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어느 과거사 드라마...이념적 편향성도 ‘옥의 티’일까

신동흔 기자 2024. 5. 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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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사반장1958′ ‘학도병이 민간인 학살’ 암시
역사적 근거 없이 잘못된 인식 심어줄 우려

TV드라마에서 이른바 ‘옥의 티’는 원래 큰 흠이 아니다. 조선시대 저잣거리에 전깃줄이 보인다거나 에어컨 실외기가 살짝 노출돼도 웃어 넘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fact)과 관련해 흠결이 보이면 실수였나, 혹시 무슨 의도가 있나 생각하게 된다.

지난 달 말 시작한 MBC 드라마 ‘수사반장1958′은 첫 회에 6·25때 어린 학도병이 양민 학살에 동원되는 장면이 30초 가량 나온다. 학도병으로 참전했던 주인공이 양민 학살의 현장에서 국군 장교의 명령에도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고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갖게 됐다는 설정이다. 많은 시청자들이 ‘저거 아닐텐데’ 의아해했다. 비(非)민노총 계열인 MBC제3노조는 정색하고 성명을 냈다. 6·25때 양민학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는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남·북 양쪽에 의해서 자행되었고, 최근엔 인민군이 종교인 1700명을 학살했다는 조사까지 나왔는데 ‘학도병’을 집어 넣은 것은 근거가 없다는 비판이었다. 본지가 전화로 문의한 이 분야 전문가도 “학도병에 의한 양민 학살이 있었다는 자료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MBC에서 2024년 4월~5월 방송한 '수사반장 1958'에서 6.25 당시 국군 장교가 학도병에게 민간인에게 총을 쏘라고 지시하는 장면.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역사적 근거는 없다. 화면은 OTT 웨이브 캡처.

사실 이 드라마는 역사 논쟁을 벌일 정도로 진지한 사극은 아니다. 1950~60년대를 무대로 펼쳐지는 작품 속 배우들의 액션은 과장됐고, 코믹한 장면도 많다. PVC 소재 플라스틱 물병과 컵이 나와 소품 고증에 철저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플라스틱 물병은 한국 석유화학산업이 태동한 이후인 1970년에나 등장하는 제품인데 그게 왜 그 시절에 떡하니 나오냐는 것이다.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드라마 속 ‘학도병에 의한 양민 학살’은 꼼꼼하게 짠 설정이었음이 드러난다.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누도록 강요했던 인물이 어느날 주인공의 직속 상관인 경찰서장으로 부임하더니 친일파 이력 경찰간부와 손을 잡고 주인공을 괴롭히는 빌런(악한)이 된다. 그렇게 거악(巨惡)에 맞서는 정의로운 주인공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이 드라마가 만든 세상에서 남한은 척결되지 않은 친일파와 양민을 학살한 군 출신이 지배 계층이 되어 온갖 중대범죄를 저지르는 나라다. 이는 한국의 현대사를 친일세력과 매국세력이 결탁해 지배 계층을 형성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보는 일부 세력의 역사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거의 매도하다시피 했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식 역사관이다. 그 즈음 일부 커뮤니티 댓글에서 “대한민국 현대사 복습이네요, ‘어떤 사람들’ 보면 불편할 내용만 줄줄이 다루네요 ㅋㅋ” 이런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오류가 보이는 이런 드라마들을 그냥 놔둬야 할까. 최근 네이버·라인 사태가 터지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마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작용처럼 ‘이토 히로부미=조선 영토 침탈, 이토 히로부미 손자=대한민국 사이버 영토 라인 침탈’ 이라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을 보면서 이런 종류 역사물의 효용을 떠올렸다. 프로파간다 분야의 피하주사이론에 따르면, 매스미디어를 통해 어떤 메시지에 노출된 대중은 반드시 영향을 받는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2005)처럼 허구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도 그렇다. 같은 메시지라도 재밌고 웃기게 만들수록 전달 효과는 더 높아진다. 이 드라마에서라면, 가장 코믹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 이동휘의 입을 통해 ‘친일파 새끼’ 같은 대사가 나오는 식이다. 이런 ‘재밌는’ 작품들 덕분에 조국 대표가 민정수석 시절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올리고, 최근에는 독도를 찾아가 “불과 2년 만에 다시 일본 식민지가 된 것 같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열광하는 일부 대중의 인식이 손쉽게 형성되는 것이다.

/페이스북 이미지 캡처최근 일본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두 사람 모두 반일감정을 선동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의 현대사를 한 편의 드라마에 담다보니 축약과 비약이 불가피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본 드라마에 등장하는 지명, 인물, 기관, 종교, 사건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안내 문구도 빠지지 않는다. 한데, 이 작품에는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양민학살, 반민특위, 정치깡패 이정재 등 우리 현대사에 영향을 미친 온갖 부정적 변수들은 다 끌어와 비빔밥을 만들어 놓으면서 북한은 쏙 빼놓은 것이다. 이 정도면 역사적 사안에 대한 검증 부실을 단순한 ‘옥의 티’ 정도로만 봐 넘기기는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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