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질문(2) : 묻지마 칼부림에 대한 호신술은 도망가는 것만이 답인가?[노경열의 알쓸호이]

배우근 2024. 5. 1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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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FC 선수에게 호신술 교육받는 순찰대원들. 연합뉴스


지난주 글에서 묻지마 칼부림 등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달려서 도망간다’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언급했다. 달려서 도망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으며, 이 때를 대비해 호신술을 제대로 익힐 필요가 있다고도 설명했다.

자, 그럼 이번에는 본격적인 호신술을 다루기 전 갖추어야 할 심적, 신체적 준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것은 ‘어떤 기술이든 위험 상황을 비슷하게 연출해 끊임없이 반복 훈련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이다. 훈련한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대응을 시작할 정도로 연습해야 한다는 의미다.

필자가 스포츠 기자이던 시절, 프로야구 취재를 갔는데 그날 양궁 국가대표팀이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야구장을 찾아 훈련한다는 소식을 전달받았다. 양궁 대표팀이 야구장에서 무슨 훈련을 할까? 바로 담력훈련이다.

3만명 이상의 관중이 응원하면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함성의 압박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활을 쏠 수 있도록 담력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런 훈련이 실제 올림픽 경기에서 다양한 돌발 상황이 벌어져도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운영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호신술도 똑같다. 보통 사람들은 흉기를 든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즉시 도망가지 못 한다. ‘놀람’과 ‘공포’가 뒤섞여 몸을 긴장시키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기 때문이다. “불이야”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라는 호신술 교육도 있는데, 사실 긴장해서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면 크게 소리지르는 것도 어렵다.

지난회 칼럼과 연결된 영상에 한 분이 ‘“저기에 칼 든 사람이 있어요”라고 소리쳐주는 것이 중요하고 그게 일반인의 한계’라고 댓글을 남겨주셨는데, 사실 저 정도 문장으로 소리쳐 주는 것 역시 엄청나게 훈련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 만큼 어떤 호신을 위한 ‘동작’이 자동으로 튀어나올 정도가 되려면 반복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다음에 익혀야 할 마음가짐은 첫번째 움직임에서 ‘반드시’ 상대의 움직임을 잠깐이나마 멈추게 할 것이라는 각오다. 호신술 무용론을 얘기하는 많은 사람이 간과하는 점은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우리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일반인’이라고 항상 강조하면서 ‘흉기를 들고 다가오는 사람 역시 일반인’이라는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내가 어떻게 준비하든 흉기를 든 사람은 그 방어를 뚫고 나를 해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흉기를 들고 달려드는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퇴역한 군인 혹은 스파이’나 ‘암살자’가 아니며, 대부분은 처음으로 사람에게 흉기를 휘둘러보는 ‘초보자’다. 그들 역시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떨어지기 마련이며, 긴장을 뚫고 실행한 첫 공격이 실패할 시 다음 행동으로 쉽게 연결하지 못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흉기를 최후의 수단으로 삼고 다른 방법으로 위협을 가하려 했는데 대응 결과에 따라 흉기 자체를 못 꺼낼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한 20대 여성이 초등학생을 도랑에 밀어 해하려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초등학생은 저항에 성공해 도망쳤는데, 이후 가해자인 여성을 체포했더니 가방에서 미리 준비한 흉기가 발견됐다)

그런 만큼, 첫번째 움직임에서 반드시 상대를 멈추게 해야 한다. 첫번째 공격이 성공해버리면, 가해자의 긴장이 풀려 더 거침없이 공격할 가능성이 높다. 격투 경기처럼 상대와 몇 수를 주고받으며, 기회를 노리는 상황 같은 건 머릿속에서 지우고 최단 시간에 첫 공격을 멈추게 하고, 상대가 멈칫하는 사이에 도망을 가든 2차, 3차의 제압을 시도해야 한다.

세번째는 적어도 낯선 곳이나 위험해 보이는 곳을 가게 되면 평소보다 더 주변을 살피고 언제든 무슨 일이 생기면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는 것이다. 흔히 군대에서 얘기하는 ‘사주 경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이런 방법에 대해서는 이미 앞선 칼럼에서 많이 다뤘었다. ‘걸어다닐 때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착용하지 않기’ 등의 내용 기억나는가? 필자는 국내에서는 그런 일이 잘 없지만, 외국에 나갈 때는 항상 ‘방검소재(칼에 잘리거나 뚫리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진 가방을 항상 메고 다녔다. 소매치기로부터 귀중품을 도난당하는 일도 막아주는 데다 흉기로 위협당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방패 하나를 가지고 있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칼부림 사건이 자주 일어나면서 이 가방의 사용 빈도가 많이 늘었다. 20년 넘게 무술을 수련한 필자도 이렇게 대비를 하는 만큼 일반인 입장에서 여러가지 대비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구독자분의 질문에 답을 드리기 위해 시작한 내용이지만, 지난주 글이 나간 후 아니나다를까 “저런 거 괜히 따라하다 더 위험해진다. 도망치는 것 정도가 일반인이 할 수 있는 한계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필자가 방검소재로 된 가방을 구입했을 때 주변에서 “괜히 그 가방 믿고 흉기에 대응하다 더 다치는 거 아니냐. 그냥 도망가면 안 다칠텐데”라는 얘기도 들었다. 필자가 여러번 언급했지만, 호신술은 ‘보험’과 같다. 사용 안 하게 되면 제일 좋지만, 미리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험은 다양한 항목이 있다. 암이나 뇌졸증 같은 심각한 병에 대해서도 보험금이 나오지만, 가벼운 부상이나 사고 등에 대한 보험금도 있다. 흉기를 사용한 범죄라고 해도 모두가 묻지마 무차별 칼부림은 아니며, 다양한 상황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충분히 숙지하고 그 대비책을 훈련하는 것. 이것이 호신술이다. 칼럼 초기에 분명 강조했다.

“그런 거 다 소용없다”며 치부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렇게 냉소만 흘리는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 곁에서 멀어지는 것 또한 당신을 위한 호신술이다.


노경열 JKD KOREA 정무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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