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성공하려면 ‘합법적 약탈’ 잡아라 [자본시장 이야기]

이관휘 2024. 5. 18.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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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성공의 바탕은 신뢰다. 그 진정성은 지배주주의 합법적 약탈을 잡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에서 나타날 것이다. 지배주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규제 혁신을 이룰 수는 없다.
2월26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리아 디스카운트(이하 디스카운트)’란 주가가 오르지 않는 한국 증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개념이 불분명하다. 어떤 때는 다른 선진국의 비슷한 주식보다 한국 주식의 주가가 낮다는 의미다. 혹은 자회사를 잔뜩 거느린 모회사의 주가가 자회사 지분가치의 합보다 작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대략적으로는 다른 나라 주가가 오를 때도 한국 주가는 오르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주가를 순자산으로 나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보다 낮다는 것은 자주 인용되는 수치다. 기업이 벌어들일 미래현금을 반영한 시장가치(주가)가 과거 비즈니스 활동의 결과로 장부상에 기록된 가치(순자산)보다 낮다는 뜻이다. 좀 더 거칠게 ‘그 기업의 미래가 지금만 못할 것’으로 시장이 평가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기업들이 충분한 수익을 올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수익률(ROE·당기순이익을 자본으로 나눈 값)이 비교국들보다 낮다. 지난해 말 한국 상장사들의 시총 합계가 타이완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나자 ‘이젠 타이완에도 밀린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당국이 이 사태를 고쳐보겠다고 나섰다. 제안된 내용들만 살펴봐도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이하 ‘밸류업’)은 광범위하다.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시장질서 확립’ ‘자본시장 접근성 제고’ ‘기업가치 제고’ 등이다. 시장질서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불공정거래를 규제·감시한다. 시장 접근성은 세제 개편과 소통(기업 홍보) 강화를 통해 도모한다. 기업가치 제고에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배당을 올리고 자사주를 매입·소각(‘주주환원’)하도록 유도하며 구조조정 시 일반주주를 보호하는 장치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야심찬 계획을 잘 따라오는 기업에게는 세제 혜택과 함께 ‘밸류업 지수 편입 가능성 증대(지수에 포함되면 거래량이 늘고 주가도 오르는 경우가 많다)’ 등 인센티브들이 주어진다. 총선 이후에도 당국은 이를 계속 추진할 의지를 밝혔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크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성공을 빌면서 이참에 한국 증시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몇 가지를 나열해본다. 키워드는 ‘신뢰’다.

한국 주가, 왜 이렇게 낮을까

경제학 개론에서는 가격이 수요와 공급, 즉 수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단기적으로는 주식도 그렇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그 기업이 벌어들일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 가격(현가)이 주가를 결정한다. 이 현가는 미래 현금흐름과 그것을 현가로 바꿀 때 사용하는 할인율의 두 가지로 결정된다.(편집자 주: 할인율은, 기업이 미래에 벌어들일 돈을 현재 시점으로 환산할 때 적용하는 비율이다. 예컨대 미래에 벌 돈이 100만원인데 현가가 90만원으로 평가된다면 할인율은 10%, 80만원이라면 20%다. 할인율은 위험이 클수록 커지고 이에 따라 주가는 낮아진다.)

현금흐름은 기업 고유의 것이지만 할인율은 그 기업이 노출된 위험의 정도에 따라 시장에서 결정된다. 그러니 낮은 주가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면,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아니면 그 기업이 더 높은 수준의 위험에 계속 노출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높은 할인율의 원인은 무엇일까?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위험은 오랫동안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인용되어 왔다. 그러나 중국의 침략 위험이 더욱 높아진 최근 들어 더욱 활황인 타이완 시장을 보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3월3일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가 몬테네그로 경찰청에서 조사받은 후 청사에서 나오고 있다. ⓒEPA

법률이나 규제 리스크는 어떨까? 한국은 횡령이나 배임, 사기 등의 범죄에 관대하기로 유명하다. 테라폼랩스의 권도형 대표가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재판을 받으려고 기를 쓰는 이유다. 미국은 경제범죄에 대해 병과주의(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해 처벌)인 데다, 유기징역에 상한이 없고,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부과한다. 강력하게 처벌하지 않으면 자본시장의 신뢰가 뿌리째 뽑힐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기업이 벌어들이는 현금이 적어서 주가가 낮은 것일까? 요즘 주목되는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주가수익비율(PER)과 자기자본수익률(ROE)의 곱으로 나타낼 수 있다. PBR이 낮은 이유는 결국 낮은 PER과 ROE, 즉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실제로 ROE나 PER로 측정한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은 다른 주요국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평균 ROE는 14.16%로 타이완(15.95%), 미국(21.78%), 일본(16.86%)보다 낮다.

누군가가 기업의 현금이 주주에게 도달하는 통로를 차단해 그 일부를 지속적으로 빼내 가는 것(터널링)은 아닐까? 하버드 대학의 슐라이퍼 교수와 시카고 대학의 비쉬니 교수에 의하면, 터널링은 기업지배구조(투자자들이 온전히 제 몫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업 수준에서 보호하는 장치)가 나쁠 때 일어난다. 그리고 한국은 대주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주주들에게 정당히 돌아가야 할 금액을 빼돌리는 분명한 범죄행위가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합법적’인 것으로 용인되는 나라다. 그렇다면 한국의 오래된 디스카운트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국 기업지배구조(거버넌스)의 문제점은 우선 낮은 수준의 주주환원으로 나타난다. 낮은 배당성향, 부족한 자사주 매입, 매입하더라도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는 행위 등이 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이 현상은 지배주주들이 낮은 수준의 주주환원을 반기기 때문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60개 기업집단 총수 일가의 평균 지분은 3.5%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기에 관계인들과 계열사 지분 등을 모두 합친 비중은 무려 58%에 달한다. 3.5%의 지분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셈이다. 절대적 수치의 지분이 작으니 지배주주들은 배당받는 것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결권(voting right)이지 배당권이 아니다.

시장이 학습한 ‘그들만을 위한 꼼수’

자사주 매입은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으로 시장에서 호재로 인식된다. 그러나 매입 이후 그 대부분을 소각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자사주 소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자사주 매입 발표만으로도 주가가 오르는 미국과 달리, 한국에선 실제 소각이 이루어질 때 주가가 더 크게 오른다. 소각되지 않은 자사주는 지배주주가 앞으로 그들만을 위한 꼼수를 쓸 때 사용할 것이라고 시장이 오랫동안 학습했기 때문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중요하게 공략하는 지점이 바로 이 낮은 주주환원이다. 이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이 활발하지 않은 기업은 자율적으로 주주환원을 높일 계획을 마련하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낮은 주주환원을 높이는 것이 과연 밸류업 프로그램의 중요한 강조 지점이 되어야 할까? 주주환원을 높이면 더 많은 투자자가 주식을 매입해 주가가 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금이 부족한 기업이 주주환원에 돈을 쓴 까닭에 좋은 투자 기회를 희생시킨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쪽은 주주들이다.

지난해 12월6일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과 떡볶이를 시식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에선 일반주주가 희생되더라도 기업 구조를 지배주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 기업의 일부를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어 상장시키는 ‘모자회사 동시상장’은 앞에서 살펴본 미진한 주주환원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기업분할은 구조조정을 통해 성장성과 효율성, 지배구조 안정성을 높여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한 주요 수단의 하나다. 그러나 떼어낸 회사가 상장될 경우, 기존 모기업 주주들은 손해를 본다. 모기업의 한 부분이었지만 지금은 분리되어버린 자회사의 지분가치를 누릴 수 없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주사 할인, 즉 ‘더블 카운팅’의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당초 모회사가 미래에 벌어들일 현금의 현가는 1000원이었다. 즉, 모회사의 주가는 1000원이다. 그리고 모회사의 ‘일부(떼어내기 전의 자회사)’가 벌어들일 돈의 현가는 100원이다. 분리 상장된 뒤, 자회사의 주가는 100원으로 평가될 것이다. 모회사는 그 ‘일부’를 떼어내 상장하면서 다른 투자자들의 돈을 받았다. 이로써 모회사의 자회사 지분은 50%(50원)로 떨어졌다. 그렇게 되면 모회사의 주가 1000원 가운데 50원은, 자회사 지분을 보유한 덕분에 받게 도는 돈이다. 이 50원은 자회사 주가 100원의 일부인 동시에 모회사 주가 1000원의 일부인 것이다. 50원은 ‘더블’로 ‘카운팅’된 셈이다. 시장은 이 50원을 모회사 주가에 어떻게 반영할까?

모회사 주가가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그 원인에 대한 확답은 아직 없다. 다만, 자회사를 상장시킨 탓에 나타난 ‘더블 카운팅’을 자회사가 아닌 모회사의 주가에서 할인한 것이 아닐까 정도가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상반기 SK그룹 21개 상장사 평균 주가는 지난해 말보다 11.9% 상승했다. 그러나 지주사(모회사)인 SK 주가는 같은 기간에 오히려 24.33% 감소했다고 한다. 국내 대표 지주사들의 PBR은 0.5보다도 작다(주가가 순자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저평가되어 있다). 한국에선 모회사 가치가 자회사들 지분가치의 합보다도 작은 경우가 흔하다.

자명한 일은 모기업의 알짜 부문을 떼어내 상장시킨 탓에 모기업이 이른바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기업의 가치 할인은 피할 수 없다. ‘빅맥 세트’를 샀는데 햄버거는 빠지고 프렌치프라이만 가득 들어 있다면 그걸 빅맥 세트의 가치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및 상장도 큰 분란을 일으켰다. LG화학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경우, 기존 (LG화학) 주주들의 주식이 폭락하기 전에 회사 측이 적절한 가격에 사들이도록 하는 주식매수청구권을 주주에게 부여하자는 의견이 커졌다.
인수합병의 경우에도, 인수자가 피합병회사 지배주주의 지분만 프리미엄을 얹어 매입하는 경우가 흔했다. 이런 경우, 남은 지분 즉 일반주주의 지분 가격은 지배권 관련 불확실성 때문에 하락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지배주주만 비싸게 팔고, 일반주주는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보는 구조다.

이처럼 일반주주의 권리를 보호할 장치가 없다 보니 지배주주가 핵심 부문을 떼어내 다른 회사로 상장시켜도 주주들은 앉아서 당할 도리밖에 없다. 언제 물적분할-동시상장 폭탄을 맞을지 모르는 상태라면 안 그래도 어려운 장기투자는 더욱 언감생심이다. 이러니 한국은 주식투자 기간을 투자자가 아니라 지배주주가 결정하는 나라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지배주주가 주가를 떨어뜨려 일반주주들을 ‘떨궈내고’ 이후 싼 값에 주식을 다시 사들여 자신의 지분율을 높이는 일은 한국에선 흔한 일이다. 심지어는 95% 이상 지분을 확보해 상장을 폐지한 후 회사에 남아 있는 가치를 모두 배당으로 먹어치우는 사례들도 잘 알려져 있다.

지난해 8월2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SK온 동시상장 반대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주주들이라고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다. 법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본 장치가 없거나, 있어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주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집단 소송을 예로 들어보자. 집단 소송엔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회사의 잘못된 의사결정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책임이 주주에게 있다. 그러니 주주들은 회사 측에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고 열람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엔 증거개시제도(공판이 시작되기 전에 원고와 피고 각자가 갖고 있는 증거를 동시에 상대방에게 제시)가 없다. 기업은 자료를 공개할 책임이 없으니 주주들의 요구를 묵살한다. 주주들은 자료를 열람하지 못한다. 게다가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소송 자체가 법원의 허가를 얻어야 가능하다. 허가신청서를 내더라도 기업 측에서 이의라도 제기하면 절차가 늘어져 대법원까지 3심을 거칠 수도 있다. 소를 제기하려고 ‘허가’를 얻는 과정부터 이 모양이다.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은 일본의 ‘자본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본의 이 제도는, 기업 스스로 자사의 가치와 수익성을 평가하고 그 개선방안을 이사회가 수립·공시해서 투자자와 소통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뿌리는 기업구조 개혁을 공언한 아베노믹스(2013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일본은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4년 초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했고 2015년에는 거버넌스 코드를 도입해 주주환원을 강화했다. 기업들이 이를 수행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설명토록 했다(comply or explain). 법적으로 강제하는 ‘강성 규제’와 대비되는 ‘연성 규제’다. 이 코드들은 잘 정착되어 이후 실제로 기업들의 배당과 자사주 매입이 크게 늘었다.

밸류업의 성공을 바라며

일본 밸류업의 목표는 단기적 주가 부양이 아니다.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기업가치 강화다. 이게 쉽게 이뤄지지 않으니 장기 계획하에 꾸준히 실행해온 것이다.

한국의 경우, 주가 하락을 원해서 기어이 그렇게 만들고야 마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 일본과 크게 다르다. 그 아주 강력한 ‘누군가’는 어떤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았으며, 이는 제도적으로 오랫동안 ‘정착’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기업이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율적’이고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노력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지배주주의 터널링을 강하게 규제하지 않는 이상 밸류업의 성공은 언감생심이다. 그동안 한국의 지배주주들이 거버넌스 문제와 관련해서 저질러온 패악질을 상기해보라. 아시아 전문가인 영국의 펀드매니저 조나단 파인즈가 한국에 대해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배주주들은 거버넌스 관련 근본적인 변화(특히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에 계속 반발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행된 정부 정책 개정은 마치 지배주주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말이 칼이다. 무지 아프다. 그리고 훨씬 더 강하게 말하면 ‘쪽팔린다’.

3월4일 일본 도쿄에서 4만 선을 돌파한 닛케이지수가 표시된 전광판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EPA

일본은 한국과 함께 거버넌스가 뒤떨어지기로 유명한 대표적인 나라였다. 그러나 일본은 밸류업을 위해 오랫동안 거버넌스에 집중하며 기초를 다졌고 이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한국이 일본의 밸류업을 따라가기 전에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다. 운동화만 좋은 걸로 갈아신는다고 선수처럼 마라톤을 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이사회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사회는 ‘잘못의 동조자’가 아니라 ‘주범’이었다고 봐야 한다. 아무리 주주들의 비례적 이익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사회는 너무 스스럼없이 주주들의 부를 약탈하는 결정을 내려왔다. 우리는 이제부터 지배주주의 터널링에 동조하는 이사들이 누구인지 눈에 불을 켜고 가려내야 한다.

밸류업의 성공을 바란다. 성공의 바탕은 신뢰다. 그 진정성은 지배주주의 합법적 약탈을 잡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려스럽게도 윤석열 정부의 밸류업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얘기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 지배주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규제 혁신을 이룰 수는 없다.

지구를 멸망시킬 혜성이 다가오는데 정치인들과 언론은 별 관심이 없고 대중은 그저 우왕좌왕한다. 대통령은 장관 내정자의 구설을 처리하는 데 정신이 팔려 혜성이 달려드는 하늘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영화 〈돈 룩 업〉에서 보여주는 상황이 그렇다. 변죽만 때리다가 끝내기에는 혜성이 너무 가까이 와 있다. 이제 위를 올려다보아야 한다. 거버넌스라는 거대한 혜성을 정면으로 쳐다보기 전에는 어떤 밸류업도 불가능하다.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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