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숙의 미디어는 파도] 우리가 이토록 많은 이혼을 알아야 할까

조경숙 만화평론가 2024. 5. 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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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조경숙 만화평론가]

▲Gettyimages.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발표한 '2023 만화 웹툰 이용자 실태조사'에서 인스타그램이 웹툰 이용 서비스 순위에서 무려 5위를 차지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스타그램은 웹툰 전문 서비스가 아니다. 이미지를 주로 게시하는 소셜 미디어 서비스인데도 불구하고 인스타그램이 웹툰을 향유할 수 있는 주요 서비스 중 하나로 손꼽힌 것이다. 레진코믹스, 리디, 탑툰 등 웹툰 전문 서비스들을 제친 순위다.

일상을 그린 생활툰, 사유를 풀어낸 에세이툰, 에피소드 형태의 픽션 만화 등 인스타그램에서 연재되는 만화들은 매우 다양하다.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제각기 개성을 담아 선보이는 작품을 보면 홀린 듯 탐닉하게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간혹 '양산형'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눈에 띄곤 하는데, 최근에 유독 자주 보이는 건 부부의 이혼 경험담을 다룬 만화다.

'#이혼웹툰', '#이혼만화'와 같은 해시태그를 단 이 만화들은 한 부부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다룬다. 이들이 어디에서 만나 결혼했고, 그간 어떠한 결혼 생활을 이어왔는지.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은 어땠는지 등등. 자녀를 포함한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외 주변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묘사된다. 특히 이 만화들에는 일반적인 성격 차이나 가치관 대립으로 인한 이혼만이 아니라 배우자가 장기간 외도를 하거나 심각한 수준의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등 수위 높은 이혼 담이 그려지곤 한다.

그런데 특이한 건, 이 작품을 게시한 사람이 이혼한 당사자가 아니라 대개 이혼 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나 법무법인이라는 사실이다. 법률인이 이런 만화를 연재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홍보 때문이다. 주로 그들이 수임했던 사건을 자극적인 서사로 전시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나아가 이혼에 대한 법률 상담이 필요한 경우 자신들의 사무실로 문의하라는 형태로 정보를 남기고 있다. 개별 에피소드마다 작품이 의뢰인과 그 외 등장인물들로부터 동의를 받아 그려진 건지 여부는 확실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

▲ 인스타툰 '메리지레드'

당초 이런 시도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생활툰으로부터 시작됐다. 책으로도 출간된 인스타툰 <메리지레드>는 이혼 전문 변호사의 일상과 고충, 그가 맡았던 사건에 대한 설명과 의견 등 정보와 재미가 적절히 융합된 작품이다. 이 만화에서도 이혼 에피소드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사건의 자극적인 면을 부각하기보다는 의뢰인이 이혼에 이르기까지 주저하거나 망설였던 이유, 그가 잘못 알고 있던 이혼 상식 등을 바로잡는 데에 분량의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때로는 배우자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소통하면 좋은지, 화해할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에 반해 최근 여러 법무법인 계정에서 우후죽순 연재되는 이혼 에피소드들은 그저 인스타그램이라는 망망대해에 마치 가십처럼 누군가의 고통을 던져놓은 것만 같다. 막상 이혼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정보라던지, 아니면 의뢰인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 같은 건 결여되어 있다. 그러니 실은 홍보 수단으로서도 정말 이 만화들이 유의미한지 의심스럽다. 나라면 의뢰인의 삶을 이토록 가볍게 대하는 변호인은 결코 찾지 않을 것 같아서.

무엇보다 우리가 타인의 이혼 사례를 이토록 많이, 상세하게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명백한 폭력이지만 미처 폭력이라 여기지 못했던 것, 은연중에 쌓인 상처 같은 것들이야 타인의 사례를 통해 나의 상황도 돌아볼 수 있겠지만, 그것을 위해서라도 이토록 구체적인 이야기가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 그것도 픽션이 아니라 실제 누군가의 사례라면 더더욱. 홍보를 위해 의뢰인의 삶을 전시해도 되는가? 누군가의 실제 이혼 사건을 보며 내가 욕하고 화낼 자격이 있는가? 여기 그려진 고통은 예능도, 리얼리티쇼도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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