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 자유보다 소중할 때, 인간도 돼지처럼 살처분될 수 있다"

전혼잎 2024. 5. 1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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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김희선 작가의 장편소설 ‘247의 모든 것’
질병 숙주 확진자 247의 죽음 추적하며
공중보건과 맞바꾼 통제의 탄생 그려내
지난달 24일 서울 청계광장에 마련된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분향소의 모습. 김현우 기자

요새 거리에서 마스크 쓴 사람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체온 측정계나 손 소독제 역시 식당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채로만 가끔 마주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한때는 자연스러운 일상의 부분, 혹은 전부라고까지 느껴졌던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모든 것은 정말 현실이었을까. 코로나19가 실재했음은 아주 가끔 이 바이러스가 가져온 고통에 여전히 시달리는 누군가를 볼 때야 떠올리게 된다. 그마저도 이내 흐릿해진다. 그건 누군가의 고통일 뿐 ‘나’의 고통이 아니라서다.우연히 ‘안전한 쪽’에 있었다는 사실은 무엇보다 강력한 권력이었다.


우주로 격리된 인류 최후의 숙주 247

247의 모든 것·김희선 지음·은행나무 발행·224쪽·1만6,800원

“변종 니파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이자 인류 최후의 숙주였던 247이 죽었다는 소식은, 세계질병통제센터(WCDC) 홈페이지의 공지란에 처음 게재됐다.”

약사이자 소설가인 김희선(52) 작가의 ‘247의 모든 것’은 코로나19 이후 또 다른 변종 바이러스 위기에 선 세계를 그린다. 식용 돼지 전체와 일부 인간을 절멸시킨 변종 니파바이러스. 코로나 대유행 이후 만들어진 조직 WCDC는 이 바이러스를 몸에 잔뜩 품은 ‘인류의 적’ 247을 우주선에 실어 지구 밖으로 내보내기로 한다. “바이러스라는 종족은 운석 조각에 붙은 채 영하 270도의 차가운 우주를 유영하면서도 끝끝내 생존한 끈질긴 놈들”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불가피한, ‘완벽하고도 영원한 격리’다.

현실과 비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드는 작품을 써온 김 작가의 소설답게 ‘247의 모든 것’ 역시 불과 몇 년 전 코로나19가 휩쓸었던 현실의 과거와 여기에서 더 나아간, (아직) 비현실적인 미래를 얽어낸다. 확진자 넘버 247, 김홍섭이라는 이름의 오십 대 중반의 대한민국 남성이 우주에 격리된 채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하면서다. 소설 속 ‘기록자’는 247이 일했던 축산연구소가 있던 마을의 주민부터 그의 초등학교 동창, 의사, 약사, 병리학자 등을 만난다. 온갖 음모론과 추측 혹은 진실이 뒤엉킨 증언은 바이러스를 대하는 인류 전체의 모습을 소묘한다.


바이러스로 인한 통제의 선은 어디까지

지난달 17일 경기도 용인의 한 농장에서 방역차량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바이러스로부터 완벽한 격리가 가능하다면 당신은 어느 수준까지의 ‘통제’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247의 모든 것’ 속 세상에서는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시 곳곳에 설치된 안면인식 열화상 카메라와 열 감시 드론이 들여다보고, 체온이 정상범위를 넘어서면 수용소로 끌려간다. 해열제는 금지 약물이 됐다. “격리 조치를 받는 대신 해열제를 삼킨 채 멋대로 돌아다니”는 감염된 자들을 막기 위한 선제 대응이다. “열이 있는 사람을 신고하세요. 인류의 건강과 안전이 당신 손에”라는 공익광고는 거대한 전광판에서 깜박거린다. 익숙한 디스토피아다. 이미 한국을 비롯한 각 세계는 코로나19 당시 자발적으로 공중보건과 개인의 자유를 거래한 경험이 있다.

소설은 또 구제역과 아프리카돼지열병, 조류독감 등으로 땅에 묻혀야 했던 돼지와 닭의 자리에 인간 역시 예외일 수 없음을 은유한다. 인간들은 동물에 대한 살처분을 옹호하면서 “동물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만큼 중요하다는 역겨운 소리는 집어치우라”고 거듭 말한다. 그러나 추가 감염을 막겠다는 이유로 병에 걸리지 않았던 돼지도 다 죽여버리던 인간이 과연 같은 종에게는 관용을 보일 것인가. “돼지들의 운명이 곧 우리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스치더군.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다르지만, 알고 보면 같다”는 예감은 결코 과하지 않다.

김희선 소설가. 은행나무 제공

전 세계를 뒤흔든 코로나19를 통해 인류는 무엇을 배웠나. 오히려 고립과 단절, 또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교훈을 얻은 건 아닐까. “해열제를 먹을 자유. 마음대로 두통약을 사 먹을 자유. 아니 무엇보다도 저 거지 같은 안면인식 열화상 카메라 따위에 얼굴을 찍히지 않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자유”가 살아남은 이들의 생명보다 앞설 순 없다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것. 지금도 온라인에 ‘확진자 1번’을 검색하면 누군가의 얼굴과 그의 신상정보가 쏟아진다. 또 격리된 채 죽어간 무명의 이들까지. 2020년 봄에 찾아왔던 코로나19는 이대로 잊히기엔 이르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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