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이기적 유전자'는 쓰레기가 아니었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5. 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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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칼럼] 유인원은 어떻게 꼬리를 잃어버렸을까 (글 : 이대한 교수)


유인원(Ape)은 원숭이와 비슷하게 생긴 영장류(primate) 동물 중에서도 사람상과에 속하는 26종의 동물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상과는 크게 긴팔원숭이과(Hylobatidae, 18종)와 사람과(Hominidae, 6종)로 나눌 수 있으며, 사람과에는 인간을 비롯하여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오랑우탄, 고릴라, 침팬지, 보노보가 속해 있다. (긴팔원숭이는 원숭이라 유인원이다!)

분류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원숭이와 같은 다른 영장류와 유인원을 쉽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꼬리'를 찾아보는 것이다. 인간부터 긴팔원숭이까지, 유인원은 모두 꼬리가 없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유인원은 '원숭이와 인간과 가까운 동물로 몸이 털로 덮여 있고, 꼬리가 없거나 매우 짧은 동물(a type of animal that is closely related to monkeys and humans and that is covered in hair and has no tail or a very short tail)'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유인원은 왜 꼬리를 잃어버렸을까? 유인원 계통에서 직립보행에 이득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가설도 있고, 밀림 생활에 적응하면서 발달한 다른 특징(긴팔, 유연한 어깨 등)으로 인해 꼬리의 활용성이 떨어져서 퇴화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설들은 유인원이 '왜' 꼬리를 잃어버렸을까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도와주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지난 2월, 바로 그 '어떻게'를 풀어낸 연구 결과가 미국 뉴욕대 연구진에 의해 저명 학술지인 <네이처>지에 표지 논문으로 발표된다.


이 연구는 매우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제1저자이자 공동 교신저자인 시아 보 박사는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이때 퇴화한 꼬리의 흔적기관인 꼬리뼈를 다치게 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보 박사는 어떻게 유인원 계통에서 꼬리가 사라졌는지를 밝혀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연구에 착수한다.

연구가 진행될 당시 보 박사는 뉴욕대 랑곤 헬스에서도 계산의학연구소(Institute of Computational Medicine)에 소속되어 있었다. 논문의 또 다른 공동교신 저자인 이타이 야나이 교수가 이끄는 이곳은 생명정보를 활용하여 생의학과 생명 시스템의 진화를 연구하는 곳이다. 보 박사는 우선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생산되고 축적되어 온 방대한 생명정보를 '꼬리 상실'이라는 관점으로 재분석했다. 흥미롭게도 이때 영장류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인 생쥐 연구 데이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았다.

생쥐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모델 동물로서 이미 22년 전에 유전체(genome) 지도가 발표되었고, 많은 유전자들에 대한 기능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연구팀은 수만 개의 생쥐 유전자 중에서 꼬리 발생과 관련된 것으로 밝혀진 100여 개의 유전자들을 추려내었다. 그리고 이 유전자들 중에서 유인원 계통에서만 공통적으로 변이된 유전자들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TBXT라는 유전자가 연구팀의 이목을 끌게 된다.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생쥐뿐만 아니라 물고기나 심지어 강아지의 꼬리가 없어지거나 짧아진다는 사실이 보고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유전자의 특정 위치에서 마우스나 다른 영장류에는 없고 유인원에서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DNA 변이가 확인된 것이다.

이 변이가 실제로 꼬리 상실이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연구팀은 생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다. DNA에 들어 있는 유전자는 '엑손'과 '인트론'으로 나눌 수 있다. DNA에 있는 정보가 RNA로 복제(전사)되고 나면, '스플라이싱'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단백질에 대한 정보가 없는 인트론을 잘라져 나가고 엑손들끼리 연결되어 전령 RNA(mRNA)가 완성된다.

그런데 이 스플라이싱 과정에서 유전자에 존재하는 모든 엑손이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트론이 잘려 나가는 과정에서 엑손이 함께 떨어져 나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같은 유전자라 할지라도 어떻게 스플라이싱이 되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엑손 조합으로 이루어진 여러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매운탕을 끓일 때 고추장, 고춧가루를 빼고 끓이면 '지리'라는 색다른 음식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연구팀이 확인한 유인원의 TBXT 유전자 변이는 바로 이러한 스플라이싱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변이였다. 흥미롭게도 이 변이는 '진정한 이기적 유전자'로도 불리는 전이인자(transposable element)였다. 인간 DNA 중에서 단백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서열은 불과 2% 미만이다. 반면 전이인자라고 불리는 염기서열은 50%에 육박한다. 전이인자는 '점핑 유전자'라고도 불리는데 '복붙(Ctrl c+v)' 혹은 '잘라 붙이기(Ctrl x+v)'를 통해 자신의 서열을 퍼뜨리는 DNA 속의 바이러스 같은 존재다. 이러한 전이인자의 속성 때문에 개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직 자기 증식만 하는 '이기적 인자(selfish element)'로 불리며, 심지어 쓰레기 DNA(junk DNA)라고도 불려 왔다.

그런데 연구팀은 TBXT의 6번째 엑손 오른쪽에 마우스나 원숭이처럼 꼬리를 지닌 종에게는 없고 오직 유인원 계통에서만 전이인자(AluY)가 '복붙'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전이인자가 6번째 엑손 왼쪽에 있으며, 마우스와 모든 영장류에게서 발견되는 또 다른 전이인자(AluSx1)와 쌍을 이루어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두 전이인자가 쌍을 이루는 유인원에서만 6번째 엑손이 스플라이싱 과정에서 인트론과 함께 제거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보 박사는 생쥐 실험을 전문으로 하는 다른 연구원들의 도움을 받아 바로 이 전이인자 변이로 인한 '차별적 스플라이싱(alternative splicing)'이 꼬리 상실의 원인이 됨을 입증했다. 크리스퍼 유전체 편집 기술을 이용하여 생쥐의 TBXT 유전자를 유인원과 비슷하게 조작했더니 생쥐의 꼬리가 짧아지거나 사라진 것이다!

TBXT 유전자를 유인원처럼 조작했을 때, 꼬리가 짧아지거나 사라진 생쥐. M(수컷), F(암컷). 가장 왼쪽 한 쌍이 정상 개체. 나머지 세 쌍은 유전자 조작으로 꼬리가 짧아지거나 사라진 돌연변이 개체. 출처 : Nature, https://doi.org/10.1038/s41586-024-07095-8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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