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주석, 5년 만의 유럽 순방으로 '중국 친구' 확인했다

권의석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2024. 5. 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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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트럼프 대통령 시대 대비, 유럽에 손짓하는 중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10일(현지시각) 엿새 일정으로 프랑스, 세르비아, 헝가리 등 3개국을 방문했다. 이번 유럽 순방 기간 시 주석은 3개국 정상과 회담을 하고,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도 만나 중국과 EU 간 현안을 논의하는 3자 회담을 진행하였다.

2019년 이탈리아, 모나코, 프랑스를 방문한 이후 5년 만에 이뤄진 시진핑 주석의 유럽 순방은 EU와 중국 간의 관계가 크게 두 가지 문제로 복잡한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하나는 현재 진행 중인 유럽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다.

EU는 중국이 전기차, 풍력터빈 제조사에 '역외보조금'을 제공해 저렴해진 제품을 유럽 시장에 덤핑 판매하여 역내 시장과 산업을 왜곡하고 있다면서 2023년 9월부터 중국 전기차 업체에 대한 보조금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 역시 유럽산 브랜디의 덤핑 판매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맞대응하면서, EU와 중국 간의 갈등이 계속 깊어지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년이 지났는데, EU가 경제 제재 및 교류 단절 등의 방식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하는 동안 중국은 러시아와 경제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간의 무역은 2023년 사상 최대 규모인 2401억 달러를 달성했으며, 중국의 대러시아 수출은 전년과 대비하여 47% 급증했다.

중국의 주요 수출품 가운데에는 러시아가 무기 생산에 전용할 수 있는 초소형 전자부품, 공작 기계 등 역시 포함되어 있어, 미국과 EU는 중국이 간접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시진핑, 마크롱과 3자 회담에서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위의 두 현안을 언급하면서 중국이 유럽과 함께 "국제적 이슈에 책임감을 느끼고 대응"할 것을 주문하며 중국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EU가 무역적자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중국의 소극적 태도 등을 문제 삼고 있던 상황에서 이뤄진 순방이기에, 중국이 EU의 주요국이면서 미국과 다른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프랑스, EU 역외의 유럽 국가인 세르비아, '극우'로 분류되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헝가리 등을 방문한다고 발표하면서부터 대중국 정책을 두고 유럽 내부 균열의 틈을 넓히기 위한 중국의 의도가 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에 중국과 각국 정상과의 회담 내용을 살펴보고, 중국이 유럽 순방을 통해 기대한 성과를 어느 정도 이루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프랑스 : 미국과 차별된 독자적 노선을 걷는 국가

2016년 브렉시트로 영국이 EU를 이탈한 뒤,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EU를 주도하는 주요국이면서 EU 내 유일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및 핵보유국으로 정치적 영향력이 지대한 국가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서방세계의 핵심 국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국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독자적인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동맹국으로서의 미국에 대한 신뢰가 낮기 때문인데, 일례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분담금 문제를 두고 방위조약 폐기 가능성까지 언급했고, 2022년에는 프랑스가 호주와 잠수함 계약을 맺기 직전인 상황에서 미국과 영국이 호주를 설득하여 프랑스와의 계약을 무산시킨 사례도 있다.

이러한 입장 때문에 미국과 EU가 '디리스킹(De-risking)'을 내세우며 대중국 포위망을 형성한 것과 다르게, 프랑스는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4월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이어 이번 시진핑 주석과 회담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전략적 독립'을 통한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프랑스는 와인, 치즈 등 프랑스산 농산물에 대한 중국 시장 개방 약속을 얻어내고, 전기차, 재생에너지, 항공,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양국의 경제 교류 확대와 강화를 약속했다.

▲ 6일(현지시각) 에마뉘엘 마크롱(오른쪽)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제궁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신화통신=연합뉴스

세르비아 : 미국·EU와의 대립 강조

1997년 유고슬라비아 내 세르비아 공화국이 코소보의 알바니아계에 대한 학살과 인종청소를 자행하자 NATO군이 코소보 내 세르비아군과 경찰을 축출하기 위해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공습을 진행했는데, 5월 7일 NATO 공군이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을 오폭하여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오폭으로 인해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급속하게 냉각되기도 했는데,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 25주년을 기념하는 이날 시진핑 주석이 세르비아를 방문하는 것은 미국과 NATO 진영의 무력 개입으로 인한 비극을 상기시키면서 서방세계의 우크라이나 개입을 견제하려는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세르비아는 2016년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된 국가이고, 2023년 10월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였을 때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경제·안보 분야에서 다각적인 협력을 이어오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부치치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과 세르비아 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세르비아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하여 대만에 대한 중국의 우위를 인정하고, 중국은 세르비아가 독립을 불인정하고 자치주로 간주하고 있는 코소보에 대한 세르비아의 주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지난 4월 EU가 세르비아의 EU 가입 조건으로 코소보의 독립 인정을 요구한 상황이어서, 중국은 세르비아의 국제적 입장을 지지하면서 EU 역시 압박하는 정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외에도 중국산 무기를 운용하는 세르비아에 첨단무기 판매와 중국 주도의 '국제 달 과학연구기지' 계획 참여를 약속하는 등, 이번 방문을 통해 양국의 군사 협력을 강조하는 성과도 있었다.

헝가리 : 중국의 EU 진출 거점

중국에게 헝가리는 동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파트너로, 2010년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가 중국 등 아시아 국가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동방 개방' 정책을 시작한 뒤 중국은 헝가리의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했다.

특히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도 참여하여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와 헝가리 부다페스트 간의 철도 건설의 85%를 중국 자금으로 조달하고, 최근에는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의 헝가리 공장 건설을 포함하여 중국이 헝가리에 160억 달러(약 22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며 헝가리를 EU 역내 수입 관세를 피하기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과 오르반 총리는 양국 관계를 '전천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파키스탄을 비롯한 극소수의 국가와만 맺은 최고 수준의 외교 관계다. 이번에 양국 관계를 격상시키면서 헝가리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와 함께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요구하는 EU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음을 확인했고, 중국이 '새로운 다극적 세계질서의 주축 가운데 하나'라고 인정했다.

이러한 외교적 관계 강화뿐만 아니라,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대한 헝가리의 더욱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하면서 양국의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농업, 금융, 재생에너지, 관광, 교육, 과학기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이 함께 협력하며 관계의 폭넓은 개선을 약속했다.

특히 헝가리가 올해 하반기에 EU 순회 의장국이 되는 만큼, 중국은 이번 헝가리와의 전면적인 외교 관계 강화를 통해 EU의 전반적인 외교 기조에 동의하지 않는 EU 회원국이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길 기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내 '중국의 친구'를 확인한 순방

이번 시진핑 주석의 유럽 순방을 두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 전문가들은 EU의 대중국 디리스킹에 대한 움직임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이번에 시진핑 주석이 방문한 유럽 국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중국이 이번 순방을 통해 EU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가능성 등 긴박한 당면과제를 바로 해결하기 위한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세르비아, 헝가리는 유럽 국가이면서도 EU로 대표되는 서방세계의 대중국 봉쇄와는 거리를 두고 중국과의 긴밀한 경제 협력을 통해 경제적 실리를 취해온 국가들이다. 중국으로서는 이들 국가와 다시 한 번 우호적인 관계를 확인하고 경제 협력의 확대를 약속함으로써, 유럽에 안보적인 위협이 아니라 공동 번영의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특히 2024년 하반기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승리가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하여 미국과 EU·NATO와의 관계를 전면 재고할 가능성 때문에 서방세계의 연대가 계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 또한 커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상황을 고려할 때 중국이 이번 순방을 통해 기대한 효과, 즉 EU의 대중국 봉쇄 약화 시도는 충분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EU가 요청한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한 태도 변화를 수용할 지의 여부는 베이징에서 진행됐던 중러 정상회담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의석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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