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녹음한 통화, ‘불륜 재판’ 증거 될까···이번엔 대법 판단은?

김나연 기자 2024. 5. 1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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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박민규 선임기자

배우자 불륜을 입증하려고 불법으로 녹음한 통화 파일은 재판에서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위법 수집 증거는 형사재판뿐 아니라 민사·가사재판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단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A씨가 전 남편의 연인이던 B씨를 상대로 낸 위자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B씨는 A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지난달 16일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와 전 남편 C씨는 2011년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였다. 의사인 C씨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B씨와 2019년부터 사귀었다. A씨는 이 사실을 알았으나 곧바로 이혼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이후 2020년에는 A씨도 외도한 사실이 C씨에게 들켰고, 이들은 2021년 협의 이혼했다.

2022년 A씨는 “B씨와 C씨의 부정행위로 혼인 파탄에 이르렀다”며 B씨를 상대로 위자료 3300만원 지급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A씨는 C씨의 휴대전화에 자신이 몰래 설치한 ‘스파이앱’의 통화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다. 해당 파일에는 B씨와 C씨의 대화가 녹음돼있었다. 그러자 B씨는 재판에서 A씨가 낸 통화녹음 파일이 ‘위법수집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과 2심은 A씨가 낸 통화녹음 파일을 증거로 채택했다. “민사소송법상 가사소송 절차에서는 형사소송법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1, 2심은 “상대방 동의 없이 증거를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고, 증거 채택 여부는 법원 재량에 속한다”고 했다. 형사재판에서는 ‘불법 녹음’으로 인정되지만 민사·가사재판에서는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B씨가 A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을 근거로 “제3자인 A씨가 B씨와 C씨 사이의 대화를 녹음했으므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통신비밀보호법 14조는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전자장치 또는 기계적 수단을 이용해 청취할 수 없고,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제3자가 다른 사람들의 발언을 녹음하면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취지의 규정이다.

그간 민사·가사사건 재판에서는 형사사건과 달리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가 아니더라도 일단 증거로 채택해 왔다. 형사사건은 피고인 ‘무죄 추정 원칙’에 따라 증거능력을 엄격히 판단해야 하지만, 민사·가사사건은 당사자들 간의 소송이라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민사·가사사건에서도 증거의 위법성을 엄격하게 해석하겠다는 뜻을 담았다. 앞서 대법원은 2021년에도 “동의를 받지 않고 통화 내용을 녹음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에 의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나머지 증거들을 토대로 B씨와 C씨의 부정행위는 인정된다고 보고 A씨에게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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