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주택연금 가입 막아” “딸이 전 재산 빼돌려”…가정에서 ‘금융착취’ 당하는 노인들[불편한 노년①]

2024. 5. 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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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내 경제적 학대 78.6%로 ‘압도적’
아들의 학대가 딸보다 더 많아
전문가들 “후견인제도 발전시켜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홍승희 기자] #. 노후 안정된 소득을 매달 받기 위해 주택연금을 들고 싶었던 노인 A씨는 매번 아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아들은 ‘결국 내가 물려받을 집인데 왜 아버지 마음대로 하느냐’며 A씨의 주택연금 신청을 가로막았다. 그는 “노후를 위해 연금에 들겠다고 해도 아들이 계속 찾아와 화를 내며 마음을 괴롭게 한다”고 말했다.

#. 70대 기초생활수급자인 B씨는 공과금이 연체됐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원은 자동이체로 매년 딸 통장에 돈이 송금되고 있어 잔금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B씨는 최근 딸이 몸이 불편한 자신을 위해 현금을 대신 뽑아준 일이 떠올랐다. 자식이지만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막막해졌다.

가정에서 일어나는 금융착취가 줄지 않고 있다. 금융착취란 경제적 학대의 다른 말로, 노인의 의사에 반해 재산 또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를 일컫는다. 한국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금융착취를 당하는 노인들도 더욱 많아질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하지만 금융 착취가 대부분 부모자식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고, 또 피해자는 이를 신고하기조차 꺼려해 정확한 통계마저 집계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부모 돈은 내 돈이 아니다’라는 사회적인 인식전환을 적립하고, 후견인 제도를 활성화하는 등 범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 내 경제적 학대가 절반 이상

18일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간한 ‘2022 노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한 해간 전국 37개 지역노인보호전문기관에 신고·접수된 1만9552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이중 경제적 학대를 받았다고 신고한 노인은 397명이었다. 이는 지난 2021년 신고된 406명 대비 2.2% 감소한 수치다.

신고된 수치는 줄었지만, 주목할 점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학대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가정에서 발생한 경제적 학대는 78.6%에 달했다. 이는 전년(92.6%) 대비 14%포인트 감소한 수치지만, 여전히 그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겼다.

같은 기간 시설에서 받은 경제적 학대는 2021년 5.4%에서 2022년 18.6%로 그 비중이 세 배 넘게 증가했다. 이는 노인인구가 증가하며 노인을 수용하는 시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경제적 학대를 경험한 학대피해 노인은 남성, 여성 모두 80~84세가 각각 32명(25.4%), 69명(25.5%)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75~79세가 각각 20.6%, 19.2%로 높았으며 85~89세가 18.3%, 18.1%로 그 다음이었다.

경제적 학대를 자행하는 행위자는 아들의 비중이 가장 높다. 지난 2022년 집계된 경제적 학대 행위자는 총 562명으로, 이중 아들이 173명으로 30.8%를 차지했다. 딸은 47명으로 8.4%였으며, 타인은 42명(7.4%)였다. 가족외 중에는 기관이 219명으로 39%에 해당했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전체 학대 유형의 행위자가 ‘배우자-아들-기관’ 순이었다는 결과와 비교해 볼 때, 경제적 학대의 경우 기관을 제외하면 주로 자녀에 의해 발생하는 비율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금융착취가 부모와 자식 모두 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몰이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노인은 인지적 어려움으로 인해 금융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렵고, 또 고령화로 인한 심리적 위축을 겪는다. 자식 역시 금융지식이 부족한 가운데, 자산 형성에 실패하고 최종적으로는 부모 돈에 의존하는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정운영 금융과행복네트워크 이사장은 “자식이 부모를 모시겠다고 하며 주택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돌려놓은 다음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다”며 “주택연금 등 사회적 제도가 부모와 자식 모두에게 여유를 준다는 상식이 있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 “금융착취 정황 발견시 금융사가 계좌동결·경제적 후견인제도 필요”

문제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 피해사례다. 실제 가족과 친지에 의한 금융착취는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고령자들 사이에서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가 낮아 피해 신고율이 매우 저조한 것이다. 또 자식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신고를 고의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활동성이 있고 인지 기능이 건강하면 노인들은 금융자산 관리가 가능하지만, 육체적·인지적 문제가 생기면 경제적 학대의 빌미가 생기기 시작한다”며 “가장 주변에 있는 가족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정확한 집계가 어려운 금융착취를 예방하기 위해선 금융회사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전문가들은 민간 금융사가 고령소비자에 대한 자산 신탁 서비스 등을 더욱 발전시키고, 금융착취 대처 방법 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정 이사장은 “아무리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부모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려고 한다면 은행이 계좌를 동결시키는 등 적극적인 가이드라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전문성 있는 경제적 후견인제도의 필요성도 언급된다. 후견인제도란 정신적 제약으로 스스로 의사를 결정하거나 실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후견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를 의미하는데, 인지 기능이 부족해 경제적 학대를 받는 노인들도 공동후견인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허 교수는 “대한법률구조공단처럼 경제적 학대를 받는 당사자를 공동후견하고, 이같은 제도를 전문성 있게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h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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