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온도·습도가 기억나는 사진…카메라를 쓰는 이유 [ESC]

한겨레 2024. 5. 1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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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해? 카메라 사진
디카가 필카 추월, 최전성기 지나
스마트폰으로 흔해진 사진 조각
카메라로 담는 그때의 빛과 표정
2020년 6월 이태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5살 딸 소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다. 이태환 제공

역사로 따지면 200년쯤 되었지만, 20년 전을 기점으로 의미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한 취미에 대해 말해보려고 한다. 사진이다. 취미나 직업으로서의 사진이 침체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 초반쯤이다. 세계시장 기준으로는 1999년(일본 교세라-VP201),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2001년 핸드폰(SK텔레텍 스카이 IM-3100)에 카메라 기능이 들어가게 되면서, 사진이라는 취미의 의미는 완전히 바뀌었다.

2000년 즈음 대학을 다녔던 나는 영화 동아리와 학교 수업에서 ‘사진’을 배웠다. 그 당시 꽤 인기 있는 수업이었다. 조리개, 셔터스피드, 광각렌즈, 망원렌즈 등 멋진 단어들이 등장했다. ‘일주일간 본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필름 한통에 담아 오기’ 등 여타 수업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낭만적인 과제들은 나를 사진이라는 취미에 빠져들게 했다. 과제를 위해 ‘출사’씩이나 나가 마음먹고 찍은 사진들을 노출 조절 실패로 망친 일, 우연히 찍은 사진인데 내가 봐도 너무 좋아서 희열을 느꼈던 순간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DSLR 들고 떠난 세계여행

당시 사진 수업을 진행했던 교수님은 카메라의 기계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뷰파인더를 통해 피사체를 바라보는 사진가의 시선에 대해서 끊임없이 강조했다. 그런데 교수님의 교육 방침과 달리 나는 니콘의 에프엠(FM)2, 에프(F)-3, 캐논의 에프(F)-1, 라이카의 엠(M) 시리즈 등 카메라가 갖고 있는 기계적 아름다움 자체에 매료돼 몇달치 알바비를 모아 중고장터와 남대문 카메라 거리를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필름 카메라를 한참 배우던 시절에 사진은 첫번째 변화를 겪었다. 2000년 초반에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것이다. 지금은 당연한 방식이지만, 당시엔 현상과 인화도 필요 없이 방금 ‘똑딱’ 하고 셔터를 누르면 카메라 후면 모니터로 바로 볼 수 있는 엄청난 물건이었다. 그즈음부터 사람들은 뷰 파인더를 보지 않고, 카메라 뒤에 붙은 엘시디(LCD) 모니터를 보며 사진을 찍었다. 더군다나 ‘뽀샵’이라 불리는 후보정 과정을 거친 인물 사진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당시 사진에 깊이 빠져 있었던 나와 친구들은 마치 성균관 유생처럼 당시의 ‘디카와 뽀샵 문화’를 개탄하던 게 또 기억이 난다. 이런 말들이었다. “뷰파인더로 피사체를 살피며, 또 36장이라는 필름의 한정된 양을 생각하며, 이 순간을 누를지 말지 고민하는 게 사진이다. 그런데 찍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운 뒤 다시 찍고 심지어 후보정까지 하는 걸 과연 사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냐?”

그런 문화적 격변기에 나는 세계일주여행을 떠났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디에스엘알(DSLR)을 들고서. 그리고 나의 발자취를 사진으로 열심히 남겼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의 생존 소식을 알리고 여행지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사진이었기 때문에 다시 깊이 빠져들었다. 파키스탄을 지나갈 즈음,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사진을 제공하는 싱가포르인 ’중국일보’ 사진기자와 3주 정도 동행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찍은 사진과 그 형의 것을 비교하며 많이 배웠다. 사진가의 본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었다.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고, 디카의 퀄리티가 필름 카메라를 따라잡았던 그때가 사진의 최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각종 밈의 생산지인 ‘디시(DC)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원형이 ‘디지털카메라 인사이드’라는 건 그 당시 사진을 좋아했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도. 그 시기 이후 취미로서의 사진은 완전히 그 지위를 잃었다. 코닥과 폴라로이드, 아그파가 이때쯤 도산했다. 싸이월드가 등장했고 디카 시장이 급성장했으며 카메라의 상품성을 깨달은 휴대전화 회사들이 기술을 발전시켰고 급기야는 스마트폰이 출현했다. 그렇게 카메라 렌즈가 모두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시점, 나는 사진에 관심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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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소중해 고르기 힘든 순간들

2018년 여름 수박을 먹고 있는 3살 소을이의 모습. 이태환 제공

며칠 전 옆 팀의 이태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찍은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서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야~ 이걸 스마트폰으로 찍었다고?”라고 물으니 그는 아직도 디에스엘알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사진을 찬찬히 넘겨보니 아주 오래전 헤어져서 지금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를 여자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는 ‘내 아이가 크면 꼭 좋은 사진을 찍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아이가 태어나자 중고로 카메라를 사들였다고 했다. 스마트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작은 렌즈의 물리적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주다가 빛이 너무 좋다 싶을 땐 카메라를 꺼낸다고. 그렇게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이 온전히 기억된다고 했다. 아내와 딸들과 어디 놀러 갔는지, 아이 표정이 어땠는지, 그때의 온도와 습도와 분위기가 생생히 기억난다고.

그가 인생 사진으로 꼽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시골 부모님 댁에서 수박을 먹고 있는 아이의 5년 전 사진. 아이는 어려서부터 수박을 좋아했는데 수박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부모님과 가족 모두가 아이의 수박 먹는 모습에 다들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그 상황을 놓치기 싫어 셔터를 눌렀고, 그는 그 사진을 통해 그때 상황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설명했다. 나도 사진을 사랑했던 그때처럼 계속 사진을 찍었으면, 우리 가족의 순간이 더 생생히 남지 않았을까? 그 시간들이 스마트폰 사진처럼 기억에서 완전히 날아가버리지 않고 순간순간 기억되지 않았을까?

그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5장을 골라달라고 했는데 그는 도대체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3일을 고민했다. 그래, 사진은 이런 거였다. 찍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하나하나 소중해서 고르기 힘든 순간들의 모음. 이런 사진이 차곡차곡 쌓인 인생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그렇게 행복했던 아이가 커서 결혼식장에 들어설 때, 아마 그때도 그는 카메라를 들고 있을 것 같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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