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필요없다…전세계 자동화 실험실 AI로 통합해 레이저 신물질 발견

여러 자동화 연구실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통합해 관리하는 '자율주행 실험실'이 신물질 후보를 효율적으로 찾아냈다. 게티이미지뱅크

새로운 분자와 물질을 만드는 과정은 지루한 작업의 연속이다. 무수한 레시피의 다양한 반응 조건을 테스트하며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여러 자동화 실험실을 인공지능(AI) 기반으로 통합해 관리하는 '자율주행 실험실'을 통해 인간 과학자가 거의 작업하지 않고도 효율적으로 신물질을 찾아냈다. 

알란 아스푸루-구직 캐나다 토론토대 화학과 교수가 이끈 국제공동연구팀이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자동화 실험실들을 인공지능(AI)으로 운영해 레이저 소자에 쓰일 새로운 재료 후보를 찾아내고 연구결과를 17일(현지시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했다. 

실험실에 자동화 기술이 도입되고 있지만 한 실험실에서 신물질 탐색의 모든 과정을 진행하기는 어렵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자동화 실험실에 분산된 기능을 AI로 통합해 자율적으로 신물질을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스푸루-구직 교수는 "'자율주행 실험실'을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먼저 유기 고체 레이저(OSL) 소자 구현을 위한 신물질을 찾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OSL 소자는 첨단 디스플레이와 통신 장치에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지난 10년이 넘는 연구에도 후보 물질은 약 12개 정도만 발견됐을 정도로 신물질 탐색이 어려운 분야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영국 글래스고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일본 규슈대가 연구에 참여했다. 글래스고대와 UBC에서 신물질의 기본이 되는 재료를 각설탕 크기의 블록으로 만들었다. 아스푸루-구직 교수가 있는 토론토에서는 로봇이 블록을 전달받아 다양한 조합으로 엮어 신물질 후보로 만들고 발광 특성을 분석했다. 다시 UBC에서 신물질의 대량 합성 및 정제 방법을 결정한 뒤 규슈대 연구소에서는 신물질의 레이저 특성을 테스트했다.

전체 작업 과정은 IBS와 토론토대가 공동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 AI 플랫폼이 감독했다. AI는 만들어진 화합물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에 합성할 물질을 결정했다. 연구팀은 이 과정이 "마치 교향곡 같았다"고 묘사했다. 또 연구의 가장 큰 장애물이 국제 배송 서비스 '페덱스(FedEx)'라고 밝혔다. 실험실 간에 화합물을 배송하는 부분이 개발 속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협업 결과 21개의 레이저 소자 후보 화합물을 포함한 621개의 새로운 화합물이 탄생했다. 이 중에는 지금까지 개발된 어떤 유기 물질보다도 효율적으로 청색 레이저 빛을 방출할 수 있는 화합물도 포함됐다. 

연구팀은 "전 세계에 분산된 기존 합성, 배합 모듈 등을 통합하면 자동화 실험과 인간의 실험 역량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며 "자동화와 AI의 발전으로 더 많은 연구소가 힘을 합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