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불평등 커지는 독일, 부유세 도입할까?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2024. 5. 19.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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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상속이나 증여에 부가되는 세율이 3%밖에 되지 않는다. 노동소득에는 그보다 10배나 많은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과세가 자산 불평등을 키운다.
독일에서는 상위 5%가 소유한 자산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건설 중인 신축 주택. ⓒAP Photo

올해 1월 유럽중앙은행(ECB)은 2023년 말까지 통계를 바탕으로 유로존(유로 사용 20개국)의 자산 불평등 보고서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유로존 내 전체 사유재산의 43%를 상위 5% 가계가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가 가진 자산이 56%를 넘었다. 반면 하위 50%가 소유한 자산은 5%밖에 되지 않았다. 독일은 더욱 심각해서 상위 5%가 전체 자산의 48.4%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존 국가 중 네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반면 독일의 하위 50% 가계가 가진 자산은 3%밖에 되지 않았다.

유로존에서 상위 5%가 가진 자산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라트비아로 약 54.1%를 가지고 있었고, 오스트리아(53.1%), 리투아니아(51.5%)가 그 뒤를 이었다. 인구수 4000만명이 넘는 국가 중에는 독일 다음으로 이탈리아(46.6%)·스페인(41.2%)·프랑스(40.6%)의 상위 5% 계층에 자산이 많이 몰려 있었다. 상위 5%가 가진 자산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사이프러스(29%)였다. 몰타(31.1%)와 네덜란드(32.7%)도 낮은 축에 속했다.

유로존 전체로 본다면 지난 5년간 자산 불평등 수준은 미세하게 줄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상위 5%가 소유한 자산의 비율이 2017년 이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이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ECB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부동산시장에 붐이 일었다. 주택을 소유한 가계의 자산 증가가 약 27%에 달했다. 반면 자가주택이 없는 가계의 자산 증가율은 17%였다. ECB 분석에 따르면,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나라의 주택 보유 비율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보다 높다. 이 때문에 같은 기간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더 많은 가계가 자산 증가를 경험했다.

독일의 세금 시스템은 자산 불평등의 주요 원인으로 꾸준히 지적되어왔다. 뒤스부르크-에센 대학 사회경제학 교수인 미리암 렘은 〈도이칠란트풍크〉 인터뷰에서 “독일의 경우 상속이나 증여에 실제로 부가되는 세율이 3%밖에 되지 않지만, 노동소득에는 30%나 과세한다”라며 부자들에게만 유리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독일에선 전후 세대가 고령화되며 상속·증여를 통한 자산 이동은 크게 늘어났지만,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자산 불평등이 커지고 있다는 비판 목소리가 높다.

커지는 불평등, 부유세 도입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또한 독일의 상속세 제도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OECD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속재산 중 실제로 세금이 부과되는 재산 비율은 독일이 10.1%에 불과했다. 이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벨기에로 48%에 달했다. 미국은 0.2%였다. 독일의 유산 상속 면세 한도는 부모 자식의 경우 40만 유로(약 5억8940만원)이며 부부의 경우는 50만 유로(약 7억 3670만원)에 달한다.

금융과 재정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 ‘피난츠벤데(Finanzwende)’는 기업 승계에 대한 세금 감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독일 기업은 사업체의 지속 및 고용보장 등을 조건으로 대부분 상속 세금이 면제되고 있다. 피난츠벤데는 정부 자료를 바탕으로 2009년 이후 기업 승계를 이유로 2023년까지 감면된 세금만 770억 유로(약 113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비판했다.

독일 화학그룹 바스프의 상속인 마를레네 엥겔호른이 ‘부자에게 세금을’이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있다. ⓒdpa

기업 상속세에 관해서는 독일 경제학자 사이에도 견해가 다양하게 갈린다. 일각에서는 기업을 상속한 사람이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상속세가 기업이나 기업의 지분매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상속세를 장기간에 걸쳐 분할납부하는 등 보완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며 기업 상속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속세 세율을 10% 정도로 낮추면 기업에 대한 특별 예외 조항 없이도 상속세를 거둘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정해진 금액을 넘는 순자산에 일종의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도 최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 경제연구소(DIW)의 마르셀 프라처 소장은 〈차이트〉 칼럼에서 팬데믹 등을 통해 국가부채는 역대 최고 수준인 데 비해 사회보호 시스템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강한 세금정책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하고 필요한 공공투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권이 계속해서 사회보장과 투자를 축소할지, 아니면 교육·건강·기후보호·사회 인프라 등 꼭 필요한 공공투자를 위해 높은 세금을 거둘지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독일 경제연구소의 세금정책 전문가 슈테판 바흐 박사는 중부독일방송(MDR)과의 인터뷰에서, 최근 제안되는 것처럼 200만 유로(약 29억4700만원) 이상의 순자산에 부유세를 부과할 경우 대략 인구 중 최고 부자 1%만이 과세 대상이 되면서도, 해마다 약 200억 유로(약 29조4700억원)의 세수가 증가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순자산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며 최고 부유층의 경우 다른 나라로 이주하거나 자산을 쉽게 옮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바흐 박사는 강한 세금정책을 위해선 국제적 공조가 필수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는 좌파당이 1995년까지 시행되다가 사라진 부유세를 재도입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정부·여당에서는 사민당과 녹색당의 일부 정치인이 부유세 도입에 찬성한다. 하지만 연방 정부 내에서 자민당이 부유세나 증세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어서 현 정부의 부유세 도입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고 독일 언론은 전망한다.

프랑크푸르트∙김인건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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