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수습 돕고 부상자 위해 헌혈 참여…10대 학생 희생자들

이승현 기자 2024. 5. 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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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의 희망'을 주제로 소개된 학생 희생자들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기념식에서 학생 희생자였던 류동운(당시 19세), 박금희(16·여) 열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박금희 열사는 이른바 1980년 5월 21일 광주∼화순 간 도로 봉쇄 작전의 희생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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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주년 5·18민주화운동기념식서 사연 소개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소개되는 학생 희생자들. 왼쪽부터 류동운 열사, 박금희 열사. (국립5·18민주묘지 제공)/뉴스1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오월의 희망'을 주제로 소개된 학생 희생자들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보훈부 등에 따르면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거행된 기념식에서 학생 희생자였던 류동운(당시 19세), 박금희(16·여) 열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류동운 열사는 1980년 당시 한국신학대학교 2학년생으로 학교가 휴교하자 고향인 광주를 찾았다.

이후 전남도청에서 행방불명자 접수와 사망자 신원 확인 등의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는 목사인 아버지의 만류에도 끝까지 도청에 남아 희생자들의 수습을 도왔고, 결국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도청 진압작전 당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류 열사의 시신은 전남도청 진압작전이 종료된 후 도청 구내에서 수습돼 같은 날 오후 5~6시쯤 검시가 이뤄졌고, 사인은 복부 총상으로 기록됐다.

그는 국립5·18민주묘지 조성공사가 완료된 1997년 1묘역 2-45에서 영면에 들었다.

박금희 열사가 1979년 11월27일 받은 헌혈증서.(박금숙씨 제공)2021.9.2/뉴스1

박금희 열사는 이른바 1980년 5월 21일 광주∼화순 간 도로 봉쇄 작전의 희생자다.

당시 춘태여상 2학년이자 16살이었던 그는 간호사를 꿈꿨다. "피가 부족해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차량 방송을 듣고 그는 부상자들을 위해 시위대 측의 헌혈버스에서 헌혈에 나섰다.

하지만 이날 오후 조선대에서 주남마을로 이동하던 제11공수여단과 제7공수여단이 총격전을 벌였고, 결국 소태동 버스 종점 부근에서 총탄에 맞아 희생됐다. 그는 1묘역 1-26에 잠들어 있다.

이들의 모교에서는 추모식을 열거나 추모비를 건립하며 열사들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또한 이날 모교 후배들이 유족과 참석자들에게 오월 영령을 상징하는 이팝나무 꽃다발을 전하며 위로를 건네고, 오월이 피워낸 희망을 함께 기억하자는 의미의 무대도 선보였다.

pepp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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