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사냥개?' 등산로에서 반려가족 봉변.. 이대로 방치해도 되나

2024. 5. 1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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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경기 구리시 아차산 등산로에서 반려인과 산책 도중 휴식을 취하던 반려견 '샌디'가 갑작스럽게 목줄 없는 대형견에게 물려 끌려간 뒤 3일만에 주검이 된 채 발견됐다. 샌디 보호자 A씨 가족 제공

지난 4일, 80대 남성 A씨는 반려견 ‘샌디’와 서울 용마산에서 아차산으로 넘어가는 등산로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경기 구리시 관내 접어들어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던 A씨와 샌디는 순식간에 달려오는 대형견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샌디를 지키려던 A씨는 바닥으로 고꾸라졌고, 대형견은 샌디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A씨 가족들은 샌디를 찾기 위해 주변을 수소문했습니다. 그렇게 3일을 찾아 헤매던 7일, 가족은 산속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샌디를 발견했습니다. 샌디의 장례를 치른 뒤, 인근 마을을 찾은 A씨 가족은 문제의 대형견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당일, 인근에서 멧돼지 포획을 위해 엽사와 엽견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주민들의 설명을 들은 겁니다.

A씨가 반려견 '샌디'와 함께 산책하던 도중 쉬던 등산로의 바위. 사진 속 위치 정보에 따르면 이곳의 행정관할구역은 경기 구리시였다. 샌디 보호자 A씨 가족 제공

A씨 가족들과 다른 시민들이 구리시에 민원 전화를 넣은 결과, 사건 당일 포획단이 운영되고 엽견이 활동을 한 사실까지는 확인됐습니다. 그러나 구리시 측은 “엽견이 등산로를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라며 “엽견이 반려견을 죽였다는 증거는 없고, 들개일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구리시 측 주장처럼 샌디가 엽견에게 물려가 죽였다는 물증은 없습니다. 당시 상황이 급박했고 고령인 A씨가 이 상황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씨는 당시 샌디를 물고 간 개를 뒤쫓던 도중 2~3마리의 대형견들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엽견이 등산로를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구리시 설명에 대한 반론도 있습니다. A씨 가족은 동그람이에 “인근 지역 주민에 따르면 지난 1월, 엽견으로 보이는 대형견 2마리가 등산로를 배회하고 있다는 목격담과 사진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사진 속에는 목줄 없는 대형견이 등산로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담겨 있었고, 해당 사진 메타데이터에는 마을 인근 등산로 입구의 위치 정보도 담겨 있었습니다.

지난 1월 경기 구리시 아차산 등산로에서 촬영된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대형견의 모습. 이 사진을 촬영한 인근 마을 주민은 "엽견 두 마리가 목줄 없이 등산로를 배회하는 걸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샌디 보호자 A씨 가족 제공

설사 엽견이 샌디를 물어 죽였다고 해도 구리시는 “구리시가 포획 허가를 내주는 것은 맞지만 포획단을 직접 관할하지 않는다”며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A씨 가족은 이에 대해 “구리시가 ‘엽견이 등산로를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주장하려면 그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며 “주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A씨와 샌디에게 벌어진 일처럼 엽사들이 보유한 사냥개들에게 시민들과 반려견이 피해를 입은 사건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21년 11월, 대구의 한 야산에서는 사냥개 3마리에게 반려견이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도 강원 춘천시의 한 주택가에서 80대 노인이 사육장을 탈출한 사냥개 3마리의 습격을 받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팔과 다리 곳곳에 깊은 상처를 입어 피부 이식 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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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와 샌디에게 벌어진 사건이 ‘사냥개 때문’이라고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선 사례들을 돌아봤을 때, 유해 야생동물 포획이라는 명분으로 사냥개가 시민들이 돌아다니는 등산로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 사냥개들은 강한 공격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사육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경비 혹은 사냥 목적으로 키워지는 개들 상당수는 사회화가 안 돼 있다”며 “개에게 먹을 것을 잘 주지 않아 굶주리는 등 욕구 불만을 가진 사례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위험하게 사육되는 개들을 관리할 규정도 사실상 전무합니다. 어웨어 황주선 연구이사(수의학 박사)는 “행정 규칙상 엽사 1명당 엽견 1마리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면서도 “실제로 이 규칙대로 엽견을 운영하는 엽사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규정을 어긴다 해도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뜻입니다.

물론, 국내에서 엽견 없이 야생동물을 포획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합니다. 황 이사는 “국내처럼 평평한 지형보다 산지가 많고, 산탄총만 사용 가능하도록 한 규제 때문에 엽견 없는 유해야생동물 포획은 사실상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는 게 황 이사의 설명입니다.

산지가 많은 국내 사정상 당장 사냥개 없이 야생동물 포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사냥개가 직접 야생동물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야생동물 포획에 나서는 것은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영국의 경우는 아예 법률에 명시하고 있어요. ‘개를 사냥에 동원할 수 없다’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개가 직접 야생동물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가령 새를 사냥해야 한다고 하면 개는 새를 쫓아 허공으로 날아오르게 하는 방법이 있어요.
이런 규정을 두는 이유는 심지어 유해조수라 하더라도 동물복지 차원에서 접근했을 때 야생동물에게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에요. 공격을 하는 개도 야생동물의 반격을 받는 만큼 신체적인 손상을 입겠죠.
황주선 어웨어 연구이사,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엽사들이 보유한 엽견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도 사실상 관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멧돼지의 경우, 출몰 지역이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 지역이 바뀌면, 그 지역으로 사냥개가 팔려가는 일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개들의 이동이 잦은데도, 그 개가 어디로 이동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사냥개를 공격성을 극도로 높이는 방식으로 사육하면서, 그 개는 등록도 되지 않은 채 어느 누구의 관리 감독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사냥개는 엽사들이 총기 이외에 야생동물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되는데, 그 무기 또한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황 이사는 여기에 더해 ‘공중보건’ 차원에서의 사냥개 관리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그는 “ASF와 같은 전염병을 위해 멧돼지를 포획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멧돼지와 직접 싸우며 접촉하는 사냥개가 어디에 있는지 관리하는 건 전염병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개를 사냥에 동원하는 게 어쩔 수 없다지만, 다른 방법도 고심하고 장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황 이사는 “일부 엽사 중에는 사냥개 없이 야간에 미끼를 놓고 숨은 뒤 포획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개를 사용하지 않고 야생동물을 포획할 방법들을 국가에서도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안전사고 예방과 공중보건 측면에서 사냥개 포획 방식에 대한 전향적인 대책이 나올지 주목됩니다.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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