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서 모래알 줍듯… 아랍어 공부한 첫 세대

황지윤 기자 2024. 5. 18.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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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이 저자] ‘사막에 핀 산수유’ 송경숙
송경숙

“한국에서 아랍어를 공부한 첫 세대로서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제 인생의 경험을 담아 주변에 보내는 일종의 사랑 고백이기도 합니다.”

‘사막에 핀 산수유’(쑬딴스북)를 쓴 송경숙(78)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말했다. 그는 한국외대 아랍어과 1기 졸업생이다. 책 제목의 ‘사막’은 아랍·중동을 뜻하지만 “교수도, 책도 없이 아랍어 단어 하나하나를 한강에서 모래알 줍듯 했던 당시의 척박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학창 시절 가세가 기울었다. 경기여고에 재학 중이던 저자는 장래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한국외대 특수어과에 1등으로 들어가서 1등으로 나오면 교수가 될 수 있다더라’고 했다. 1965년 아랍 중동 지역과 외교 관계를 염두에 둔 정부가 급히 한국외대에 아랍어과를 만들었고, 저자는 4년 장학금을 받으며 아랍어를 공부했다. 세부 전공은 팔레스타인 문학이다. 팔레스타인의 문학적 영웅인 산문 작가 갓산 카나파니를 연구했다.

책은 1987년 자료 수집을 위해 반년 동안 이집트 카이로에 체류할 때 경험한 뭉클한 일화를 소개한다. 매달 카이로에서 열리는 팔레스타인 부인회를 찾아 이렇게 말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지고, 여인들이 달려 나와 그를 포옹했다고 한다. “저는 어떤 힘이 이토록 저를 팔레스타인 땅과 사람들에게 묶어 놓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전생에 팔레스타인 어느 시장 골목에서 딸기를 파는 여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1세대 아랍 전문가로서 낯선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디딘 긴장과 설렘이 책장마다 녹아 있다.

/쑬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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