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 쾌락이 일요일 전적에 달린 까닭
[아무튼, 레터]
TV로 프로야구를 보고 있었다. 중계 카메라가 한 여성 관중을 클로즈업했다. 카드에 적은 응원 문구는 중독자의 고백 같았다. 한화만사성.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처럼, 한화 이글스가 이겨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었다. 해설자는 관중의 마음까지 읽는다. “일요일에 이겨야 한 주를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어요.”
마침 일요일 저녁이었다. 삶의 하중이 가장 묵직해진다는 시각. 주말의 끝을 예고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며 기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해설자는 헛된 말을 한 게 아니다. 어느 팀을 응원하든 일요일 승리는 최고의 팬 서비스다. 1승 이상의 가치가 있다. 경기에 졌는데 월요일이 닥친다고 상상해 보라. 기분이 늪에 빠진 것마냥 질척거릴 것이다.
직장인은 일요일 저녁마다 얕은 우울을 경험한다. 벌써 주말이 저문다는 실망감이 먼저 밀려든다. 월요일부터 처리할 일, 이런저런 근심과 스트레스도 치밀고 올라온다. 1만2000명의 인터뷰 자료를 분석한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 연구팀은 “성별이나 연령과 관계없이 통계적으로 가장 덜 행복한 요일은 일요일”이라고 발표했다.
프로야구 10구단 가운데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에 따라 행복감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일요일 다승 순위’는 또 다른 세계다. 시즌 개막부터 일요일을 8번 보내는 동안 두산과 삼성은 나란히 6승을 올려 일요일 다승 공동 1위다. SSG가 5승으로 단독 3위. KIA와 NC, 키움은 4승을 거뒀다. LG와 한화가 3승, 롯데는 2승으로 하위권이다. KT 위즈는 하늘도 무심하시지, 일요일에 1승도 따내지 못했다.
100만 부 넘게 팔린 책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연봉이나 승진, 연인이 아니라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이라고 썼다. 환호작약하는 사람은 사실 혈관 속을 요동치며 흐르는 다양한 호르몬과 뇌에서 오가는 전기신호의 폭풍에 반응하는 것이다. 한국 야구팬의 쾌락은 일요일 전적에 좌우된다.
1인 가구 1000만 시대에 사람들은 스포츠 공동체에 더 의지한다. 야구는 월요일에 경기가 없으니 일요일마다 총력전이다.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마운드에 투수를 올릴 수 있다. 그러니 야구팀들아, 일요일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란 말이다. 곧 월요일이 닥치고 일터로 돌아가야 한단 말이다. 일요일 승리는 보약이란 말이다. 생빚을 내서라도 지어 오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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