는 메시지를 받는다. 어마어마한 돈을 계속해서 보내며 설득하는 주최자의 제안에 진수는 게임에 참여하고 나머지 참가자 세라(천우희), 필립(박정민), 김양(이열음), 태석(박해준), 춘자(이주영), 문정(문정희), 상국(배성우)을 만난다.

'더 에이트 쇼' 스틸 /사진= 넷플릭스

기자로서 리뷰를 쓸 땐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봐야 한다는 절대적인 조건이 붙는다. 다른 배우들과 제작진을 위해서라도 작품성에 대해서는 논해야 하기에 밤새도록 정주행을 달렸으나 돌아오는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 모호한 메시지, 급하게 마무리 지은 결말뿐이었다.

공개 전부터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로 기대를 받았으나 '오징어 게임'과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등장인물들은 전략만 있다면 돈을 잘 벌 수도, 원하는 바를 이뤄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군상과 민낯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억지스럽게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위화감을 일으킨다. 각 층의 인간들의 캐릭터성과 그들이 벌이는 싸움은 타 작품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고 후반부로 갈수록 '여기서 왜 이런 선택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연성이 부족하고 심리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신이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상금을 다 몰아주기로 했음에도 ‘흑화’하며 빌런을 자처한 상국의 경우가 그렇다.

이후 (작품 속 대사대로라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들을 서로에게 한 이들이 게임에서 나온 후 만나는 결말이 나온다. 서로를 죽이고, 배반하고, 정신을 부숴버린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와 연대하며 만나는 엔딩은 그저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 지으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더 에이트 쇼' 스틸 /사진= 넷플릭스

◇혼신의 연기에도...몰입 불가 = 물론 배우들의 연기력은 탁월하다. 특히 혼신의 '코코더(코로 리코더 불기)' 연기를 소화한 박정민은 압도적이다. 각종 논란으로 한창 물의를 빚은 류준열 또한 연기에 있어서는 다 내려놓은 모습이다. 한껏 못생겨지고, 구질구질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진수로 완벽하게 변신해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다. 그가 하는 내레이션 또한 작품 전반을 아우르며 초반부 흐름을 활기차게 이끌어나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안타까운 점은 작품 내내 깨지는 몰입감이다. 배우의 이미지는 중요하다. 그러기에 주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책임감은 무거워야 한다. 아무리 천의 얼굴을 연기하는 연기자라 하더라도 현실 세상에서 낙인찍힌 이미지는 떨쳐내기 힘들다.

사생활이나 이중적인 모습에 대한 논란을 가진 배우는 차치하더라도 연일 뉴스 헤드라인에 보도되며 '잠재적 살인'이라 불리는 '음주운전'을 한 배우를 향한 시선은 털어내기 어렵다. 특히 배성우의 경우 "술 딱 한 잔만 했으면 좋겠다"는 대사를 하고, 마지막 회차에 이르러서는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일 정도의 분량을 보여주며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속이 거북해진다.

물론 그는 연기를 사랑하고 여생을 연기 활동을 하며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다면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아야 했다.

'더 에이트 쇼' 스틸 /사진= 넷플릭스

◇'봐주기식' 시청이 낳을 결과 = 글을 마치며 2017년 방송됐던 tvN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에서 검사 정재찬(이종석)이 음주운전자에게 차 키를 건네준 이를 기소하며 나눈 대화를 언급하고 싶다. 기소 당할 처지에 놓인 방조자는 '겨우' 이 정도로 죄가 되냐고, 음주 운전을 하지 않은 자신의 죄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때 검사는 말한다.

"'겨우'니까 죄죠. 차 키 주는 것이 '겨우'였으면 안 주는 것도 '겨우'였겠죠. '겨우' 말 한마디로 음주 운전을 거들었으면 '겨우' 말 한마디로 말릴 수도 있었어요. 그 '겨우'만 안 했어도 사람이 살 수 있었는데 그 쉬운 걸 알고도 무시했으면 죄 맞아요. '겨우'라서 죄에요."

'더 에이트 쇼' 스틸 /사진= 넷플릭스

이 대화를 떠올린 이유는 ‘더 에이트 쇼’ 이외에도 음주운전을 가볍게 여기는 사례가 많아서다. '겨우'라고 생각해서 누군가를 캐스팅하는 사람, ‘겨우’니까 미디어에 당당하게 등장하는 사람. 그 그림자에는 ‘겨우’라는 죄로 인해 피해를 입어 세상을 떠났거나 평생을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범죄자가 나오는 작품을 보게 하는 것이 사회와 피해자, 혹은 유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인간 군상을 통찰하는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든다는 자체도 모순이다.

"친해서 잘 알고 괜찮은 사람이다", "작품은 작품이고 죄는 죄다", "참여한 제작진을 위해서라도 봐줘야 한다" 이런 식의 사고와 반응이 계속된다면 업계 관계자들의 범죄자 캐스팅은 계속될 것이다. 제작진이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했을 때, 선을 넘은 굴레가 만들어졌을 때, 그나마 최악의 일을 막는 것은 시청자에게 남겨진 몫이다. '더 에이트 쇼'가 나온 지금이야말로 경각심을 지녀야 할 때다.

정지은 기자 je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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