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성관계할 권리를 보장하라”···성문화를 완전히 바꾼 ‘이 시위’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5. 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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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68] “전쟁을 멈추자, 그리고 섹스를 하자.”(Make love, Not war)

1968년은 전 지구적 ‘시위의 해’였다.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등 전 세계 분노한 시민들이 길거리로 나왔다. 이들의 공통된 요구는 하나. “미군의 베트남 철군.”

베트남전 참상이 시시각각 TV로 중계되면서 세계 시민의 분노가 들끓어 오른 것이었다. 한 사건에 대한 시위가 전 지구적으로 퍼진 최초의 사례였다.

베트남전 반전 시위 도중 한 여성 시위자가 미국 국방성을 지키고 있는 헌병에게 꽃을 건네고 있다.
도심에 집결한 시민들은 정치인들에게 “무의미한 전쟁을 그만두라” 외치면서 한발짝 더 나아갔다. “자유로운 섹스의 권리를 보장하라”. 이 시위 행렬이 ‘68혁명’이라고 불림과 동시에 ‘섹스혁명’(Sexual Revolution)으로 명명된 이유였다.

모든 혁명이 역사의 물길을 바꾸듯, 당대의 시위는 현재 서구 성문화의 기반이 됐다. 자유로운 성관계, 동성연애 긍정, 나체를 부끄러워 않는 자연주의가 그 결과물이다.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선 누드 마라톤, 누드 자전거 대회가 공공연히 열린다. 반전 시위는 어쩌다가 섹스 혁명으로까지 번졌을까. 그해의 5월을 다시 생각한다.

2008년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미국인들이 68년 혁명 당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출처=다니엘 부마]
베트남전의 참상...TV로 퍼지다
베트남전은 그 참상이 시시각각 세계 시민에게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미국이 북베트남을 폭격하는 장면이 여과없이 TV 화면에 중계됐다.

공군이 쏟아붓는 포탄에 옷도 차려입지 못하고 울면서 달리는 아이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남베트남 수사당국이 즉결처분으로 북베트남 군인을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응우옌 반 렘의 처형)도 분노를 자아냈다.

1965년 미군이 다낭 인근에서 베트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연행하고 있다.
세계의 청년층은 참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제국주의 미국이 본국의 이익을 위해 베트남인을 학살하는 것으로 인식해서였다.

당시 청년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았고, 전쟁의 반면교사를 위해 평화에 대한 교육도 철저히 받았다. 이들은 전쟁을 ’악‘이라 여긴 이들이었다.

1968년 2월 미국의 한 가정에서 베트남 전쟁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
윤택한 경제환경은 평화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끌어내기 마련이다. 전쟁 당사자인 미국뿐만 아니라, 주요 선진국에서 시위가 폭발하게 된 배경이었다. 베트남전 반전 운동은 전 지구적으로 퍼져나갔다. 1968년의 일이었다.
반전 시위의 물결...전 세계로 퍼지다
It’s forbidden to forbid!(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시위의 장이 열리면, 모든 시민적 욕구가 동시에 분출되기 마련이다. 68혁명은 ‘반전’운동에서 시작해 ‘사회’운동으로 시나브로 번져나갔다.

인종문제, 환경주의, 자연주의, 여성주의, 자본주의 반대에 기반한 메시지도 분출됐다. 그동안 사회가 품지 못한 시민들의 욕구가 이 장 속에서 폭발한 것이었다. 보수적인 시민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주입한 기존질서에 대한 거부기도 했다. 이들은 외쳤다. “모든 금지를 금지하고, 상상력에 권력을 부여하라”고.

1968년 4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 다양한 단체의 사람들이 ‘반전’의 구호 아래서 각자의 어젠다를 제시했다. [사진출처=Erick Koch]
가장 전위적인 메시지가 나온 분야는 ‘성’이었다. ‘68의 아이들’은 동성애를 옹호하고, 피임과 낙태의 권리를 외쳤다. 공개 누드와 혼전 성관계의 권리도 주장했다.

이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사랑의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고. 세 사람·혹은 네 사람이 사랑을 나눠도 이상하지 않다고. 자기의 신체적 쾌락과 자유는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기성세대를 아연실색케 했지만, 젊은 세대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당시 서구 사회는 성적으로 너무나 억압된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혼전 성관계는 물론이고, 자위도 권장되지 않았다.

“꼰대들은 빼고 얘기하자고” 1966년 영국 런던의 카나비 스트리트. 당시 청년들은 보수적 기성세대와 다른 생각을 지닌 존재들이었다.
법적으로 부부 사이의 ‘강간’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문명국’을 자처한 서구사회였다.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중요하게 교육받은 신세대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구시대의 유물이었다. 지나친 억압은, 또 다른 반동을 부른다. 1968년의 혁명의 파고가 성 혁명으로 이어진 이유였다.
자유롭게 사랑하고, 음악하고...히피의 탄생
성 혁명을 주도한 이들 중 하나가 ‘히피족’이었다. 머리를 산발하고 자유롭게 유랑하면서, 술을 마시고, 사랑을 나누고. 그들이 한데 모여 연 음악 축제는 오늘날 ‘우드스 페스티벌’로 남아있다.
“힙하게 청바지를 입자고” 히피족들은 정장 대신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자유롭게 길렀으며 술과 마약에 취해 사랑을 나눴다. 사진은 1969년 8월 우드스톡 음악 축제에 모인 히피들. [사진출처=릭 매닝]
68혁명은 그야말로 선진국 전 세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빛나는 예술가들이 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비틀스는 그 단적인 예였다. 그룹의 리더 존 레넌은 일본의 행위예술가 오노 요코를 만나 ‘68혁명의 대표적 예술가’로 거듭났다. 대표곡 ‘이메이진’(1971년)의 가사만 봐도 그렇다.
Imagine there‘s no countries(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Nothing to kill or die for(희생 시킬 일도 희생 당할 일도 없어요).
전위적인 메시지는 ‘68의 정신’을 그대로 담았다고 평가받는다. 비틀스는 또 노래했다. “Power to people”(시민에게 권력을)이라고. 존 레넌과 오노 요코가 벌거벗고 찍은 사진은 지금도 유명하다.
존 레넌과 오노 요코는 1968년 반전 운동을 지지하는 대표적 예술가였다. [사진출처=Roy Kerwood]
수 많은 예술가의 지지를 받은 68혁명
성적 자유는 일종의 시대 정신이었기에 많은 예술가가 공감했다. 지미 헨드릭스, 밥 딜런도 68혁명의 대표적 지지자였다. 롤링 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는 1968년 런던의 베트남 전쟁 반대 시위에 감명을 받아 Street Fighting Man(거리에서 싸우는 사람)이라는 곡을 썼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인 앤디 워홀 역시 자신의 새 작품으로 보수적인 성문화에 균열을 냈다. ‘블루무비’가 그 선봉이었다. 노골적인 성행위를 그대로 묘사한 작품. 앤디 워홀은 이렇게 얘기했다. “줄거리가 없는 것은 의도적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베트남전처럼) 파괴가 아니라 사랑에 관한 것”이라고. 인간의 성행위를 예찬함으로써 전쟁을 비판한 것이었다.

앤디워홀의 블루무비. 포르노에 가까운 작품으로 성 혁명을 지지했다.
미셸 푸코,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와 같은 철학자 역시 68혁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68의 아이들은 그들의 책을 읽고, 자본주의의 비판에 나서곤 했다.

전례 없는 운동이었다. 이전에도 사회를 변혁하려는 좌파가 있었지만 세대와 공명하지 못했다.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에 영감을 받아 자본주의를 전복하려고만 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를 외치는 기존 좌파들은, 집에 와서는 가부장적인 질서를 옹호하는 ‘작은 독재자’였다.

1960년대 급진의 아이콘인 프랑스 철학자 시몬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가 체 게바라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진.
사회질서를 새롭게 세우려는 신세대의 ‘미시 개혁’ 운동엔 관심 없었다(지금의 진보세력이 청년층의 어젠더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신세대 눈에 이들 역시 기성세력, ‘꼰대’에 가까웠다. 신좌파가 탄생한 배경이었다.
“섹스를 억압하지 말라”고 외치기 시작한 시위대
이들은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섹스했다. 자위와 피임, 혼외관계도 긍정하면서 즐기기 시작했다. 여성을 억압하는 기존 성체제를 단호히 거부했다. “정치적으로(거시)로 진보라면, 일상생활(미시)에서도 진보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너무나 전위적인 행동은 그 짙은 빛 때문에 그림자를 부르기 마련이었다. 혁명 에너지에 지나치게 감화된 이들 중 일부는 정도에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약에 취했고, “자본주의를 뒤엎자”며 폭력단체를 조직했다.

우드스톡 페스티벌에 모인 수많은 젊은이들은 마약에 취한 채 비틀거리기도 했다. [사진 출처=데릭 레드먼드]
일본의 신좌파 부류인 폭력테러조직 ‘적군파’는 68혁명 이듬해인 1969년 결성됐다. 이들은 자국에서 여객기 351편을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했다.

독일에서도 적군파(RAF)라는 조직이 결성돼 은행강도, 폭탄 테러, 납치 살해를 강행했다. 모두 “인민을 위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들 역시 “섹스와 총질은 똑같은 혁명행위”라고 주창하곤 했다.

1968년 혁명에 영향을 받아 창설된 서독 ‘적군파’는 수많은 고위 관료들을 암살하면서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를 이어갔다. 사진은 영화 ‘바더마인호프’의 한 장면. [사진출처=IMDB]
오늘날 서구 성문화 근본이 된 68혁명
68의 혁명은 그 많은 부작용에도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시민의 ‘거대한 분노’에 놀란 정치권이 서둘러 진보적인 입법에 나서면서였다. 1969년 미국에서는 민권법이 통과돼 흑인 인권 운동에 전기가 마련됐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자들과 여성의 권리가 한층 보장된다. 영국, 스웨덴,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전역에서는 여성운동이 조직됐다. 여성의 낮은 임금에 문제를 제기하고, 낙태의 권리를 옹호하는 목소리였다.

1968년의 반전 운동은 여성해방운동의 태동을 의미하기도 했다. 사진은 1972년 미국의 여성 운동가가 반전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에 주둔한 미군 병력의 철수를 명령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멈추고 사랑을 하라’는 68의 메시지를 수용한 결과였다.

우리가 오늘날 즐겨 입는 청바지 역시 68의 ‘레거시’(유산)였다. 당시 젊은 세대들은 계급제의 유산처럼 비치는 정장을 거부했다. 개인 간의 평등을 상징하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미국 청바지 전문 브랜드 리바이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누드로 경기장을 달리는 ‘스트리커’는 1968년 성 혁명의 영향을 받은 운동으로 평가된다. 지금도 서구사회에서 누드를 자연스레 여기는 자연주의가 퍼진 것도 68 성혁명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진은 2006년 하버드-예일대 연합 대회 한 장면. [사진출처=Alex Kehr]
68혁명은 서구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버렸다. 사랑은 성의 구별없이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 있고, 나체는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 인간은 원래부터 맨몸으로 세상에 나온다는 게 이들의 관념이었다. 오늘날에도 서양에서 공공적인 ‘누드’를 크게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8의 아이들이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여전히 국가는 존재하고,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환경오염도 여전하고, 전쟁의 포성도 아직 멈추지 않았다. 그러니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휴화산인 68의 에너지가 언제 그 분노를 표출할지를.

<네줄요약>

ㅇ1968년은 지구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면서였다.

ㅇ당시 시위에는 전쟁에 반대하는 청년 뿐만 아니라, 억압적인 성 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시민들도 참여했다.

ㅇ동성애, 여성주의와 같은 수 많은 성 담론이 퍼진 배경이다. 1968년을 ‘성 혁명’이라고도 부른 이유다.

ㅇ당시의 혁명은 서구 성문화의 기반이 됐다.

<참고문헌>

ㅇ오제명 외, 68 세계를 바꾼 문화혁명, 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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