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주년 된 5·18민주화운동… 끝내 밝히지 못한 발포책임자·행불자 소재

한현묵 2024. 5. 18.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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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44주년을 앞두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조사위)가 지난 4년간 조사활동의 결과물(개별 보고서)을 내놓았지만 5·18의 핵심 쟁점인 집단 발포책임자와 행방불명자 소재를 규명하지 못하면서 또 다시 미완의 과제로 남게됐다. 오히려 5·18조사위가 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난 무기고 습격 시점과 권모 일병의 사망 과정, 교도소 습격 사건 등을 왜곡하거나 부실 검증해 논란만 커지고 있다.

18일 5·18단체와 5·18조사위 등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지난해 12월 4년간의 공식활동을 마치고 올 2월부터 보고서 공개 시한에 맞춰 개별보고서 17개를 공개했다. 5·18조사위는 내달 초안 보고서를 토대로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국회와 대통령에 보고한다. 사실상 5·18의 첫 국가보고서가 되는 셈이다.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유공자유족회의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
◆‘발포 책임자=전두환’ 규명 못해

5·18조사위는 최우선 과제였던 발포경위 및 책임소재와 행방불명자 암매장지 소재 및 유해발굴 사업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다. 지난 4년간 조사에서 44년간 과제로 남았던 발포 명령자와 암매장지를 이번에도 규명하지 못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그동안 여러 정황 증거를 보면 시민들을 향한 발포 책임자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목됐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도 결정적인 근거를 찾지 못하고 진상규명을 하지 못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된 179명의 소재는 흔적조차 찾지 못했고 다수의 시신이 암매장됐다가 제3의 장소로 옮겨졌을 가능성만 제기한 채 관련 조사는 향후 과제로 남겨야 했다.

개별 보고서의 가장 논란은 권모 일병 사건이다.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당시 계엄군 장갑차에 권일병이 깔려 숨졌다. 당시 계엄군 이모 대대장이 광주사태체험수기에서 권일병의 사망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이 대대장은 “화염병이 날아와 장갑차에 불이 붙자 장갑차를 후진하라고 지시했다. 후진하던 장갑차에 병력 한명이 숨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계엄군은 이 대대장의 명령으로 후진한 장갑차에 권일병이 사망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5·18조사위는 권일병의 사망에 여러 진술이 엇갈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권일병을 숨지게 한 장갑차가 시위대의 것인지, 계엄군의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호관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활동결과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향후 과제'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계엄군 장갑차 깔려 숨진 권일병 조사도 모호

무기고 피습도 조사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5·18당시 계엄군의 발포 이후 시민들이 전남 나주경찰서 지서 무기고를 피습했지만 양측의 상반된 주장만 나열해 계엄군의 자위권 발동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군부는 시민군이 먼저 경찰서의 무기고를 피습하고 무장을 해 시위대를 향한 발포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무기고 피습 시점은 신군부의 자위권 발동 근거와 직결돼 진상 규명의 핵심 과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18진상규명위가 무기고 피습 시점을 명쾌하게 밝히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호 민변 광주전남지부 5·18특별위원장은 이날 “그동안 대법원의 판결 등을 종합하면 계엄군이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쯤 옛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발포를 하며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자 방어 차원에서 무기고 피습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쯤 계엄군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분노한 시민군이 이후 경찰서의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장을 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계엄군의 발포 후 시민군의 무장이 뒤따랐다는 법원의 판결문을 제시했다. 광주지방법원이 2018년 5월 14일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2차 출판 및 배포금지가처분 인용에서 ‘총기로 무장한 시위대가 먼저 계엄군에 대해 공격을 하였기 때문에 계엄군이 이에 대한 자위권행사 또는 정당방위 차원에서 총격을 시작한 것이다’는 내용에 대해 “허위사실로 삭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고(故) 장재철 열사의 어머니 김점례 여사가 아들의 사진을 쓰다듬고 있다. 뉴시스
◆신군부 조작한 광주교도소 습격 검증 부실

시민들의 광주 교도소 습격사건도 명확하게 조사하지 않아 반발을 사고 있다. 신군부는 시민들을 폭도로 내몰기 위해 군 당국이 작성한 여러 문건에서 교도소 습격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2017년 국방부는 당시 문건이 조작·왜곡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5·18조사위는 논란이 되고 있는 교도소 습격 사건이 실제 있었는지를 검증하지 않았다. 교도소 공격은 보수논객 지만원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규모가 크거나 격렬한 수준이 아니었다고만 기록했다. 이같은 모호한 기록이 자칫 또다른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5·18조사위 송선태 위원장은 “우려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며 “종합보고서를 작성할 때 광주 시민들의 질책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오월단체는 이번 5·18조사위의 한게를 보완하기 위해 2기 조사위를 구성해 진상규명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민단체가 모인 오월정신지키기 범시도민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종합 보고서는 충분한 심의와 검증 과정을 거쳐 정당성을 획득해야 한다”며 “조사 기간에 제한이 없는 상설기구를 두고 진상규명에 시효를 둬서는 안된다”고 했다.
2019년 12월 20일 5·18민주화운동 행방불명자 암매장지로 지목된 광주 북구 옛 광주교도소 부지에서 발굴된 유골. 5·18기념재단 제공
◆무명 열사·행불자 신원 찾은 건 성과

5·18조사위는 40년 넘게 이름 없는 시신으로 묻혀있던 무명 열사 3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지금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이거나 행방불명자와 시신이 뒤바뀌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민간인 사망자 166명의 개인별 사망 경위를 특정하고 시민군의 총(카빈)에 숨진 26명 중 25명이 실제로는 계엄군이 쏜 총(M16)에 사망한 것으로 공식 확인했다.

북한군 개입설 등 왜곡 세력의 주장과 그 근거를 하나하나 검증해보고 모두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내 향후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했다.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거나 저격 총으로 조준 사격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등 정당방위(자위권) 차원이었다는 과거 신군부 주장의 허위성을 재확인했다.

외곽 봉쇄 작전 중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의 구체적인 실체도 정부 차원 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했다. 노인과 여성에게 총부리를 겨눈 계엄군의 학살 만행으로 71명이 숨지고 실종 7명, 부상 208명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성 연행자를 성추행하거나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서 성폭행하는 등 인권 유린 사례를 밝혀낸 것도 성과로 꼽힌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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