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연평도 가서 주민 위로하고 싶다고 해…놀라웠다”

정영교.이근평 2024. 5. 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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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 출간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때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30여 분간 산책과 대화를 했다. [중앙포토]
문재인 전 대통령이 17일 공개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소통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 비화가 담겼다. 김정은이 직접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통 받은 주민을 위로하고 싶다고 밝혔고, 남북 정상 간에 e메일로 소통하자는 파격 제안도 했다는 주장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9·19 평양공동선언 문안 작성 과정에서 김정은의 서울 답방 시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한 점을 아쉬워했다. ‘연내’로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너무 선을 긋는 거 같아 ‘이번 겨울’ ‘올해 겨울’이라는 두 가지 수정안이 거론됐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영철 통전부 부장이 ‘이번 겨울’이라고 하면 다음해 2월 말까지가 되고, ‘올해 겨울’이면 12월 말까지라고 주장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평양공동선언에는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가까운 시일’이라는 표현이 담겼다. 또 이 때 “언젠가 연평도를 방문해 연평도 포격사건(공식 명칭은 연평도 포격전)으로 고통을 겪은 주민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얘기가 있었다”고 문 전 대통령은 전했다. 이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놀라웠다”고 떠올렸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번개’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김정은이 e메일 소통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판문점 회담 며칠 전 개설된 남북 간 직통전화가 실제 가동되지 않아 가동을 독촉했더니 김정은은 “노동당 청사 집무실에 일주일에 한두 번 출근하고 대부분 지방을 다니기에 보안이 지켜지는 e메일로 하면 좋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노트북을 늘 갖고 다니므로 e메일은 언제든 주고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직통전화는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여정 (노동당)부부장이 관리하기로 하고 정상끼리는 e메일로 연락하기로 그 회담에서 새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해당 합의는 김정은이 보안에 대한 염려가 강해 비공개 사안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실제 e메일 소통은 실현되지 못했다. 북한 쪽에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이 지연되다가 국면이 나빠졌다고 문 전 대통령은 설명했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 마련한 국정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사이 비공식 연락 채널도 공개했다. 여기엔 서훈 당시 국정원장의 오랜 대북 접촉 경험이 한몫 했다고 했다. 대담자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이를 ‘문 로드’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렀다고 설명했다. 문 로드는 한동안 제대로 가동되지 않다가 2018년부터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가 계속 북한에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내도 북한은 ‘잘 받았다’고 접수만 했을 뿐 일절 대답하지 않았다”며 “그 채널을 통해 북한이 처음 연락해온 건 김 위원장의 2018년도 신년사 직후였다”고 밝혔다.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 복원 뒤엔 문 로드가 있었던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전혀 이념적이지 않고 서로 조건이 맞으면 대화할 수 있고 거래할 수 있는 실용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자신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여러 번 당부했다”고도 밝혔다.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하려고 해도 프로세스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노하우가 없으니, 한국이 그 방안을 강구해서 알려주면 좋겠다”고 요청해왔다면서다. 이와 관련, 최 교수는 안보실과 외교부, 국정원의 최고 전문가들이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로드맵을 작성해 트럼프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된 이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프로세스와 로드맵을 궁금해 했고 “내가 전화로 설명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페이퍼로 정리해서 보내줄 수 없냐고 부탁하기도 했다”고 문 전 대통령은 배경을 설명했다.

김정은이 개성 연락사무소 폭파 이후 보낸 친서(2021년 5월)에서 사무소 복원을 제안했다는 사실도 처음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나중에 시일이 흐른 후, 김 위원장은 그일이 미안했던지 대북 연락 채널을 복원하면서 남북연락사무소를 군사분계선 일대에 다시 건설하는 문제를 협의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라고 했다.

또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던 김정은과의 ‘도보다리 대화’ 내용도 소개했다. 이 자리에선 1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문 전 대통령은 “미국이 나름 호의를 갖고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별장이나 하와이, 제네바를 제안했지만, 김정은은 자기들의 전용기로 갈 수 있는 범위가 좁아 어렵다고 했다”며 “미국 측에서 비행기를 보내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자존심 상해 그럴 수 없다는 고충을 솔직히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판문점, 다음이 몽골 울란바토르였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은 몽골 올란바토르의 경우 자신들의 경호 기준에 맞는 호텔이 하나밖에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미국이 그 호텔을 사용하고, 자기들은 게르(몽골 텐트)를 크게 설치해서 사용할 수도 있고, 기차에서 숙식하는 데 익숙하다”는 김정은의 말까지 전했지만, 결국 미국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정영교·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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