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인터스텔라] "모든 인간이 다 우주" 음악계 노벨상 탄 작곡가 진은숙

김지수 작가 2024. 5.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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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음악계 노벨상 지멘스상 수상식 열려
진은숙 “나는 인생 전체가 슬럼프였다”
오늘 노벨상 받아도 내일 또 머리 쥐어뜯어
AI가 작곡하는 시대에 연필로 악보 쓰는 이유
맥시멈을 다해 소리 지르듯 매번 대작 발표
2024년 클래식 음악계의 노벨상 지멘스상 수상자 진은숙. 5월 18일 독일 뮌헨에서 시상식이 열린다./사진=구본숙

지난 4월 벚꽃이 눈발처럼 흩날리는 날, 진은숙을 만났다. 출렁이는 흑발, 검은 마스카라가 번진 눈매, 드넓은 광대뼈…. 이국적인 여성이 낙화를 뒤로 한 채 호텔 로비에 홀로 앉아 있었다. 서울시향 황금기 시절(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진은숙 상임 작곡가로 일하던 꿈같은 시절)에 처음 만났으니, 7년 만의 해후다.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라는 대작을 정명훈 지휘로 한국 초연하고, 영국 로열 오페라단을 위해 ‘거울 속의 앨리스’를 쓰던 50대의 진은숙도 웅장했는데, 60대의 그는 더 멀리 나아갔다.

올해 1월 독일 에른스포지멘스 재단과 바이에른예술원은 진은숙을 지멘스 음악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클래식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지멘스 상은 작곡, 지휘, 기악, 성악, 음악학 분야를 통틀어 매년 한 명을 수상하며, 인류 문화에 대한 기여도가 수상 기준이다.

카라얀, 번스타인, 메시앙 등이 역대 수상자이며, 아시아인으로서는 진은숙이 처음으로 감격적인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됐다.(상금은 25만 유로, 대략 4억 원).

‘진은숙의 곡은 상상적 모호함과 구조적 정교함, 유동성과 안정성, 신비로움과 화려함 사이에 있다.’ 바이에른 예술원 회원들의 심사평은, 일찍이 그를 알아봤던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지휘자 사이먼 래틀의 말을 상기시킨다.

‘바흐의 곡을 동시대 현대 작곡가의 곡처럼 연주하는 것, 진은숙의 곡을 과거 대가 작곡가의 곡처럼 연주하는 것이 베를린 필의 목표’라고 사이먼 래틀은 음악계에 진은숙의 위상을 공표했다.

그렇게 절정에 올라 ‘클래식은 너무 늙었고 현대음악은 너무 젊다’는 우리의 편견을 일거에 깨뜨리는 진은숙. 63세의 그는 여전히 기백이 넘쳤다. 막 ‘순간의 영원’이라는 테마로 열린 통영국제음악제 예술 감독 임무를 수행한 뒤였고, 과학계의 파우스트를 다룬 새로운 오페라 대작을 쓰느라 뇌가 반쯤 열린 상태였다.

초신성이 폭발 중인 눈빛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서머셋 호텔 객실 창밖엔 멀리 경복궁의 검은 기와가 가지런했고, 거리엔 추락한 분홍 꽃잎이 수북했다.

진은숙이 작곡한 생황 협주곡을 들으며 이 자리에 왔던 나는 금속과 나무와 현과 관이 부딪히는 소리에 몹시 격앙되었다. 각각의 음들이 비벼질 때 쏟아지는 풍성한 텍스처와 서스펜스에 고무되어, 영화 <듄>의 한스 짐머처럼 그가 영화 음악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은숙은 2004년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작곡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받았고 아놀드 쇤베르크 상, 비후리 시벨리우스 음악상, 뉴욕 필하모닉 크라비스 음악상, 레오니 소닝 음악상을 휩쓸었다. / 사진=구본숙

차 안에서 생황 협주곡을 듣고 왔어요. 고전과 미래가 뒤섞인 메탈릭한 서사가 쏟아져서, <콘택트>와 <듄>을 만든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영화와도 잘 붙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소지으며) 그런데 영화 음악은 클래식 작곡하고는 완전히 다른 장르예요. 굉장히 빠른 작업 스케줄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걸 맞출 수는 없고요. 다만 제 작품 중에 맞는 걸 가져다 쓰는 건 반대하지 않아요. 특히 생황은 소리 자체가 단순하고 이국적이라 어울리겠네요.”

현대 음악은 ‘아름답다’보다는 다른 차원의 형용사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진은숙의 사운드는 음표 하나하나가 낭비 없이 웅장해요. 여하튼 지멘스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은 언제 들었나요?

“(심상하게)지난해 여름, 베를린 집에서 곡 쓰고 있었어요. 핸드폰 통화를 거의 안 하는데, 모르는 번호가 떴더라고요. 하도 전화를 안 받으니 “전화 받으라’'는 이메일도 도착했어요. “위원회에서 마지막 회의를 했는데 당신이 수상자로 결정됐다”더군요.”

예상했나요?

“아니요. 작년에 제 친구인 영국 작곡가 조지 벤저민이 타서 파티에 갔는데, 조지가 귓속말로 그래요. ‘너도 이 상을 빨리 타면 좋겠다.’ ‘말도 안 돼. 독일 사람들이 과연 이 상을 나를 줄까? 탄다 해도 상 필요 없는 80대나 돼서야 주겠지.’ 농담을 했는데… 믿어지지 않았어요. 이게 진짠가…(웃음)”

클래식계 거물들이 모이는 페스티벌에서 단연 화제는 ‘올해 지멘스상은 누가 탈까’였고 그때마다 그는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고 했다.

지멘스상은 통보를 받고도 6개월간 비밀에 부쳐야 하잖아요.

“핀란드에서 받은 시벨리우스상은 1년 전, 덴마크에서 받은 레오니소닝은 거의 2년 전에 알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은 다 공연 스케줄이 몇 년 단위로 미리 짜여 있으니, 수상자에겐 일찌감치 통보해요. 남편(마리스 고토니)한테만 알렸는데, 연신 베리굿, 베리굿… 상금 받으니까 좋아하죠. 하하.”

시벨리우스상, 레오니소닝상을 탈 때처럼, 지멘스상도 진은숙이 최초의 아시아인 수상자다.

‘상은 운일 뿐, 좋은 작품을 쓰는 게 자신의 일’이라지만, 시기마다 상을 받지 않았다면 스스로 ‘벌레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창작의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처음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을 때는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젊을 때는 프리랜서 작곡가에게 상금은 큰 도움이 되죠.”

비유럽인이지만 진은숙은 ‘로컬리즘’이 아닌 ‘세계적 보편성’에 승부를 걸었다. 루이스 캐럴 원작을 바탕으로 한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당신을 생각하면 늘 ‘이상한 나라의 진은숙’이라는 문장이 떠오릅니다. 2007년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역동적 고상함이 자동 재생된달까요. 왜 진은숙에겐 항상 무국적, 스펙터클, 꿈… 이라는 이미지가 따라 나올까요?

“글쎄요. 저는 제 작품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에요. 일단 제 작품에 한국적이라거나 민족적 지향이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더군요. 그런데 한국의 전통 음악은 지금 우리의 삶과는 거의 관련이 없지요. 판소리나 민속 음악은 생동감이 있지만… 무엇이 한국적이냐고 하면 딱 정의하기 힘들기도 해요.”

그렇다면 현대음악은 뭐라고 정의하나요?

“현대 음악은 현대의 어법으로 만들어가는 클래식이죠. 대중과 괴리가 커져서 ‘현대음악’을 특별한 장르로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과거의 클래식도 그 시대의 현대 음악이었어요.”

그러고 보니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미궁’을 처음 들었을 때가 생각나네요. 황병기, 백남준, 윤이상, 진은숙 모두 코스모폴리탄이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현대음악을 했다고 봐도 될까요?

“네. ‘미궁’은 지금 들어도 잘 만든 음악이에요. 서양 음악을 가야금으로 세련되게 풀었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오리지널은 백남준 선생입니다. 전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걸 한 분이지요.

음악적인 면으로는 전통을 부수는 플럭서스 사조의 흐름을 따라갔는데, 비디오아트는 완전히 그분만의 독창적인 것이었어요. 그게 한국적인 거죠. 그래서 저는 해외에서 한류 음악을 자랑할 때도 K팝 스타만 따로 띄우지 말고 윤이상 백남준 정명훈의 계보로 서두를 열면 좋겠다고 해요.”

한류의 맥을 그렇게 본다면, 클래식 작곡가 입장에서는 좀 외로울 것 같습니다.

“네. 한국 출신 창작자의 딜레마가 있죠. 유럽에서 전 이방인입니다. 수용되고 인정받기까지 갖은 애를 써야 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도 홈그라운드의 튼튼함이 없어 좀 쓸쓸하지요(웃음).”

클래식 연주자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만 작곡가는 접근도가 떨어지니 더 힘들다고 했다.

진은숙은 1962년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 집안에 사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 예배 반주를 맡았고, 근처 예식장에서 결혼식 반주 아르바이트를 했다.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축가 반주를 하면서 50원을 받았다. 당시 한 끼 식사 비용이 20원인 것에 비하면 큰돈이었다.

레슨을 받는 것은 꿈도 못 꿨던 터라, 독학으로 음악 이론과 대위법을 공부했다. 그녀의 열정을 헤아린 중학교 선생님이 작곡을 권하며 말했다. “너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될 거야.” 서울대 음대에서 그를 가르쳤던 강석희 교수(윤이상의 제자)도 당시 진은숙에게 비슷한 예언을 했다. “네가 작곡한 곡은 곧 국제적인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게다.”

진은숙의 악보.

대학 시절 진은숙은 바흐의 첼로 모음곡 ‘프렐류드’를 딱 한 번 듣고 오선지에 그대로 옮겨서 동기생들을 절망시키기도 했다. 24살에 그는 독일 함부르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한국의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의 딸에서 지금은 얼마나 멀리 왔습니까?

“멀리 왔죠. 아주 멀리 왔습니다. 한국의 70년대를 생각하면 너무 가난했고 불안했고 폭력적이었어요. 아이들 인권은 바닥이었죠. 어른들은 윽박지르고 학교 선생은 쥐어패고… 함부로 취급당하면 자존감의 뿌리가 잘려요.

돈도 없어 레슨도 못 받고 대입은 낙방해서 아무런 희망이 없을 때. 그래도 억세게 운이 좋아서, 서울대 음대를 삼수 만에 미달로 들어갔어요. 얼마나 살얼음판 같은 인생을 살았나 몰라. 뭐 하나 삐끗했어도 부서져 버릴 것 같았어요, 나는.

그런데 그렇게 성인이 된 어른들은 커서도 열등감에 시달려요. 제가 그 시절에서 얼마나 와 있을까…(침묵)”

진은숙의 미간에 어둠이 고였다. 사는 게 벌받는 것 같은 무거운 청춘을 두 발로 끌고, 두 손으로 흩어진 상형문자 같은 음표를 채집해 악보를 채워가던 지독한 나그네의 시간들. 베토벤과 모짜르트의 후손인 유럽의 작곡가들이 제 손으로 휘갈긴 악보를 들고 매번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당황했다.

“영국 독일 프랑스 사람들은 늘 자신감이 넘쳐요. 그런데 나는… 항상 나한테 너무 비판적이었어. 어릴 때 영향이 남아 스스로를 못 믿는 거죠.”

글 쓰는 사람도 자기를 해치기 직전까지 갑니다(웃음). 몸에 먼지처럼 붙은 그 자학을 어떻게 털어냈나요?

“음악 없이는 못 살 것 같으니까(웃음). 음악만이 나의 인생이고 해방구니까. 음을 붙들고 있으면 무슨 마약 한 것 같았어요. 그게 뭐 엄청 대단한 것도 아니에요.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음악에 푹 잠겨 있는 거죠.

그런데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음악 하는 사람도 두 부류가 있어요. 음악이 곧 삶인 사람, 음악으로 돈과 유명세를 바라는 사람…”

창작과 성공이라는 말이 잘 붙나요?

“잘 안 붙죠. 성공을 해도 그 성공이 너무 미미하니까. 유명해져도 그 유명세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고요. 향유의 시간이 너무 짧잖아요. 그래서 오늘 지멘스상을 받아도 내일 또 머리를 움켜쥐고 책상 앞에 앉아요. 그 고된 일을 왜 하느냐고요? 그게 삶이니까.”

‘그게 삶이니까’라는 말이 산뜻한 체념처럼 귓가를 울렸다.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공연된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극장은 1972년,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이 공연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작곡가로서 어떤 소리를 추구하세요? 매번 작품이 야심만만하고 스펙터클해서 에너지 소모가 크겠구나 싶었습니다.

“전에 없었던 다른 구조, 다른 세상을 추구합니다. 완벽하다는 착각으로 곡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난 늘 불완전해요. 그런데 그게 또 나의 문제입니다. 음 몇 개로 사이즈가 작은 소품을 쓰면 내가 나를 인정을 안 해요. 항상 맥시멈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내 존재를 알아주는 그런 세상을 살아오다 보니…

그런데 이번 통영 페스티벌에서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가 연주하는 걸 들으니 한음 한음에 우주가 다 들어있더라고. 창작도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날 좀 봐달라’는 아우성으로 웅장한 스케일이 나왔다는 거죠?

“그런 셈이죠. 유럽이 대개 그렇지만, 독일 사회도 외국인에게 관대하고 포용적으로 보여도 어느 수준에 이르면 여기까지 라고 선을 그어요.”

암스테르담, 폴란드에서는 80년대부터 위촉을 받고 영국, 프랑스, 미국 세계 각국에서 90년대부터 작업하고 CD를 냈어도…35년 살았던 독일에서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언제 그 선을 넘어 인정받았다고 느꼈나요?

“몇십 년 동안 서서히 그렇게 됐어요. 오랜 세월에 걸쳐서. 지금은 나아졌지만, 아시안이 유럽의 주류 음악계에서 활동하고 인정받는 건 쉽지 않아요. 그들의 자긍심에 도전하지 않는 카테고리 예를 들어 민속적인 장르라든가, 여성 작곡가로서의 스토리텔링 같은 이슈로 맞추길 바라죠. 그런데 나는 그 길을 거부하고 그냥 음악으로 정면돌파했어요.”

자신들의 고유 영역에 거침없이 새로운 음표를 꽂아 넣는 아시아 여성, 그것도 소품이나 액세서리 정도가 아니라 소리의 근본을 꿰뚫어 현대적인 대작을 내놓는 진은숙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휘자 켄트 나가노나 베를린 필하모닉의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 같은 분들이 제 작품을 연주하고 높이 평가하니까. 15년 정도 시간이 흐르는동안 서서히 자리를 잡아간 거죠.”

진은숙 오른쪽으로 지휘자 켄트 나가노 그리고 피아니스트 출신의 남편 마리스 고토니와 아들.

시험의 시간이 너무나 길었군요.

“다행이었다고 생각해요. 결국 곡을 쓰면서 누가 바깥에서 나를 인정하고 안 하고 성공하고 안 하고가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단련이 됐달까요. 지금도 나는 내가 어떤 작품을 쓰느냐만 중요해요.”

영국 로열 오페라단이 의뢰한 ‘거울 속 앨리스’는 왜 그만두셨나요?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어요. 브렉시트 상황이었고, 영국은 자국의 유산을 브리티시 스타일로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 자신도 캔슬된 순간 흥미를 잃어버렸고 이젠 관심사가 자연스럽게 볼프강 파울리로 넘어왔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는 않아요. 한국 여자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에게 관심을 두고 새로운 버전의 파우스트를 만들겠다, 이건 또 그들이 원하는 그림은 아니니까. 하하.”

평생이 인정 투쟁인 시간을 살면서도 부서지지 않고 팽창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웠다.

당신의 영혼의 저장고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복잡해요. 나는 내면에 소용돌이가 많은 사람이라… 지금은 또 2025년에 완성할 오페라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오펜하이머’를 만들었듯이, 진은숙만의 물리학 오페라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어요. 어쩌면 평생 이끌렸던 주제지요? 시, 혼성합창, 파이프 오르간, 어린이 합창, 대편성 관현악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열었던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에서부터 시작해서요.

“수학과 물리학과 우주 천체에 관해서는 늘 관심이 많았어요. 주인공이 물리학자지만, 한 천재가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 접근하고 싶어 하는 그런 열망을 담았어요. 물리학자 파울리가 자신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칼 융과 교류했다는 에피소드에 착안했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2017년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진은숙의 ‘코르스 코르돈’을 초연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소리의 입자감에 서스펜스가 더해져서 이야기의 사이즈가 증폭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음악이 커질수록 더 강한 사람이 되어간다고 느끼나요?

“글쎄요. 그건 모르겠어요. 제 생각엔 한 인간이 다 하나의 우주가 아닐까 합니다. 달리 말해 작품이 커지고 좋아진다고 해서 내가 더 커지고 좋아지는 것 같지는 않아요. 행위자로 볼 때 음악가 진은숙과 생활인 진은숙은 분리되지 않아요. 밥도 하고 곡도 쓰고 청소도 하고 피아노도 치죠.

제 몸엔 사랑과 학대가 함께 웅크리고 있고, 저는 선악의 경계를 넘어 한 인간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복잡한가에 몰두하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인격과 재능이 통합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화두로 우리는 몇몇 영화감독과 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과 봉준호의 ‘설국열차’와 김기덕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같은 작품들에 관해.

변방에서 객사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벌했던 끝끝내 한국 영화계의 죄의식으로 남은 김기덕, 동화적 웅장함 속에 동시대의 양심을 벼려 넣는 봉준호의 선량함, 박찬욱 영화의 바로크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한편 진은숙은 박찬욱이 ‘헤어질 결심’의 이야기의 사이즈를 더 키우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다.

이야기의 크기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영화건 그림이건 음악이건 그 작품이 포함하고 있는 크기가 있어요. 가령 베토벤도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 소재로 피아노 소나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우주는 굉장하잖아요. 모든 분야에 그렇지 않나요?”

포용력의 체급이 남다르다는 게 거장의 특징이지요. 이민진이 쓴 소설 ‘파칭코’의 첫 문장 ‘역사가 날 망쳐놨지만 상관없다’도 코리안 디아스포아라의 엄청난 힘이 느껴지잖아요. 혹시 작곡가도 첫 음을 쓸 때신경을 많이 쓰는지요?

“아무래도 첫 음은 중요하지요. 내 생각에 딱 들어맞는 걸 첫 줄이 나와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마치 무당이 굿하듯이 몸속에서 어떤 음이 딱 치고 나오는 그런 느낌이 있으면 계속 나가고, 안되면 머뭇거리고 버리고 힘들어요.”

지금도 연필로 작곡합니까?

“그럼요. 몸을 써서 음악을 만드는 게 중요해요. 컴퓨터로 악보를 만드는 행위를, 나는 상당히 위험하다고 봐요. 너무 쉽게 음표를 찍을 수 있으니까. 음표를 그린다는 건, 연필로 한 음 한 음 생각하고 결정하고, 쓰는 순간 어떤 에너지를 느끼고 다음 음을 쓸 때까지 생각하는 거예요.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숙고의 과정인데, 그걸 컴퓨터로 하면 아주 쉬워져요.

어떤 사람은 컴퓨터로 해서 그걸 또 복사해서 붙이고 짜깁기하고 즉석에서 들어보더라고. 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수정한다는 게. 하여튼 끔찍해.”

손바느질하듯 악보에 음을 새겨온 고단한 ‘음표노동자’가 몸서리를 쳤다.

정명훈 지휘로 롯데 콘서트 홀에서 초연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 악보. 12편의 시, 혼성합창, 파이프 오르간, 어린이 합창, 대편성 관현악 등으로 우주 탄생의 비밀을 여는 운명적인 대곡이다.

지금은 AI가 대중의 취향에 맞춰서 히트곡도 쓰는 시대입니다.

“(얼굴을 찡그리며) 상당히 위험해요. 피아노도 로봇이 치면 더 정확하게 연주해요. 연주도 작곡도 한 사람의 정신세계와 경험이 농축돼서 나오는 건데, AI가 경험이 있나요? 데이터나 프로그래밍은 진짜 같은 가짜만 만들어내죠.

과거에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알고리듬을 입력해서 50가지 이상의 컴퓨터 옵션을 믹스한 작곡가가 성공한 사례가. 그런 곡들은 퍼스낼러티가 느껴지지 않아서 금방 딴생각이 들어요. 연주는 허수아비가 하고 작곡가는 진작에 떠났구나…”

악보는 당신에게 얼마만큼 중요한가요?

“중요하죠. 나는 직접 쓰니까. 내 인생이, 살아온 시간이 다 거기 투영돼 있죠. 악보가 불타 없어지는 악몽도 꿔요. 지금은 다 카피가 되니까 괜찮지만, 스트라빈스키 시대만 해도 지휘자가 원본을 가지고 지휘를 하니 유실되면 끝. 작품이 소멸하는 거죠.”

연주자, 지휘자, 관객은 작곡가에게 괜찮은 동료인가요?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가 그랬어요. 머릿속에 시상을 떠올리면 너무 완벽한데, 그걸 꺼내서 쓰면 완벽성이 깨진다고. 나도 똑같아요. 머릿속에 악상이 있는데 꺼내서 쓰는 순간 아이디얼한 형태가 망가져요.

50% 망가진 상태로 악보화 하면 이상한 연주자가 와서 깨고 또 이상한 오케스트라 감독이 와서 망치고, 청중들이 와서 욕을 하고… 그렇게 쪼끄맣고 납작해져 버리는 거죠. 결국 내가 쓰지 않았더라면 완벽했을 것인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시는군요!

“그만큼 이데아를 현실화하는 게 힘들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반대도 있죠. 일단 꺼냈는데 그걸 놀라운 관점으로 살려내는 연주자, 지휘자가 분명 있어요. 김선욱이 피아노 콘체르토를 재발견하다시피 훌륭한 연주를 해낸다든가,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가 완벽한 선율을 들려줄 때.

그런데 대개는 마지막까지 어떤 형태로 나올지 알 수 없어요. 객석에 앉아 청중들과 내 곡을 듣는 순간이 제일 조마조마해요.”

어떤 음을 만들어낼 때 가장 흥분되나요?

“창작하면서 흥분되는 순간은 없어요. 이쪽 길로 잘 풀릴 것 같아서 시작하면 어느새 답답한 미로를 만나고, 다음 장 쓸 때는 또 잠깐 잘 됐다가 저쪽 길로 가면 다시 힘들어요.”

스승이었던 죄르지 리게티가 ‘자기만의 언어를 찾으라’고 했는데, 찾았나요?

“곡을 쓸 때 내가 형편없어지는 비참함과 작곡가라는 높은 정체성 사이의 괴리를, 나는 중학생 때 깨달았어요. 화려한 흉내만 내다 끝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자기 언어, 자기 세계를 갖는다는 건 힘겨운 투쟁이에요. 그래서 젊은 시절, 내 또래 독일, 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이 잘나가는 모습을 볼 때도 나는 질투하지 않았어요. 그들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나는 내 것을 할 수 있구나, 그런 시간을 가져서 다행이다, 그랬어요.

함부르크 음대 시절 진은숙의 스승 죄르지 리게티.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명으로, 대중에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삽입곡 ‘Atmosphère’로 알려져 있다.

각자의 시간 속에서 힘겹게 자기 언어를 찾는 겁니다. 작곡가는 글 쓰는 작가와도 달라요. 클래식 작곡가는 대중의 마음에 들기 위해 쓰지 않아요. 경험의 수치가 다 다른 대중을 맞추려는 노력은, 쉽게 망하는 지름길이죠. 접근도를 높여주는 노력은 하지만, 결국 작곡가는 자기 이상향을 믿고 갈 수밖에 없어요.”

당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 아닌 인류의 유산을 만드는 일, 현재를 살며 미래의 고전을 쓰는 일이란 얼마나 엄중한가. 과학자는 숫자로 작곡가는 음표로, 우주의 천장에 닿으려 손을 뻗지만, 어쩌면 그 눈부신 블랙홀을 여는 가장 분명한 열쇠는 그리움이나 갈망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종교는 있으신가요?

“무신론자입니다. 베토벤도 무신론자였어요. 바흐는 교회 음악을 많이 했지만, 그 당시 독일에 기독교 분위기가 강했다는 걸 감안해야죠. 예술가의 일은 자기 학대와 믿음 사이에 끝없는 균형잡기입니다.”

안식이 없겠습니다.

“(미소 지으며)매 순간 실패를 딛고 다시 써요. 친구에게 ‘내가 내 작품에 만족하면 나를 총살해달라’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어요. 예술가들은 슬픈 존재입니다.”

그런 슬픔과 스트레스에는 어떻게 대처합니까?

" 피아노 앞에 앉아서 바흐의 푸가를 칩니다. 약간의 요가도 도움이 되고요.”

슬럼프는 언제였죠?

“인생 전체가 슬럼프였다고 보는 게 맞아요.”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네요.

“인생이 그냥 슬럼프의 연속이에요. 슬럼프를 사는 거죠. 저는 베를린에 살지만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요. 온종일 장 보러 나가는 것 빼고는 나갈 일도 없죠. 사람들 만나는 데 쓸 에너지도 없어요.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줄어들어요. 작곡하다가 한 번씩 기지개를 켜면 시간이 훌쩍이에요. 지금 쓰는 오페라도 시간이 촉박해요.”

양자역학을 체계화한 물리학자로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볼프강 파울리. 파울리에게 영감을 받아 진은숙이 대본을 쓰고 작곡한 오페라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은 내년 5월 18일부터 독일 함부르크 오페라에서 켄트 나가노의 지휘로 4회 초연될 예정이다

어떻게 대작 오페라를 대본도 작곡도 홀로 감당할 생각을 했습니까?

“63살이나 됐으니 이런 모험을 하지, 스무 살 때는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이제 40% 정도 썼어요. 60% 남았어요.”

클래식 음악가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의 삶이 절대 녹록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주의 별을 향해 온몸으로 모스 부호를 쏘아 올리듯 음표의 바벨탑을 쌓고도, 한편으론 갚아도 다시 늘어나는 빚처럼 몇 년 후의 작곡 스케줄에 일상을 저당 잡힌 예술 채무자의 삶. 63년의 세월 동안 ‘긴 지옥(악보와 사투를 벌이는)’과 ‘짧은 환호’의 시간을 반복적으로 치러온 진은숙의 내구성이 놀라울 뿐.

“지금은 알아요. 그냥 그날그날 사는 거구나, 물 흐르듯이 흘러가면서 어떤 구조를 갖춰가는 거구나. 젊을 때는 그런 인생이 한없이 갈 것 같은데, 나이 드니까 또 알겠어요. 지금 좋은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최선을 다해 살아요.

어제도 통영에서 서울로 오며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들었어요. 빛나는 소리의 물결에 휩쓸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지더라고.”

몰아치듯 첨언했다. 우주는 비어있어 초신성이 터져도 모깃소리만큼도 안 들리지만, 오직 지구만이 공기의 실핏줄을 타고 터지는 소리를 감각할 수 있으니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냐고.

작곡가로 사는 게 행복하냐고는 못 묻겠습니다. 그래도 작곡을 사랑하시죠?

“(망설이다)글쎄요. 나는 1년에 한 곡을 써요. 오케스트라 의뢰가 많아서 곡의 개수는 적어도 작업할 양은 정말 많아요. 곡 쓰는 일을 사랑하느냐고 묻는다면, 정말 모르겠어요.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나이브해서 가짜 같애, 인스턴트같잖아요. 사랑보다는 그냥 헌신의 마음이라고 해둡시다.”

매 순간 고전을 만들고자 합니까?

“현재의 내 작업이 어떤지 나는 몰라요. 심판자는 시간이니, 내가 죽고 나서 한 참 더 시간이 지나야 알겠죠.”

2005~2022년까지 17년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진은숙의 주요 관현악곡 및 협주곡이 담긴 ‘베를린필 진은숙 에디션’. 이 음반 세트는 ‘디아파종 골드’(Diapason d‘Or)에 선정됐다. 디아파종은 ‘그라모폰‘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클래식 음악 전문지로 손꼽힌다.

무엇이 두려우세요?

“두렵진 않지만 유감입니다. 나이 들면서 창작의 에너지가 떨어질까(웃음). 80살이 넘어서도 호랑이처럼 피아노를 치는 마르타 아르헤리치처럼, 그 터치, 그 위력을 나도 유지하려면 노력밖엔 없어요. 점점 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때로는 모든 걸 다 놓고 잠시라도 고양이나 키우는 삶을 살고 싶다지만, 결국은 연필이 안 쥐어질 때까지 음표 노동을 이어가고 말 우리의 자랑스러운 진은숙. 외롭고 높고 고귀한 운명적 작곡가. 음악계의 노벨상인 지멘스상 수상식은 5월 1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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