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정치에게] ①‘에듀폴리틱스’ 유혹에서 벗어나 ‘백년대계’로 가자

이천종 2024. 5. 1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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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라는 키워드로 살펴본 의정갈등 연원
고려 광종의 개혁 ‘과거제’에서 독이든 성배가 된 ‘수능 제도’까지
“에듀폴리틱스(edu-politics) 경계하고 백년대계 유념해야”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의사 증원에 공감하는 압도적인 여론을 바탕으로 밀어 붙이는 정부와 직역의 특수성을 무기로 한 의료계가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처럼 일촉즉발이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2023년 11월 16일 서울의 한 시험장에서 수험생이 시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배분 처분을 멈춰 달라는 의대생·교수·전공의·수험생의 신청이 항고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갈등은 진행형이다.

어느 한 쪽이 먼저 무릎을 꿇지 않고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막막한 형국이다. 생사를 담보잡힌 애먼 국민들만 신음하고 있다.

도대체 이 강경한 대치의 근원은 어디에 비롯됐을까. 여러 관점 중에서 ‘시험’이라는 키워드로 살펴보면 그 민낯이 살짝 드러난다.

과거와 고시, 수능으로 표현은 다르지만 어디론가 들어가기 위한 ‘입시’는 한국 사회에서 신분상승을 위한 욕망의 사다리에 올라타고 싶은 이들의 도구가 된 지 오래다. 의대증원 갈등에서 보듯 그 어떤 권력자도 함부로 건드리기 힘든 민심의 ‘역린’이 됐다.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앞으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고려 광종의 과거제, 정국에 파란

우리나라에 과거제(科擧制)가 본격적으로 처음 도입된 것은 958년. 고려 광종 9년 때다. 과거제를 다룬 각종 역사 서적에는 광종이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쌍기(雙冀)의 건의에 의해 실시했다고 적고 있다.

쌍기라는 인물은 5대10국으로 나뉜 중국에 막 통일의 기운이 싹트던 시기 후주(後周)의 책봉사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

광종은 당시 쌍기의 관직이 과거시험을 주관하는 시대리평사(試大理評事)라는 점을 눈여겨보고 발탁했다고 한다. 사신 일행의 귀국 행렬에 쌍기가 와병을 이유로 합류하지 못하자 광종은 후주에 요청해 그를 고려에 정착토록 했다. 원보한림학사(元甫翰林學士)에 임명하고, 고려 최초 과거제의 틀을 준비하게 한다.

‘골품(骨品)’이라는 뼛속까지 각인된 신분제 사회의 신라와 비교하면 과거제는 혁명적이었다. 전근대 사회의 이단아였고, 당시로서는 개혁정책의 아이콘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조선말 갑오경장 때에 가서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거의 1000년 가까이 고려와 조선의 핵심 관료 충원 제도로 작동했다.

과거제의 등장은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고려 정국에 일대 파란이었다.
서울 종로 운현궁에서 열린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행사’ 모습. 이제원 기자
문벌 세력의 지배 구조가 뿌리 깊고, 건국 공신이 득실거리던 고려 초창기. 공도 없고, 내세울 집안도 변변치 않으며, 경제적 기반도 부족했던 이들이 ‘과거’라는 문을 통해 지배 세력의 카르텔로 손쉽게 진입할 수 있게 길을 터준 것은 일대 정치적 사건이었다.

광종 입장에서는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이었을 테지만 당시 기득권 세력에게는 일종의 친위쿠테타로 여겨졌을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이던 당시 귀족층에 대한 견제조치이자 왕권 강화의 주요한 수단이었던 만큼 당시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 구축을 꿈꾸던 왕이라면 누구라도 도입하고 싶었을 것이다. 귀족의 기득권을 막고 왕의 권한을 늘리는 데 과거제는 탁월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특히 상당히 많은 이들이 참가할 수 있는 개방성으로 인해 개혁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고려 4대 임금으로 왕조 수성의 토대를 만들어야했던 광종도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 광종을 둘러싼 정치 환경이 그런 선택을 강제했는지도 모른다.

되돌아보면 한반도에 과거제가 도입될 당시부터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던 셈이다. 정치적 도구로서의 과거제는 그 본고장인 중국에서 비롯됐다.

왕권 강화가 절실했던 당 태종은 과거시험을 두고 “천하의 영재가 내 올가미 걸려들었다”고 호언했다. 드넓은 중국 대륙을 통치하는 당 태종 입장에서 과거는 중앙집권적이고, 수직적 위계를 구축해 이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는 데 최적의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정복한 이민족과 화학적 결합을 위해서는 자신의 통치철학을 학습하고 전파할 이들과 그 시스템이 필요했다. 과거제는 이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특효약이었다.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관련 안내가 게시돼 있다. 뉴스1
◆‘독이 든 성배’가 된 입시

광종 개혁정책의 아이콘이었던 과거제에 연원을 둔 각종 고시와 수능 등 입시 시험은 한국 사회에서 정파적 이해에 휘둘려 에듀폴리틱스(edu-politics)로 전락하고 있다. 에듀폴리틱스란 교육정책이 교육적 가치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현상을 뜻한다.

윤석열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은 의료개혁이 중요한 명분이지만 정책 추진 과정을 되짚어보면 정치적 이해관계도 다분하다.

윤석열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에서 의대정원 증원 정책은 여론의 지지세가 가장 뚜렷하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놓고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며 의료공백이 이어지는 등 극심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지만, 70%가 넘는 국민은 여전히 의대정원을 증원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7명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4~15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72.4%(매우 필요하다 26.1%, 필요한 편이다 46.3%)가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는 답을 내놨다고 16일 밝혔다.
서울 시내의 대형병원에서 한 환자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진들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여권이 참패로 끝난 4.10 총선만 해도 올초 의대정원 증원 이슈가 제기됐을 때만해도 여론의 지지로 여당의 호재로 작용하기도 했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의대증원 여론이 압도적이어서 정책 추진 초기만해도 이를 발판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낙관론이 여권에서 상당했다”면서 “낙관론에 취해 정책추진과정에서 디테일이 부족해던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해 ‘킬러문항’(초고난도 문제) 논쟁도 비슷한 맥락으로 진행됐다.

앞서 문재인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딸의 대학 입시 의혹이 한창이던 2019년 9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에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던진다.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이 논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대학입시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입시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입시제도가 공평하지 못하고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면서 “특히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에 깊은 상처가 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또 “공정의 가치는 경제 영역에 한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회 영역, 특히 교육 분야에서도 최우선의 과제가 돼야 한다”며 “이상론에 치우치지 말고 현실에 기초해서 실행 가능한 방안을 강구하라”고 강조했다.

조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첫 언급이 ‘대입 제도’라는 점에서 파장은 컸다.

당장 여야가 “교육개혁의 기회로 삼자”(여당), “조국 정국 물타기”(야당)이라며 맞섰다. 공정성 도마에 오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전면 수술대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부터 정시확대와 수능 시험 개편론 등이 제기됐다.

교육부도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바로 다음날부터 실무작업에 들어갔다. 2018년 공론화위를 거치며 숱한 진통 끝에 가까스로 봉합한 ‘정시확대 30%’의 아픈 기억 때문에 대통령의 돌발 발언에 초반에 다소 당황한 기색이 비치기도 했으나 잠시 뿐이었다. 그동안 추진중인 정책과 대통령 지시 사항의 연계성을 찾아 그럴듯한 새 모델을 찾기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다음날 수능 관련 업체들의 주가가 이상 급등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교육계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문 대통령 지지성향의 진보성향 교원단체들까지 대통령 발언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입시는 한국 축구와 비슷한 처지다.

한국 축구 감독 자리가 ‘독이 든 성배’이듯 입시 개혁의 선봉에 서는 것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누구든 칼을 쥐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뜰 수도 있고, 저주에 파묻혀 순식간에 무대를 떠날 수도 있다.

입시는 축구만큼이나 전국민이 나름 전문가인 분야다. 입시 정책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비난 일색의 악플과는 다른 경향을 보인다.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바라본 현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꽤 진지한 문체로 길게 써내려간 글이 많다.

한국의 대입 제도는 새 정부가 출범할 때 마다 개혁과 수정의 단골 메뉴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돌아보면 도돌이표 개혁이었다.

이전에도 정권을 잡은 이들은 보수든 진보 진영이든 모두 백년지대계인 입시 개혁에 큰 관심을 보였다. ‘개혁’이라는 칼을 쥐고 입시 방식과 그에 따른 초중고 교육과정을 흔들었다. 권력의 구심력이 강한 정권 초에는 여론의 기대를 바탕으로 큰 그림을 그려 출발했지만 디테일에서 늘 무너졌다.

왜 늘 똑같은 실패가 이어졌을까. 입시는 이해관계가 다층적이다.

어떤 제도를 도입하느냐에 따라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갈린다. 입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이 큰 만큼 불리하다고 느끼는 이들의 극렬한 저항은 불가피하다. 이런 첨예한 갈등 구도가 완연한데 진영 논리에 치우친 교육계가 이해관계에 따라 쉽게 변하는 여론을 좇아 만든 대증요법이 많았던 것이 주요한 실패 원인이다.

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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