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차등적용' 프레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김예리 기자 2024. 5. 1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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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이주·돌봄 차별적용' 정부·재계가 띄우고 언론이 부채질
한국은행까지 나선 가운데 '이주민 혐오' 보도 가세 "일단 찔러보기"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2025년도 최저임금위원회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이 지난달 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수준(금액) 대폭 인상, 차등적용 개악 저지, 최저임금 미적용 노동자 전면적용 등의 투쟁 계획을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물가상승을 상징하는 장바구니 생활물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정부와 재계가 가사·돌봄 노동자 최저임금에 차등적용을 주장하고 있다. 재계는 해마다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가운데, 오래 전 노동계가 현실성과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한 뒤로도 최저임금 차등적용 이슈가 해마다 돌아온다. 특히 올해는 정부와 재계가 일찌감치 '외국인 가사도우미 차별적용' 이슈를 띄우고, 다수언론이 검증 없이 받아쓰는 한편 이주민 혐오에 기반해 이슈를 키우는 보도 경향이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지난 2월17일부터 5월17일까지 3달 간 28개 주요 종합·경제일간지와 방송사가 '돌봄 분야 최저임금'과 관련해 보도한 기사는 365건에 이르렀다.

석달 간 보도량은 크게 세 기점을 중심으로 치솟았다. 4분의 1에 달하는 보도(92건)가 지난 3월 한국은행 '돌봄서비스업 최저임금 차별적용' 주장에 쏠렸다. 한국은행은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이슈노트에서 돌봄서비스 인력난을 언급하며 “외국인 고용허가제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비용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월17일~5월17일 28개 주요 종합·경제일간지와 방송사의 '돌봄 분야 최저임금' 관련 보도 흐름을 시각화한 이미지. 차트상 가장 높은 세 개 꼭지점은 △한국은행의'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이슈노트 발표 △윤석열 대통령의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 돌봄서비스 도입 발언 △경총의 최저임금 미만율 통계 발표 시기에 해당한다. 이미지=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 분석 결과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인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기획실장은 “주로 보수언론이나 경제지가 '편의점과 식당 자영업자가 힘든 건 최저임금 탓'이라는 보도로 차별적용 주장을 띄워왔다. 올해처럼 공공기관이 특정 업종의 최저임금 차별 적용을 주장하는 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발표 당일인 5일 언론은 48건의 보도를 쏟아냈는데, 모두 한은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받아쓰는 내용이었다. 6~7일엔 10개 종합일간지와 경제지가 사설을 내고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중앙일보, 파이낸셜뉴스, 한국경제, 헤럴드경제, 이투데이, 이데일리 등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직후인 3월 6~7일

윤석열 대통령이 같은 취지로 발언한 뒤 언론은 재차 보도를 쏟아냈다(61건, 17%). 윤 대통령은 지난달 4일 민생토론회 점검회의에서 “현재 내국인 가사도우미·간병인 임금 수준은 부담이 크다”며 “16만3000명 외국인 유학생과 3만9000명 결혼이민자 가족분들이 가사·육아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에 따라 유연한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했다.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으로 고용한 가사노동자는 최저임금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한계를 악용해 외국인 유학생 등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고 밝힌 것이다.

이후 '돌봄노동자 최저임금'을 중심으로 자극적인 보도 흐름 양상이 나타났다. 특히 4월 말 인터넷 커뮤니티 내 '월 450만원 타워팰리스 입주도우미' 구인공고 보도는 시기별 보도량 4위를 기록했다. <“월 450만원 타워팰리스 입주 도우미”…반응터진 공고> <“월급 450만원에 타워팰리스 입주 도우미”…구인 공고에 갑론을박> 등이다. 이주민 혐오를 기반으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뒷받침하는 보도도 나타났다.

<“말도 안 통하는데 월 200?”…동남아 가사도우미 두고 '시끌'> (국민일보)
<“어머니도 월 100만원 드리는데…필리핀 가사도우미에 206만원?”> (데일리안)
<“동남아 가사도우미 월 200? 말도 안 통하는데 너무 비싸” 맘카페 '와글'> (뉴스1)

실상 차등적용 적용을 가정해도 이주민 가사노동자가 유입될 가능성은 낮다. 유학생은 물론 결혼이민자 가족도 이미 최저시급 이상 지급하는 직종에 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국인 가사돌봄 노동자도 최저임금법 적용에서 제외됐지만 일급이 최저임금보다 높다. 매일노동뉴스는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유학생) 중 한국어가 능숙한 경우 시간당 2만원의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위도 “차등적용 국가 생각보다 적은데다 더 높게 책정”

최저임금 차등적용 도입 주장에 설득력이 낮다는 반박은 나온 지 오래다. 재계는 해외의 업종별 차등적용 제도가 존재한다고 강조하지만, 모두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사례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발간한 '2023 주요 국가의 최저임금제도' 보고서를 보면 OECD 가입국 29곳을 포함한 41개국 가운데 국가최저임금제 기반으로 차등적용을 도입한 국가 11곳은 모두 차등 임금을 최저임금보다 높게 책정했다.

일본처럼 지역별 최저임금을 정하던 일부 나라도 한국과 같은 국가최저임금제로 옮겨가고 있다. 오학수 일본 노동정책 연구연수기구 특임연구위원은 매일노동뉴스 기고에서 일본의 지역별 최저임금 단계가 4개에서 3개로 줄고 차액은 1~2엔으로 거의 없다고 했다. 오 위원은 “전국 일률 최저임금제로 변경해야 한다는 운동에 자민당 일부 의원도 찬성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차등적용은 거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취지·세계 역행인데 계속 띄우기, 배경엔 “못해도 지렛대” 지적

올해 정부와 재계가 '외국인 돌봄노동자 고용과 최저임금 차등적용' 주장을 더 노골적으로 불붙이는 배경은 뭘까. 노동계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 담론이 크는 것을 저지하는 지렛대' 역할을 꼽는다.

최저임금위원인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올해 최저임금 논의의 핵심은 물가 폭탄에 따른 실질임금 삭감에 맞춰 얼마나 최저임금을 올리느냐다”라며 “사용자가 이 담론을 피해가는 방법 중 하나가 '차별적용 띄우기'다. 차등적용 얘기를 길게 해야 최저임금 액수 자체를 올리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이더유니온 소속인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2025년도 최저임금위원회 민주노총 노동자위원)은 지난달 4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용산구 대통령집무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금수준(금액) 대폭 인상, 차등적용 개악 저지, 최저임금 미적용 노동자 전면적용 등의 투쟁 계획을 밝혔다. 사진=노동과세계

박정훈 부위원장은 돌봄 분야가 강조되는 이유를 두고 “정부의 의도는 '일단 다 찔러보기'”라며 “작년엔 (정부와 재계가) 요식업과 숙박업, 택시 노동자 차별적용을 주장했다. 올해는 저출생 상황에서 돌봄 비용이 높으니 상품을 수입해오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주민 혐오 정서와 결합시킨 손쉬운 논리”라고 했다. 정작 회의에선 돌봄노동자 최저임금 차별적용 주장이 주되게 언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부위원장은 “(회의에서) 돌봄 분야에 차등적용 주장하는 최임위원은 없을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위원 중 돌봄분야 사용자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정책기획실장은 “매번 차별적용 주장은 나오지만 어떤 업종에 도입할지 근거 삼을 연구 자체가 없던 상황에서 정부 측이 나서 특정 업종이 아니라 개인 가정이 비용을 부담하는 돌봄에 초점을 맞춰 띄웠다. 저출생을 발판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높다고 본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최저임금위 회의는 사용자위원이 주도해 '업종별 차등적용' 논의로 4~5차까지 채운 뒤 인상액은 막판에 표결로 정하는 흐름이 굳어지고 있다. 2021년엔 최저임금위원장이 최초요구안 제시를 주문했으나 재계가 차등적용 여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며 인상률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2022~2023년엔 사용자위원들이 주장하는 차등적용 논의에 밀려 각각 5차, 8차 회기에야 인상 수준 논의가 시작됐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위 회의 진행은 대략 세 단계로 구분될 것으로 보인다. 1단계에선 (정부 위촉) 공익위원 자격을 둘러싼 교체 요구와 줄다리기다. 2단계엔 사용자 측이 차등적용을 주장하고, 노동자위원은 세계적 흐름이 된 특수고용과 도급근로자 최저임금 기준 설정을 주장한다. 3단계에 인상률 논의로 넘어가는데, 앞 단계 논의가 매듭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이 살아있는 카드로 활용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는 특수고용노동자와 도급노동자에 최저임금 기준 설정 여부를 본격 논의할 첫해로도 꼽힌다. 영국 최저임금제는 사용자가 건당 또는 작업량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공정 보수(Fair Rate)' 계산법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지난해부터 우버이츠 등을 통해 일하는 플랫폼 배달 노동자에 시간당 최소 17.96달러(약 2만3000원)를 보장하는 최저임금제를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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