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생물의 진화… 살아남은 것에 대한 탐구

송은아 2024. 5. 18. 06: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로 돌아간 귀신고래 아가미 없어
바다 얼면 물 밖 못나와 익사 위험
물보다 공기서 산소 얻는 게 유리
공기 호흡 ‘돌연변이’ 축적 추측
코알라는 이빨 닳아 굶주리지만
해당 유전자, 번식 긍정적 가능성
진화적 변화 주체, 개체 아닌 유전자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앤디 돕슨/정미진 옮김/포레스트북스/2만2000원

1988년 겨울 미국 알래스카 근처의 얼어붙은 바다에 귀신고래 세 마리가 갇혀버렸다. 그맘때쯤 귀신고래는 이미 남쪽으로 옮겨갔어야 했지만 너무 늦게 길을 떠난 것이다. 고래 사냥꾼들이 톱으로 얼음구멍을 넓히며 고래를 도왔다. 턱도 없었다. 얼지 않은 바다는 8㎞나 떨어져 있었다. 구조작업은 촌각을 다퉜다.

귀신고래 구조가 시급했던 이유는 뭘까. 문제는 추위가 아니라 익사 위험이었다. 귀신고래는 물에서 숨 쉴 수가 없다. 바다가 얼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해 산소를 마실 수 없게 된다. 아가미가 없어서다. 귀신고래의 사례는 생물의 진화가 얼마나 불완전한지 보여준다.

앤디 돕슨/ 정미진 옮김/ 포레스트북스/ 2만2000원
신간 ‘고래는 물에서 숨 쉬지 않는다’는 귀신고래처럼 진화의 혼란스러운 산물을 들여다본다. ‘진화의 함정, 사각지대, 절충안, 타협, 실패작들’을 통해 진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힌다. 저자는 “진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진화에 목적도, 중요한 방향도 없다는 것을 이미 알 것이다. 또 자연 선택은 사전에 어떤 고려도 하지 않기에 동물의 몸에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명백한 설계상의 결함이 일부 있다는 것도 알 것”이라며 “하지만 진화의 기이함은 이보다 훨씬 더 깊다”고 말한다.

앞서 귀신고래 세 마리를 구하기 위해 미국과 구소련은 합동작전을 벌였다. 셋 중 한 마리는 발견된 지 2주 후에 끝내 익사했다. 귀신고래는 진화 과정에서 물로 되돌아가면서 왜 아가미를 다시 진화시키지 않았을까. 고래의 머나먼 조상은 물고기이지만, 육상진화를 거쳐 육지에 사는 네 발 달린 생물이 됐고 다시 물로 돌아갔다.

저자는 바다로 돌아간 포유류가 물보다 공기에서 산소를 얻는 게 유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바닷물의 산소는 공기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물에서 산소를 추출하는 기관을 자라게 할 돌연변이는 이점이 적을 수밖에 없다. 또 호흡하려면 바닷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 바닷물을 데우고 염분을 없애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러니 초기의 해양 포유류는 아가미를 발달시키는 대신 수중에서 공기 호흡을 쉽게 할 수 있는 돌연변이를 축적했으리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이다. 코알라와 코끼리의 이빨 마모가 굶주림으로 이어지고, 치타와 가젤이 서로에게 불리한 속도 경쟁을 펼치는 것은 진화의 비합리성을 잘 보여준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진화가 현명한 결과를 낳지 않는 사례로는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인 치타와 가젤도 있다. 세렝게티 치타 프로젝트에 따르면 치타의 사냥 성공률은 41%에 불과하다. 치타의 수가 늘어나면 일부는 사냥이 어려워진다. 가젤보다 빨리 달려야만 먹이를 구할 수 있다. 속도가 진화의 선택압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렇게 세대를 거듭하면 ‘부모세대 가젤’보다 빠른 치타가 살아남는다. ‘부모세대 가젤’이 빨랐던 이유는 치타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두 동물은 물고 물리며 속도 경쟁을 벌여왔다.

이 속도 경쟁에서 치타는 가젤을 이길 수 없다. 치타는 사냥에 실패해도 또 기회를 얻는다. 반면 가젤은 치타와 추격전에서 패하면 잡아먹힌다. 경주에서 이긴 가젤만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할 확률이 높다. 두 동물의 군비경쟁은 큰 이득이 없다. 속도를 늘리려면 강한 근육과 골격이 필요하다. 에너지가 낭비된다. 이혼조정처럼 치타와 가젤이 현상유지를 하기로 타협하면 좋겠지만, 진화 과정에는 감독관이 없기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코알라와 코끼리의 이빨은 자연의 비합리성을 보여준다. 코알라가 질기고 영양가 없는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소화하려면 계속 씹어서 삼켜야 한다. 안타깝게도 코알라는 두 번째 이빨이 닳으면 새 이가 나지 않는다. 이빨이 닳은 코알라는 굶주리기 십상이다. 평생 이가 여섯번 나는 코끼리도 코알라처럼 이빨 마모와 굶주림에 시달린다.

저자는 ‘적대적 다면발현’이 코알라에 나타났을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한 유전자가 둘 이상의 신체 특성을 발현시키는 것이다. 즉 코알라 이빨을 닳게 한 유전자가 동시에 번식에는 긍정적이었을 수 있다. 혹은 코알라가 에너지를 이빨 유지에 쓰는 것보다 번식이나 다른 기능에 돌리는 게 더 나았을 수 있다.

책은 이 외에도 뻐꾸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신 키우는 박새, 딸을 물어뜯어 불임으로 만드는 일개미 등 수많은 생물의 불완전함, 그럼에도 이들이 살아남은 이유를 파고든다.

이 같은 사례들이 시사하는 것은 진화에는 목적이 없고 수동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점이다. 또 진화적 변화의 주체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인간을 돌아보며 자연스러움을 도덕과 동의어로 여기는 우를 범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