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회고록서 “김정은 비핵화 진심”… 협상 결렬 美 탓 돌려

김진명 기자 2024. 5. 18. 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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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2주년 회고록 출간
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김영사

문재인 전 대통령은 17일 발간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에서 독대한 김정은이 “딸 세대한테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며 “(핵을) 사용할 생각 전혀 없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김정은은 최근 “유사시 핵 무력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소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2018년 6월 싱가포르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이 비핵화로 이어지지 못한 데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참모들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런 서술은 미국 측 당사자들의 회고와는 차이가 크다.

◇文 “트럼프 주변에서 대화 발목 잡아”

문 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에 제동을 걸고 끝내 하노이 회담을 무산시킨 과정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폼페이오(국무 장관)나 볼턴(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심지어 펜스 부통령까지도 대화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한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대화에 나서도록 이끄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했다. 또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자신에게 미안해하면서 “나는 수용할 생각이 있었는데 볼턴이 강하게 반대했고 폼페이오도 동조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고 말했다.

2019년 판문점에서 만난 세 정상 - 2019년 6월 30일 남·북·미 판문점 회동 당시 문재인(가운데)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악수를 나누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하지만 2020년 발간된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최종 회담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북한이 주장한 ‘완전 제재 해제’ 대신 ‘일부 제재 완화’를 하는 것은 어떻냐고 물었다고 한다. 만약 김정은이 그때 “예스”라고 답했다면 어떤 합의가 나올 수도 있었지만, 김정은이 수용하지 않아 회담이 결렬됐다는 뜻이다.

미·북 실무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의 핵 리스트 제공 요구와 관련해 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신뢰하는 사이도 아닌데 폭격 타깃부터 내놓으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이 말을 전했더니 그도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겠다. 김정은 똑똑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金, 기자회견 후 ‘잘했냐’ 묻더라”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매우 예의 발랐다”고 했다. 판문점 도보다리 산책 때는 김정은이 남북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 대해 자신에게 상의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은이 ‘(기자회견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물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와서도, 자기가 잘했냐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고 했다.

1차 미·북 정상회담 장소에 대해 미국 측에서 트럼프의 플로리다 마러라고 별장, 하와이, 스위스 제네바 등을 제안했는데, 김정은이 “우리 전용기로 가기 어렵다. 미국 측에서 비행기를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자존심 상해서 할 수 없는 거 아니냐”고 고충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북한은 판문점을 가장 선호했고, 기차로 이동할 수 있는 몽골 울란바토르가 그다음이었다. 그것도 어렵다면 미국이 북한 해역에 항공모함 같은 큰 배를 정박시켜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다고 공개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장소가 싱가포르로 결정되는 바람에 북한이 중국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을 다시 중국에 밀착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런 배경을 밝히며 문 전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도 우리의 중재 노력을 당연한 역할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18년 9월 트럼프에게 보낸 친서(親書)에서 “저는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하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볼턴 전 보좌관도 회고록에서 2019년 6월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 대해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이 근처에 없기를 바랐지만, 문 대통령은 완강하게 참석하려 했다”고 했다. 폼페이오 전 장관도 회고록에서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위한 시간도, 존경심도 없었다”고 했다.

◇'이메일 연락’ 제안 지켜지지 않아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 회담 전 양측은 정상 간 직통 전화 설치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핫라인은 한 번도 가동된 적 없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5월 2차 판문점 회담 때 김정은에게 “그 전화를 가동하자고 독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정은은 “대부분 지방을 다니기 때문에 (집무실에) 없을 때가 많다”며 “확실히 보안이 지켜지는 이메일로 하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상끼리는 이메일로 연락하기로 새로 합의”했지만, 북측의 보안 시스템 구축 작업이 계속 지연되면서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日, 한국의 G8 추가에 거부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그는 일본의 수출 규제를 비판하면서는 “일본은 정말 속 좁은 모습을 보여줬다. 섭섭하고 불쾌했다”며 “한편으로는 일본이 정말 도량이 없는 나라가 되어가는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재임 중 G7 회의에 참석했던 일화를 언급하며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분명하게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 공감해 한국이 G7 확장 멤버가 돼야 한다고 했다면서 “일본엔 일단 말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다”고 했다. 이어 “영국이 G7 회의에 한국을 초청하는 것을 일본이 반대했다는 말을 영국 측 인사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에 대해서도 “만나는 순간에는 좋은 얼굴로 부드러운 말을 하지만 돌아서면 전혀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의 피라미드 관광 논란에 대해선 “이집트가 (피라미드를) 자랑하려고 내게 가주길 원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돼 아내더러 가보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김건희 여사를 겨냥, “배우자 외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영부인 문제 때문에 안에서 내조만 하라는 식으로 되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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