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1은 왜 체육시간이 없을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김유나 2024. 5. 1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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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체육 교과 분리
교육 정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단어들, 정확히 어떤 뜻인지 알고 계신가요?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는 최근 교육 기사에 자주 쓰이는 단어의 의미와 관련 논란에 대해 교육부 출입기자가 설명하는 연재 기사입니다.
 
초등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무엇일까요? 많은 학생은 아마도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신나게 뛸 수 있는 ‘체육’을 꼽을 것입니다. 이런 신체활동은 체력을 기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몸을 움직이면서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는 등 정서에도 좋다고 하죠. 많은 선진국에서 성장기 어린이의 신체활동을 중시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현재 초등학교 1·2학년 시간표에는 체육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은 1982년부터 초1·2학년 단계는 별도의 체육 시수를 운영하지 않고, 음악·미술과 수업 시수를 공유했습니다. 1989년부터는 음악·미술·체육이 ’즐거운생활’ 과목으로 묶였습니다. 음악·미술과 신체활동을 아우르는 통합교과의 취지는 좋습니다. 다만 초등학교 수업은 온전히 교사의 재량이다 보니 교사의 의지나 성향 등에 따라 교과 운영 과정에서 신체활동이 소홀하게 취급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습니다. 신체활동 목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들으며 몸으로 표현해본다’는 식이어서 운동장·강당에 전혀 나가지 않고 음악·미술 위주로 수업하는 교사도 많다는 것입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해외의 경우 음악·미술은 한국처럼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에서 통합교과로 묶여있는 곳이 있지만, 체육 교과가 별도로 없는 곳은 한국 외엔 찾기가 어렵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 보고서는 “한국 초 1·2학년은 ‘체육 단절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체활동 교육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의 신체활동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해 10월 교육부는 온전한 신체활동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초 1·2학년 교육과정에서 체육 교과 분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의 제안을 받은 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달 말 초 1·2학년 체육 교과 신설을 결정했습니다. 교육부는 최대한 빨리 교과 분리 절차를 진행해 2027∼2028학년도에는 학교 현장에 적용되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체육 교과를 어떤 식으로 분리할지는 아직 논의 중이지만, 즐거운생활에 있던 신체활동 부분과 안전 관련 요소를 결합해 구성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육부는 새로 만들어질 초 1·2학년 체육은 유치원의 신체활동과 초 3학년 체육 수업의 ‘가교’ 역할이 될 수 있게 한다는 목표입니다. 교육계에선 현재 즐거운생활의 신체활동은 누리과정(만 3∼5세 공통 교육과정)보다도 수준이 낮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음악·미술·체육 통합교과 체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유치원 재원 비율이 높지 않았던 때여서, 초 1·2학년의 신체활동 능력을 다소 낮게 보고 교과과정이 구성됐다는 것입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누리과정은 신체활동의 구체적인 목표가 서술돼있는 등 요즘 아이들의 발달수준이 좀 더 반영돼 있지만, 즐거운생활의 신체활동은 몇십년 전 틀에서 조금씩 개정하다 보니 현재 초등학생 발달단계와는 조금 떨어진 면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재 교육과정 상 신체활동이 누리과정→즐거운생활→3학년 체육으로 조금씩 수준이 올라가는 흐름이 아니고, 오히려 누리과정보다 즐거운생활의 신체활동 수준이 다소 낮다는 것입니다. 교육부는 초 1·2 체육이 누리과정 신체활동 수준보다는 조금 더 높고, 초 3 체육보다는 한 단계 낮은 수준이 되도록 해 신체발달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성장기 어린이들의 신체활동이 늘고 건강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그런데 이런 체육 교과 분리 방침이 발표되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등 교원단체에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내놨습니다. 이들은 교과 분리 과정에서 현장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현재 학교에서 신체활동이 부족한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원단체는 공간, 시설 확충 등 물리적 여건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교실 밖에서 신체활동을 하고 싶어도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곳이 많다는 것이죠. 물론 공간·시설 문제는 교과 분리와 함께 갈 수 있는 사안이기는 합니다. 교과 분리를 추진하는 동시에 환경 개선을 추진할 수도 있고, 교과 분리가 여건 개선의 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교사들이 물리적 여건 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정부가 ‘교과 분리’로만 생색을 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 교사는 “미세먼지나 날씨 문제로 운동장이 아닌 강당에서 신체활동을 해야 할 때도 많은데 현재는 고학년들만으로도 붐빈다”며 “아무리 교과 분리가 돼도 공간이 없으면 신체활동이 어려운데 공간·예산 확충 대책은 아직 잘 안 보인다”고 전했습니다. 또 새 교과가 생기는 것인 만큼 업무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 체육 시간에 학생이 다칠 경우 학부모가 교사의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현재는 시설도, 전담체육교사도, 학부모의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지킬 보호막도 부족하다는 것이죠. 

체육 수업 강화는 옳은 방향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장의 지지가 없다면 정착되기 어렵습니다. 교육부는 왜 교사들 사이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사들은 무엇보다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현장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습니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앞으로 현장과의 논의를 통해 시설·공간 지원 등을 늘리고, 체육 교과 분리가 교사들에게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육부의 약속이 공언(空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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