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자의 시선] 편집부 후배도, 돌우동 사주던 김 선배도 떠났다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2024. 5. 1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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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Gettyimages.

5월11일 경남도민일보가 창간 25돌을 맞이했다. 이틀 전인 9일 오전 모처럼 회사 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25돌을 자축했다. 동료들은 서로 안부를 묻고 사기를 진작했다. 불확실한 미래를 함께 헤쳐 나가보자고 다짐도 했다. 오래간만에 사내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맥이 빠지는 데는 채 몇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점심 식사를 하고 편집국에 들어갔더니 후배 기자가 난 데 없이 퇴사 소식을 알렸다. 2021년 30대 중반께 나이로 늦깎이 입사한 후배였다. 그는 회사일에 대해 가감 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내근직인 편집부에 있으면서도 자기 시간을 쪼개가며 기사를 써내기도 했다. 회사에 애살이 있다고 느꼈기에 이별은 더할 나위 없이 아쉬웠다. 다음날 후배가 앉아 있던 책상이 텅 빈 것을 보니 야속한 마음도 들었다. 예전 같으면 붙잡는 시늉이라도 했을 텐데, 이제는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몇 년 새 많이도 떠났다. 부산 토박이인 내게 경남 지역신문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며 검증에 나섰던 시크한 김 선배도 떠났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기획취재를 함께했던 상냥한 이 선배도 떠났다. 마산 창동에서 별미인 돌우동(뚝배기 우동)을 사주었던 단발머리 김 선배도 떠났다. 종종 연락하겠노라며 떠난 이들의 기별은 점점 뜸해져만 간다. 모두 30대 중후반 기자들이었다.

지역신문사마다 30대 기자들 퇴사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속된 말로 좀 쓸 만하게 키워놓으면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본래도 30대 때 이직이 활발한 편이긴 하다만 유독 30대 기자 유출이 더 심한 데는 이유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베이비붐 세대의 정년퇴직이다.

2009년으로 기억한다. 1993년생인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그때 학교 선생님이 수업 중 대강 이런 말을 했었다. “너희는 30대까지 버텨라. 그러면 취업하기 쉬울 거다.”

선생님은 학부모가 1950년대 중반생부터 1960년대 중반생인 '베이비붐 세대'임을 들어 이들이 정년퇴직할 때쯤 취업난이 해소될 것이라 내다봤다. 시간이 흘러 마침내 나는 30대가 되었고, 선생님 말처럼 부모 세대가 떠난 빈 자리 곳곳을 그 자식 세대가 채우고 있다. 물론 출생아수 100만 명을 웃돌았던 부모 세대보다 자식 세대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넓다. 3포 세대, N포 세대로 불리며 취업난에 시달리던 이들에게는 희소식이라고 할 만하다. 반면, 처우가 열악한 대부분의 지역신문사에서는 인력 유출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이는 '구인난'의 서막이다.

▲ 5월9일 대구 북구 경북대학교 글로벌플라자에서 열린 '2024 대구경북 공공기관 지역인재 합동채용설명회'를 찾은 취업준비생들이 채용 설명을 듣고 있다 (위 칼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 연합뉴스

베이비붐 영향은 1990년대생에서 끝났다. 이제 2000년대생이 온다. 지역신문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지역대학이 입학생이 부족해서 휘청이는 모습과 똑 닮았다. 대학 다음은 취업이다. 초저출산 세대인 이들이 구직에 나선다. 이들에게 신문은 유물이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유물 같은 것을 만드는 일에 사명감을 가질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신문사로서는 사람이 자산인데, 매년 인력풀이 줄어들면 그만큼 신문사의 경쟁력도 줄어든다. 저임금 구조인 지역신문부터 무너질 수 있다는 염려가 크다. 일 잘하는 30대 기자가 계속해서 빠져나가고 열정 넘치는 20대 신입기자를 구하지 못하는 상상을 하면 아찔하다.

문제가 이뿐이랴. 지역신문은 지역소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지역소멸은 곧 독자소멸이다. 경남의 경우 18개 시군이 있다. 이중 11개 시군이 인구소멸위험지역이다. 이처럼 지역신문은 해가 갈수록 기자 수급과 독자층 확보가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럴수록 지역사회의 권력 감시·견제 기능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지역이 소멸되든 말든 토호세력은 계속 남아 권력을 행사할 것이고, 언론의 감시가 없는 곳에서 정치·사회 기득권 권력이 활개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다. 물론 감시와 견제 기능을 상실한 사이비 지역신문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지역신문이 말살되는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 없다.

매년 돌아오는 창간 기념일마다 독자들에게 자주 듣는 응원의 말 한마디가 있다. “그래도 이런 신문이 지역에 하나쯤은 있어야….”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독자들에게 듣는 응원이어서 더 고맙다. 경남도민일보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것이다. '지역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언론'의 자리를 계속 지킬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것 말고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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