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늉후늉 우는 햄스터, 슬퍼 마 혼자가 아니야…<흔한햄> 잇선

신다은 기자 2024. 5. 18. 22:0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WRITERS][21WRITERS 잇선②]―외로움을 동력 삼아
2024년 4월29일 서울 종로구 송송책방에서 잇선 작가가 <한겨레21>과 인터뷰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우바우> <흔한햄> 잇선 작가의 이야기가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야식 먹고 자책하는 햄스터’ 누가 제 방에 CCTV 다셨어요’(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13.html)◆

63살 할아버지 닮았다고요? 후기늉 

—독자에게 ‘신체 나이 63살’이라는 장난을 자주 치시던데요. 실제로도 몸이 안 좋으세요?

“오래 앉아서 일하다보면 안 아픈 데가 없잖아요. 목디스크며 터널증후군도 있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후염도 생기거든요. 그때 ‘신체 나이가 63살이구나’ 생각해요. 원래도 할아버지 닮았다는 말 많이 들어요. 한번은 노래방 가서 제가 <붉은 노을>을 예약했더니 친구들이 놀라더라고요. 빅뱅 노래가 아니라 이문세 노래라서요.”

—‘후기늉’(주인공이 위축되어 내는 소리) ‘쮸붓쮸붓’(버섯이 걸어가는 소리)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풍부하게 쓰십니다. 이런 표현은 어떻게 구상하나요.

“우리가 물을 마실 때 보통 ‘꿀꺽꿀꺽’이라고 하잖아요. 이건 조금 뻔하다, 고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꼴깍꼴깍’ 쓰다가 살짝 아쉽네. 의성어는 말을 지어내도 되니까요. ‘꼴롱꼴롱’ ‘꼴꼴꼴’… 하다보면 ‘이거 괜찮네’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집에 있다보면 좀 나사가 빠질 때가 있거든요. 일하기 싫으면 자기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나오잖아요. 으-야- 뭐 그런. 이런 걸 그냥 써보자. 솔직히 20%는 고민한 거고 80%는 그냥 무의식중에 나오는 걸 쓰는 거예요.”

잇선 작가의 작업대. 네이버웹툰 <흔한햄> 작업 이미지가 화면에 띄워져 있다. 잇선 제공

—작가님이 생각하는 ‘내 만화의 경쟁력’은 뭘까요.

“울분이나 애환이요. 사람마다 발산 포인트가 있는 것 같은데 저는 억울한 감정도 좀 있거든요. 사는 게 쉽지 않죠. 태어난 이상 강제적으로 살아야 하니까 거기서 오는 억울함도 있고요. 그럼에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겨내려다보니 오기와 울분도 생기고요. 거기서 많은 감정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심각하게만 그리지는 않고요. 귀엽게 연출하려 노력합니다.”

—작품 내용도 이미 완성된 인물보단 좌충우돌하며 자기 길을 찾는 인물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 걸까요.

“맞아요. 아마 제가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응원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메밀면이 프리랜서에게 의외로 중요하다

“먹자, 나사 빠질 때까지. 먹자, 싫은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이후 12시간 잤다….”(<흔한햄> 1화 중)

빵공장에서 매일 고된 노동을 하는 작은 햄스터.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 발버둥 치지만 블로그 부업도 외주도 영 쉽잖다. 그나마 하고픈 일을 하겠다며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야식과 유튜브의 유혹이 상상 이상이다. 네이버웹툰 <흔한햄> 이야기다.

—<흔한햄> 주인공이 돌고 돌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는데요. 작가님 경험도 담겨 있을까요.

“집에서 프리랜서 생활을 하다보니 평범하게 살던 방식과는 아예 다르게 생활해야 하더라고요.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크다고 느꼈어요. 가령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혼자 일하는 경우엔 밥을 많이 먹으면 오히려 힘이 빠져요. 혈당이 급격히 오르기 때문에요. 그래서 탄수화물 함량이 낮은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하고요. 허리 건강을 위해선 걷기, 그리고 하루 5분 스쿼트도 좋죠. 저는 어디 조언받을 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무리하다 몸이 자주 아팠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했더니 몸이 안 아프더라’는 거죠. 그런 게 작품에 녹아들어간 것 같아요.”

—일과를 간단히 소개한다면요.

“먼저 희망 편이 있어요. 아침 8~9시에 일어나서 오전에 작업 구성하고 12시 점심 먹고 저녁 8시 안까지는 그림 작업을 다 끝내는 루틴이죠. 그 뒤로는 에스엔에스(SNS) 그림 마무리하고 씻고 운동하고 집안일 합니다. 반대로 절망 편은 전날 야식을 먹어버리는 거죠. 그러면 배가 불편하니까 잠이 안 오고 핸드폰 보는 딴짓을 해요. 그러다 정신 차려보면 마치 사기당한 것처럼 새벽 2시가 돼버려요. 그게 절망 편이고 사실상 제 현실입니다.”

잇선 작가가 계획하는 하루 스케줄. 운동부터 영어공부까지 빽빽하다. 잇선 제공

—감정도 관리하신다고요.

“머리가 아픈 날은 작업이 늦게 끝나잖아요. 감정도 비슷해요. 너무 기분이 좋거나 그러면 놀고 싶어져요. 괜히 ‘오늘 한번 나가서 작업해볼까’ 했다가 카페에 자리가 없거나 옆 사람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하면 ‘망했다’ 하죠.”

—하루 루틴을 유지한다는 게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하루를 망치면 원고를 못한다는 뜻이고요. 그러면 기분이 굉장히 안 좋아요. 자기 패배감이 들고 일정이 깨졌다는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믿지 못하게 돼요. ‘내가 이 일을 계속하려면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게 무너지면 잘 때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아요.”

—자신을 채찍질하면서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은 열망이 강했나요.

“싫은 것을 하기 싫다는 마음이 제일 강했고요. 만화라는 매체 자체도 매력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는 제 생각을 쓰고 공개하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작업 환경이 잘 맞아요. 집 안에 있을 수 있고, 음악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고요.”

네이버 <흔한햄> 38화 네이버웹툰 갈무리.

—시행착오를 같이 나눌 분들이 있었나요.

“저는 대학교를 다니다 말았고 고등학교도 인문계를 나오다보니 학교 친구들이랑은 이런 얘길 나눌 기회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만화 쪽 지인을 더 만들려고 노력했죠. 제가 내향적인 편인데도 민망함을 무릅쓰고 ‘언제 한번 식사…’ 이런 메시지도 보내봤어요. 물론 많이 까였죠. 그래도 만나주는 분들이 있어서 좋은 팁을 얻었어요.”

—독자들에게 팁을 공유해준다면요.

“점심 메뉴로 배추찜이 정말 간단하고 몸에도 좋아요. 배추랑 냉동 오징어 사서 전자레인지에 5∼10분 익혀서 소스랑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거든요. 단백질 보충도 되고요. 저녁 메뉴는 메밀국수가 좋은데, 꼭 메밀면 100%여야 돼요. 밀가루 비중이 적은 걸 사야 탄수화물을 줄일 수 있거든요. 브로콜리, 버섯 등을 넣고 프라이팬에 구워 먹으면 꽤 맛있습니다. 인터넷으로도 재료를 살 수 있고 별로 안 비싸요.”

—프리랜서들은 휴식기 생계 압박이 큽니다. 웹툰 업계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요즘은 플랫폼 중에도 작가 보험이 같이 가입되는 시스템이 있더라고요. 연재 끝나면 연금처럼 얼마를 받는 거예요. 또 어떤 회사는 차기작으로 콘티를 받으면 비용을 지불하기도 해요. 그런 게 있으면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죠.”

—독자의 어떤 반응을 볼 때 보람되거나 기쁜가요.

“재밌다는 얘기는 항상 좋고요. ‘도움이 됐다’는 말도 좋아요. 제 만화가 퀄리티는 대단해 보이지 않아도 나름 하루 종일 그릴 때도 있거든요. 그런데 ‘내 만화 안 봐도 사람들 잘 살 것 같다’고 생각하면 조금 무기력해져요. 에어컨 만든 사람은 분명 날 살렸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화는 진짜 (그만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힘든 시기에 도움이 됐다는 말을 들으면 마냥 나만을 위한 일은 아니구나, 바보 같은 일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기분 좋아요.”

잇선 작가가 인터뷰에서 수차례 강조한 메밀면 야채 샐러드 볼. 균형 잡힌 식사 메뉴로 추천했다. 잇선 제공

에필로그

훌쩍, 후늉후늉…. 작고 귀여운 동물들이 우는소리를 내면서 어찌저찌 살아가는 이야기. 무기력과 체념에 맞서 어떻게든 삶을 가꾸려는 만화 속 주인공들에 저절로 눈길이 머물렀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어서, 또 그 길을 먼저 간 작가의 흔적이 보여서일 테다.

실제로 만난 작가는 단단한 사람이었다. 무한경쟁의 웹툰 세계에서 부단히 자기 자리를 찾고자 고심했다.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어려움보다 그 안에서 잘 살아갈 팁을 조금이라도 나누고자 했다. 그가 인터뷰 동안 가장 열심을 쏟은 대목은 의외로 ‘메밀면 레시피’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조용조용하던 말투가 갑자기 커지며 “저탄수화물 면이 중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홍익인간 정신으로 좋은 팁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정작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엔 다시 목소리가 작아지며 “그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독자들이 판단해주실 부분…”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주변에 만화계 동료가 없어 조언도 얻기 힘들었다는 잇선 작가. 외로움을 동력 삼아 스스로 사람들의 통로가 됐다. 만화를 통해 프리랜서들, 나아가 자기 자신을 다독이며 잘 살아보고 싶은 독자들의 마음을 엮어낸다. 그의 만화는 오늘도 훌쩍거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 편지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한겨레21이 사랑한 웹툰 작가’ 21명을 인터뷰한 ‘21 라이터스 ④’는 한겨레 네이버스토어에서 낱권 구입할 수 있습니다.

‘21 WRITERS ④’ 한겨레 네이버스토어 구입 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category/263adeff1d78477097022d4d89153abc?cp=1

2024년 4월29일 서울 종로구 송송책방에서 잇선 작가가 작품 <이상징후>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류우종 기자

작품 목록

<우리가 바라는 우리> 2015년 4월11일∼2016년 12월28일 네이버웹툰에 연재. 구독자 23만 명을 모은 인기작. 약칭 <우바우>로 불린다. “시궁창 같은 삶이라도 바라는 건 많다”는 작품 설명답게 서열주의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부단히 찾으려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상징후> 2021년 7월18일∼2023년 2월12일 카카오웹툰에 연재. 현실이 지옥 같을 때 사람들에게 ‘이상징후’가 나타난다. 무기력한 버섯사람부터 뭐든지 빨리 끝내는 토끼사람까지, 내면 깊숙이 숨겨뒀던 욕망이 기상천외한 현상으로 발현된다.

<흔한햄> 2023년 12월29일∼현재 네이버웹툰에 연재.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노동의 삶. 공장과 식당에서 녹초가 되어 일하고 나면 내면의 질문이 고개를 든다. 이러다가 내가 원하는 삶은 언제 살지? 주인공 햄스터가 자아실현과 생계를 아슬아슬하게 줄 타며 성장하는 이야기.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