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과 햄버거를 위한 변명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5. 1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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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가 생활습관병 유발한다?…그 자체보다 우리의 ‘과식’과 ‘편식’이 문제

(시사저널=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제 라면은 명실공히 세계인의 식량이다. 2022년 전 세계 150여 나라에서 소비한 라면이 무려 1200억 개를 넘어섰다. 연간 1인당 15개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베트남·한국·네팔의 소비자는 매주 1개 이상의 라면을 먹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패스트푸드인 햄버거도 역시 세계적인 식품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고통스러운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라면과 햄버거 소비는 오히려 늘어났다.

ⓒ시사저널 임준선·pixabay

라면 국물 버려야 한다는 건 섣부른 주장

인스턴트(즉석) 라면은 1958년 일본 닛산식품(日清食品)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가 처음 개발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유입된 중국식 면요리인 납면(拉麵)을 일본식으로 변형한 라멘(ラーメン)을 값싸고 편리하게 조리할 수 있도록 인스턴트식품으로 가공한 것이다. 식용유에 튀겨 건조한 '면'과 냉동건조(freeze drying)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재료를 분말 형태로 가공한 '분말 수프'가 핵심이다. 더욱이 20세기 초 일본에서 개발한 MSG(글루탐산나트륨)가 라면을 통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장기 보관이 가능하고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인스턴트 라면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6세기경 중국에서 처음 등장한 국수가 전 세계로 퍼지는 데는 무려 1300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런데 라면은 그런 일을 고작 40년 만에 해치워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부터 일본식 라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009년부터는 한국 K라면 생산량이 원조인 일본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이제 세계시장에서 우리 '라면(ramyon)'이 일본 '라멘(ramen)'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라면은 영양학적으로 모든 영양소를 고르게 갖춘 '완전식품'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특히 라면 한 개에 들어있는 포화지방이 하루 권장 섭취량의 절반을 넘기도 하고, 소듐이 하루 권장 섭취량의 90%나 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칼슘 함량은 대체로 부족하다. 소금(염화소듐)을 통해 섭취하는 소듐은 우리 몸의 생리작용에 꼭 필요한 전해질 성분이다. 특히 체액에 포함된 소듐이 지나치게 부족해지면 전해질 쇼크가 일어나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건강에 꼭 필요한 소금도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소금을 장기간 동안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고혈압을 비롯한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진다. 그렇다고 라면의 수프나 국물을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섣부른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하루 세끼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8억5000만 명이 넘는다. 우리가 넉넉한 식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라면의 수프나 국물을 버린다고 우리 건강이 확실하게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햄버거가 방부제 범벅이라는 주장도 무책임

햄버거는 둥근 빵 사이에 다진 고기로 만든 패티를 넣어 만든 고급 음식이다. 햄버거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햄버거라는 이름은 19세기 독일의 함부르크라는 도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햄버거는 미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19세기 말 뉴욕·보스턴·시카고 등지에서 유행하던 '햄버거 스테이크'가 원조라고 한다. 요즘도 미국에는 지역마다 값비싼 햄버거를 판매하는 식당이 성업 중이다.

그런 햄버거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미국에서 피자나 도넛과 함께 패스트푸드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표준화된 조리법에 따라 빠른 시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조리한 햄버거가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이다. 독특한 색깔과 로고를 앞세운 맥도날드가 새로운 선진국으로 도약한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흔히 패스트푸드는 '열량과 지방은 지나치게 많지만 비타민·미네랄·식이섬유가 부족해 영양가는 없다'고 한다. 심지어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를 '쓰레기 음식'이라는 뜻으로 '정크 푸드'라고 부르기도 한다. 주로 영양학자·의사·식품평론가로 활동하는 전문가들의 어설프고 무책임한 지적이다.

패스트푸드로 판매하는 햄버거가 방부제 범벅이라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1년 이상 보관했는데도 양상추가 여전히 초록빛이고, 곰팡이가 피지 않은 '빅맥' 사진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되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햄버거가 방부제로 범벅돼 있는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패스트푸드 식당에서 햄버거에 굳이 방부제를 넣을 이유가 없다. 폼알데하이드 같은 맹독성 방부제는 처음부터 식품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식품의 유통 기한을 늘리기 위해 사용하는 안식향산(벤조산)·구연산(시트르산)·아스코브산(비타민C)·토코페롤(비타민E) 같은 살생물제(biocide)는 인체 독성이 충분히 낮은 '보존제'다. 즉석에서 조리해 소비하는 패스트푸드에는 그런 보존제도 넣을 이유가 없다.

우리의 잘못된 식생활 습관을 탓해야

우리가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열량과 영양소는 음식 자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열량이 높고 지방이 많은 음식이라도 실제로 먹는 양이 지나치게 많지 않으면 문제가 될 수 없는 법이다. 더욱이 우리가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과 영양소를 끼니마다 균등하게 나누어 섭취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고열량·고지방 음식을 먹을 때도 있고, 건강에 좋지만 열량이나 지방이 거의 없는 채소와 과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식생활이다. 하루 세끼를 모두 패스트푸드로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패스트푸드의 고열량·고지방을 지나치게 걱정할 이유가 없다.

값싸고 맛있는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가 영양불균형으로 생활습관병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생활습관병은 '과식'과 '편식'을 고집하는 잘못된 식습관을 가진 사람에게 주로 발생하는 질병이다. 자신의 실수를 아무 잘못이 없는 음식에 떠넘기는 태도는 매우 비겁하고 패배주의적인 것이다.

누구나 가족이 정성껏 마련해준 '슬로푸드'로 여유로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인 가정이 빠르게 늘어나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맛있는 슬로푸드를 마련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먹는 음식을 '정크'(쓰레기)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바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을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은 윤리적으로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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