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라고 평가합니다”… ‘의대 증원 집행정지’ 법원은 기각·각하했는데 왜?

정재영 2024. 5. 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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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증원 정당성 인정”
의료계 “대법 판단 남아”
“무승부라고 평가합니다.”
 
서울고법이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2025학년도 의대 2000명 증원·배분 결정처분의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16일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가운데, 이번 소송을 대리한 이병철 변호사는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법원 결정으로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변화가 없음에도 원고의 ‘일부 승리’를 주장한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 시내의 대형병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의료진 앞으로 환자 가족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새 기회 열렸다”

17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이 변호사는 전날 법원 결정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서 “서울고법의 결정은 △제1심 각하결정(원고적격 없음)을 파기하고 부산대 의대생의 원고적격을 인정한 점 △교육부장관의 배분 결정뿐만 아니라 복지부장관의 2000명 증원 발표도 처분성을 인정한 점 △대학의 자율성은 절대 존중돼야하므로 2026학년도 이후에도 대학의견을 반영하도록 한 점 △나아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 긴급성을 인정한 점에서 ‘의료계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아쉽게도 정부 측의 공공복리(증원의 필요성)를 우선시 한 점에서는 정부의 승리”라며 “일단 무승부라고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고법의 나머지 6개 사건(특히 충북대)과 함께 대법원의 판단이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17일 서울고법 충북대 등 32개대학 의대생 사건 재판부(행정4-1부, 행정8-1부)에 고법 행정7부에서 그동안 진행됐던 모든 소송자료들(의료계 및 정부가 제출한 자료)을 일괄 제출하고, 신속한 결정을 촉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을 대리한 이병철 변호사. 뉴시스
◆‘매년 2000명 증원’ 깨질 수 있다?

법원이 증원의 필요성에 방점을 찍고 집행정지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의대생의 경우 소송 원고 자격을 인정받았고, 2026학년도 이후에도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언급했다는 게 의료계가 승리했다고 언급한 배경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대 2000명 증원을 발표하면서 5년간 총 1만명 증원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2025학년도에 한해 거점국립대에 이미 배정된 증원분의 50∼100% 선에서 증원을 자율 조정하도록 허용했다.

정부는 이와 관련 대학 자율조정은 2025학년도에 한해서라고 못박았지만, 의료계는 법원이 ‘2026학년도 이후에도 대학의 자율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지적한만큼 앞으로 2000명 증원을 강행해선 안 된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특히 “의대생 신청인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한다”면서도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의대생의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을 인정한만큼, 올해처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법원 판단이 달랐을 수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관측된다.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모습. 연합뉴스
◆“학칙개정, 모집인원 확정 조속 추진”

한덕수 국무총리는 전날 재판부 결정 직후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서 “정부는 사법부의 현명한 결정에 힘입어, 더 이상의 혼란이 없도록 2025학년도 대학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며 대학별 학칙 개정과 모집인원 확정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이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결정에 따른 대학별 학칙 개정은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대학에서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의무사항”이라며 “아직 학칙을 개정 중이거나 재심의가 필요한 대학은 법적의무에 따라 관련 절차를 조속히 마무리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초 예정대로 5월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 입학전형 시행계획을 승인하고, 각 대학별 모집인원을 발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주호 사회부총리,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정원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의대생, 훌륭한 의사의 꿈 이어가주길”

전공의 집단이탈 후 병원을 지키다 함께 의료현장을 떠났던 전임의들은 상당수 복귀한 상황이라 이번 판결 이후 전공의와 의대생의 집단 복귀 여부가 관심이다.

한 총리는 “법원 결정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는 의료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평가하면서도 “아직도 우리 앞에는 의료계 집단행동이라는 해결되지 않은 난제가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여러분, 이제는 돌아오셔야 한다”며 “사법부의 판단과 국민의 뜻에 따라 집단행동을 멈추고 병원으로 복귀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의대생 여러분도 속히,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와주시기 바란다”며 “하루빨리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환자를 살리는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는 여러분의 소중한 꿈을 이어가 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 16일 서울 시내 한 의과대학 앞으로 의료진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전공의들 “기각이 낫다, 단일대오 유지”

전공의 집단이탈이 석달에 가까워진 가운데 13일을 기준으로 ‘빅5’ 병원에서 계약대상인 1212명의 전임의의 70.1%가 계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임의 계약률이 70%대를 넘긴 게 처음이라 정부는 전임의 복귀가 전공의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0개 수련병원의 전임의 계약률도 70%에 육박하고 있다. 전임의는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뒤 병원에서 연구하며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 펠로나 임상강사로 불린다. 전임의 복귀는 공보의 소집해제와 군의관 전역 시기가 겹친 것도 이유지만, 정부가 지역 거점국립대 의대교수를 1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배경으로 꼽힌다.

복귀하는 전임의들은 전날 법원 결정으로 더 늘어날 수 있는데, 전체의 93%가 이탈한 전공의들의 복귀로 이어질지가 최대 관심사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붙은 의대증원 반대 홍보물. 연합뉴스
하지만 의사 커뮤니티 분위기는 “법원 판단 기대하지 않았고, 결정과 무관하게 복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각이 낫다. 단일대오를 유지하자”거나 집행정지가 인용됐으면 교수가 더욱 복귀하라고 했을 것인데 차라리 잘 됐다는 반응도 있다. 아울러 “인용됐다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듯한 퇴로를 제공하는 셈이 되는 것인데, 오히려 인용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공의 이탈 장기화로 수술·진료가 줄면서 수입이 급감한 병원들의 위기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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