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 '들꽃놀이' 배경 정원…디아비컨 [이한빛 미술관 정원]

박현주 미술전문 2024. 5. 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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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한빛]뉴욕에서 100km, 기차로 1시간을 떠나면 더 이상 쓰지 않는 산업공간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 시킨 디아 비컨을 만날 수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뉴욕=뉴시스] 이한빛 미술칼럼니스트 = “미술관의 입구가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역이라고 생각했다. 관람객들은 메트로 노스 기차를 타고 뉴욕을 떠난다. 도시에서 탈출하는 느낌이랄까, 묘한 흥분감 같은 게 생긴다. 허드슨 강을 끼고 한 시간 가량 가면 비컨역에 도착한다. 걸어서 7분, 언덕길을 따라 가면 미술관이 한 눈에 보인다. 그곳이 바로 디아 비컨(Dia: Beacon)이다” (Robert Irwin, Bloomberg Philanthropies 인터뷰)

지난 2003년 5월 디아 아트 파운데이션이 개관한 디아 비컨은 여러모로 독특한 공간이다.

뉴욕한복판에서 단기간에 성장한 수준 높은 현대미술 컬렉션을 보유한 재단이, 뉴욕시에서 100km떨어진 근교에 둥지를 틀었다는 것도 그렇고, 전시장만 3만4000평방피트(약 955평)에 이르는 규모도 이례적이다. 뿐만이랴, 리처드 세라, 존 체임벌린, 루이스 브루주아, 마이클 하이저 같은 대형 설치작도 모두 이 미술관 실내에 들어와 있다. 미술관을 짓고 작품을 선별한 것이 아니라, 작품을 위해 집을 지은 느낌이다.
[사진=이한빛]앤디워홀의 그림자 연작. *재판매 및 DB 금지

크고 거대한 것은 모두 내게로 오라

디아 비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디아 파운데이션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1974년, 디아 파운데이션은 아트딜러 하이너 프리드리히(Heiner Freidrich·b.1938)와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석유시추 재벌인 슐랭베르제(Schlumberger) 그룹의 상속녀 필리파 드 메닐(Philippa de Menil·b.1947), 미술사가인 헬린 윙클러(Helen Winkler)가 만들었다. 디아의 목표는 명료했다.

‘성격이나 규모 때문에 자금 조달원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그 방식은 당연히 ‘탄탄한 자금력’이었다.

도널드 저드(Donald Judd), 댄 플래빈(Dan Flavin), 존 챔버린(John Chamberlain),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라 몬테 영(La Monte Young), 마리안 자젤라(Marian Zazeela) 등 전통 회화와 조각을 넘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이들이 디아의 대표작가였다.

재단은 약 12명의 작가에게 최대 연간 500만 달러를 10년간 지원했다. 금전 지원이 끝이 아니었다. 제임스 터렐의 로덴 분화구 프로젝트를 위해 애리조나주의 화산 분화구를 구입했고, 1인 미술관을 만들기 위해 은행건물을 통째로 매입하는가 하면, 4인 미술관, 기획전시장을 위한 건물과 땅을 사들였다.

재단 설립 10년 만에 900개 이상의 작품과 3천만 달러 넘는 부동산을 소유하게 됐다. 이쯤 되자 미술계 모두가 ‘디아’를 주목하게 된다. 필리파 드 메닐은 “우리 급성장과 성공 비결은 돈을 아끼지 않고 쓴 것”이라고 인터뷰 할 정도였다.

[사진=이한빛]대지 미술가 마이클 하이저의 작품.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이한빛]리처드 세라의 Torqued Ellipses연작. 모두 실내에 설치됐다. *재판매 및 DB 금지

버려진 산업공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

디아 비컨은 원래 과자 업체인 나비스코사의 공장단지였다. 과자를 만들던 곳은 아니었고, 포장용 박스를 인쇄하던 공장이었다. 미술관으로 낙점되기 전, 10년 가까이 버려진 건물이었다. 공장 특유의 넓고 탁 트인 공간이었기에, ‘산업재’를 자신의 시각언어로 쓰는 작가들과 잘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2015년 디렉터로 부임한 제시카 모건은 아트넷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건물을 랜드마크 기관으로 활용하는 구겐하임이나 MoMA와 달리, 디아는 항상 예술가들이 우리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왔다”고 했다.

디아 비컨은 공장을 리모델링하면서 건축가, 디렉터외에도 작가가 협력했다. 로버트 어윈이 그 주인공인데, 전통적 매체가 아닌 다양한 재료로 작업하며 공간과 자연, 빛의 관계를 고민하는 그의 스타일이 디아 비컨을 다른 미술관과 다르게 만드는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냈다. 바로 ‘자연광’이다.

디아 비컨의 별명은 ‘자연광 미술관’ (Daylight museum)이다. 사계절 늘 변하는 햇볕이 미술관을 구석구석 어루만진다.

작품 감상을 위해 일부러 어둡게 한 공간(형광등 작가 댄 플래빈의 작품이 전시된 갤러리)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연광이 든다. 커다란 격자무늬 창문은 대부분 불투명유리인데, 가운데 직사각형으로 일부분만 투명 유리를 썼다. 햇볕이 투과하면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듯한 빛과 쨍한 빛이 함께 들어오며 작품과 만나 독특한 공명을 한다.

이 공명이 가장 극대화 되는 작품이 바로 리처드 세라의 Torqued Ellipses 연작이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유조선 철판을 종이 말 듯 구부리고, 세운 작품이다.

크기도 압도적이지만 자연스레 산화된 붉은 색도 인상적이다. 특히 디아 비컨에 설치된 작품은 실내에 있기 때문에, 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독특한 빛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계절에 따라 빛이 떨어지는 각도가 달라지기에, 자연스레 세라의 작품도 다양한 표정을 갖게 된다. 공간을 묵직하게 채우는 울림에 관람객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곳이다.

이외에도 1층엔 앤디워홀의 그림자 연작 (Shadows·1978-79) 102점, 2층 작은 방에 숨듯이 자리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은 마망, 대지작가로 불리는 마이클 하이저의 설치작도 디아 비컨의 주요 작품이다.
[사진=이한빛]루이스 브루주아의 대표작 ‘마망’이 2층 가장 끝 방에 숨어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발상을 뒤집다, 소리로 조각한 정원

1960년대~70년대를 주름잡은 작가들의 작업을 마라톤 하듯 보고 나면 작은 정원으로 나갈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섬세하게 심어 일년 내내 꽃이 피고진다. 바로 옆의 모노톤 산업 공간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자연 공간으로, 총 천연색이다.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조각’이 아니라 ‘소리’다. 정원 가운데 마련된 벤치에 앉아 멍 때리다 보면 특이한 소리가 들린다. 새소리인가 싶지만 너무 규칙적이라, 인위적인 느낌이 난다. 서둘러 미술관 지도를 보면 작품 설명이 보인다. 바로 루이스 로울러(Louise Lawler)의 ‘새 소리’(Birdcalls, 1972/1981)다. 사람이 새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것인데, 총 7분 가량 이어진다.

또 다른 작품은 정원이 아닌 뒷마당에 설치돼 있다. 마찬가지로 소리작품이다. 막스 노이하우스(Max Neuhaus)의 ‘타임 피스 비컨’(Time Piece Beacon, 2005)이다. 정시에서 약 6분 전 시작되며, 처음엔 잘 알 수 없는 백색소음처럼 들리다 점점 소리가 커진다.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라는 인식을 할 수 있을 때쯤 갑자기 소리가 사라지며, 소리의 진공이 펼쳐진다. 일반적으로 소리가 나야 주의가 환기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대로 소리가 있다가 없어져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역발상 정원’은 미술관 정문에도 있다. 2022년 12월 BTS의 리더 RM이 자신의 싱글 앨범 인디고(Indigo)를 발매하고, 디아 비컨에서 라이브를 했다. 첫 곡인 ‘들꽃놀이’(Wild Flower)의 배경이 바로 미술관 정문의 작은 정원이다.

직각으로 반듯하게 트리밍한 나무 사이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시선이 하늘을 향한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뜻일까. ‘들꽃놀이’의 노랫말처럼, 오롯이 눈에 담기는 하늘과 햇볕이 눈부시다.

[사진=이한빛]RM의 싱글 앨범 ‘인디고’에 수록된 ‘들꽃놀이’의 라이브 배경이 된 미술관 입구 정원. 로버트 어윈이 디자인했다. 직각으로 반듯하게 트리밍한 나무사이를 걸으면 자연스레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사진=이한빛]RM의 싱글 앨범 ‘인디고’에 수록된 ‘들꽃놀이’의 라이브 배경이 된 미술관 입구 정원. 나무사이를 걸으면 자연스레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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