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제재냐 vs 정의구현이냐, 디지털교도소 폐쇄 결정
17일 ‘디지털 교도소’ 문패를 웹사이트에는 80여명의 신원이 학교폭력, 살인, 성범죄, 전세사기, 음주운전 등의 꼬리표를 달고 올라와 있다. 각 게시물에는 대상자의 얼굴, 이름, 소속, 전화번호 등이 공개돼 있다. 이 중에는 수사기관의 신상 공개 결정으로 이미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성범죄 사건 등을 심리한 전·현직 법관 10명의 신상 정보도 나온다. 흉악 범죄자들에게 낮은 형량을 선고했다는 비판과 함께 법관 사진과 생년 월일, 이력 등이 게재돼 있다.
지난 13일 방심위 통신심의소위는 범죄 피의자 등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한 웹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대해 위원 5인 만장일치로 접속차단을 의결했다.
방심위는 “디지털교도소는 청소년성보호법(아청법)·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해 성범죄자뿐 아니라 범죄 피의자와 일반인의 신상정보도 공개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사법 시스템을 벗어난 사적제재를 목적으로 개설된 것으로 볼 수 있고, 범죄에 대한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거나 수사 중인 사건과 관계된 개인의 신상정보가 무분별하게 공개됨에 따라 심각한 피해가 우려돼 시정요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이번 결정 이후에도 개인 신상정보의 무분별한 유통으로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이트의 재유통 여부 등을 모니터링하고, 신속히 심의·차단하는 등 적극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접속 차단이 내려질 경우, 의결 당일 바로 접속 차단 작업에 착수해 수일 내 사이트 접속이 차단된다.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이해를 위해선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디지털 교도소는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일던 당시 처음 등장했다. 등장했던 해에 여러 논란에 휩싸이면서 폐쇄됐다가 이번에 재등장했다. 디지털교도소가 다시 생겨나게 된데는 사법체계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SK커뮤니케이션즈가 성인남녀 7745명을 대상으로 ‘범죄 가해자의 신상 공개 및 저격 등 사적 제재’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중 49%(3856명)가 적절하다는 의견을 표했다. 44%(3480명) 역시 ‘강력범죄에 한해서 인정한다’며 지지 의견을 보이기도 했다. 공익성이 있으니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낸 응답자는 335명으로, 4%에 그쳤다. 즉 96%에 달하는 시민들이 범죄 가해자의 신상공개에 찬성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힐수 있다.
이같은 국민적 공감대는 최근 드라마 콘텐츠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모범택시’부터 ‘더글로리’, ‘국민사형투표’ 등이 사적 제재를 통해 범죄자를 심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검찰의 수사와 판사의 판결 만으로는 정의를 구현할 수 없다는 공통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런 디지털 사적 제재의 경우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기 전 자의적으로 범죄유무를 판단해 신상 정보를 공개하기 때문에 논란이 된다. 신상을 공개됐던 인물 중에는 아동성착취물 사이트 운영자의 범죄인 인도를 불허한 판사나 위안부 발언으로 논란이 된 한 대학 교수 등 범죄자로 보기 어려운 이들도 있었다.
사적제재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2020년 디지털 교도소 1기 사이트에서 신상 공개됐던 한 대학생은 억울함을 호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공익을 앞세웠지만 현실은 2차 가해자라는 비판이 나왔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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